[초록산책] ① 가을 바람이 분다. 우주가 살랑인다.

가을하면 생각나는 꽃이 있으신가요? 가을을 대표하는 꽃 코스모스를 우리말로는 살살이꽃이라 합니다. 작은 바람에도 살랑살랑 흔들리는 코스모스에 왜 우주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었을까요?

드디어 여름이 물러나고 마침내 가을이 왔습니다. 굳이 이 짧은 문장에 드디어, ‘마침내’라는 과한 감정의 단어들을 끼워 넣은 것을 이해해주시라 생각합니다. 올해 연이은 폭염주의보와 열대야 속에서 추석까지 보냈으니 말입니다.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입니다. 추석을 맞아 별들이 서로에게 안부를 물었답니다. 그런데 지구가 창백한 표정으로 답했다지요. “난 요즘 안 좋아. 인간을 싣고 다니거든…” 그러자 별들이 이렇게 위로했더랍니다. “성가시겠다. 그래도 조금만 참아. 그것들 금세 없어질 거야.” 46억 년 지구의 시간을 생각해 보면 인간은 최근에 잠깐 나타났다 금세 사라질 것들이겠지요? 그래도 지구 생태계의 막내로 지내는 그 순간만큼은 뭇 생명들과 어우러져 즐겁고 행복하게 살면 좋으련만 자꾸 말썽을 부리고 민폐를 키워나가 민망하고 미안하기만 합니다.

작은 바람에도 휘청거리는 이 가냘픈 꽃이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읽은 과학서적으로 우주의 신비를 담은 두꺼운 책,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같은 이름을 가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진 제공 : 강세기

그래도 우리가 저질러 만들어 놓은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왔습니다. 여러분은 가을하면 어떤 꽃이 떠오르나요? 몇 해 전 에버랜드가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 계정을 통해 이를 조사한 적이 있는데요 응답한 10명 중 7명이 가을 대표 꽃으로 ‘코스모스’를 꼽았다고 합니다. 그 외로 국화(17%), 백일홍(5%), 벌개미취(3%) 등이 선택되었습니다. 역시 파란 하늘, 시원한 바람의 가을 하면 나훈아의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역’이나 김상희의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있는 길’을 흥얼거리게 만드는 코스모스가 제격인 듯합니다. 취향이 너무 올드한가요?

작은 바람에도 휘청거리는 이 가냘픈 꽃이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읽은 (좀 더 솔직해지면 읽다가 포기한) 과학서적으로 우주의 신비를 담은 두꺼운 책,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같은 이름을 가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시다시피 코스모스 cosmos는 그리스어로 조화로운 질서, 우주를 뜻하는 kosmos에서 기원한 단어입니다. 유선경 작가의 책, 『문득, 묻다』에 소개된 신화에 따르면 신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제일 처음 만든 꽃이 코스모스였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처음 만들다 보니 어설프고 연약하게 완성되었지만, 신이 꽃을 만든 목적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처음 만든 꽃에 아름다움의 기원이 되는 조화로운 질서, 그 질서가 있는 상태인 우주를 지칭하는 단어인 코스모스를 이름으로 붙였다는 거지요. 작은 바람에도 흔들려 카오스를 만들어 내는 듯한 꽃의 이름에 코스모스라니. 누가 시작한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역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로고스(logos)보다는 아름다운 상상력이 더해진 미토스(Mythos)인가 봅니다.

코스모스 바깥쪽 둘레에 가지런히 돌아 난 8장의 꽃잎처럼 보이는 것들은 하나하나가 한 송이인 혀꽃들입니다. 한자로는 혀 모양의 꽃이라고 해서 설상화(舌狀花)라고도 하지요. 사진 제공 : 강세기

실제로 이 꽃에 코스모스라는 이름을 붙힌 사람은 1791년 스페인 마드리드의 식물학자 안토니오 호세 카바닐레스입니다. 18세기 스페인의 신대륙 탐험대가 멕시코에서 만난 꽃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 꽃의 씨앗을 고국으로 가져갔고, 그 씨앗으로 꽃을 피우는 데 성공한 그가 가지런히 붙어난 꽃의 모양을 보고 질서와 조화라는 의미를 가진 그리스어 코스모스를 이름으로 붙인 거지요. 사실 코스모스 바깥쪽 둘레에 가지런히 돌아 난 8장의 꽃잎처럼 보이는 것들은 하나하나가 한 송이인 혀꽃들입니다. 한자로는 혀 모양의 꽃이라고 해서 설상화(舌狀花)라고도 하지요. 그리고 혀꽃 안쪽에 촘촘히 자리잡은 것들은 하나하나가 한송이인 통꽃들입니다. 한자로는 통 모양의 꽃이라고 해서 통상화(筒狀花) 라고도 합니다. 이렇게 생긴 꽃들은 코스모스 외에도 백일홍, 벌개미취, 민들레, 해바라기 등이 있는데요 이들의 꽃송이는 한 송이가 아니라 수십 송이의 혀꽃과 통꽃이 모여 만들어진 꽃다발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통칭해서 국화과 Asteraceae 식물이라고 합니다. Asteraceae는 고대 그리스어로 별을 의미합니다. 조화로운 질서가 담긴 우주라는 이름의 코스모스는 별이라는 이름의 국화과 집안의 꽃인 셈이지요.

여덟 장의 혀꽃도 별 모양으로 달렸고, 덜 핀 통꽃도 별 모양, 피어 오른 통꽃도 별모양, 거기에 자리잡은 꽃가루주머니도 별 모양.
사진 제공 : 강세기

글이 길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번 가을, 길에서 코스모스를 만나시면 핸드폰 카메라를 꺼내 확대하여 꽃을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꽃이기에 초점을 잡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수고를 마다하지 말고 꽃을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여덟 장의 혀꽃도 별 모양으로 달렸고, 덜 핀 통꽃도 별 모양, 피어 오른 통꽃도 별모양, 거기에 자리잡은 꽃가루주머니도 별 모양. 온통 별들이 조화롭게 가득한 우주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별들에게 지구를 대신하여 안부를 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잘해보겠다고. 잠깐 있다 금세 사라질 존재일지라도 우리가 변해보겠다고. 비록 늦었고 더디고 부족할지라도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참, 코스모스를 우리말로는 ‘살살이꽃‘이라고 합니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꽃의 이름으로 잘 어울리죠? 가을바람이 붑니다. 코스모스가 살랑입니다.

강세기

빨리 이루고 많이 누리기 위해 무겁게 힘주고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천천히 조금씩 가볍게 살아도 괜찮다는 걸 풀과 나무로부터 배우고 있습니다. 숲과 산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댓글 2

  1. 가을의 전령으로 늘 반가운 코스모스에 이렇게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었군요~ 자세히 들여다본 꽃 속의 꽃들처럼 앞으로도 많은 이야기 기대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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