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현장에서 배치의 재배치를 통한 미시정치과정

자신의 ‘욕망’을 성숙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다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공교육의 책임이자 의무이며, 학교는 과거의 경쟁과 입시지옥으로 살벌한 공간이 아닌 미래지향적이며 자유로운 상상력의 토대가 되는 삶의 공간이어야 한다.

3월 2일은 새 학기가 시작하는 날이다. 교사도 학생도 설레는 마음으로 등교하는 날이다. 그동안 코로나19로 대부분 비대면이었던 입학식을, 올해는 학교마다 강당에서 선배들의 축하를 받으며 대면으로 진행하였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1학년들이 새내기로 불리며, 가장 축하를 받으며 즐거워하는 날이다.

또한 3월은 대부분의 학교가 ‘선거의 달’이다. 학생회장과 부회장을 직접 선출하며 자치 조직 구성과 민주주의를 배우는 시기이기도 하다. 저마다의 이유로 선거에 뛰어든 아이들은 그동안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느꼈던 불편함 또는 희망 사항을 선거를 통해 알리고, 자신의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선거공보나 공약으로 친구들 앞에 내놓는다. 아이들이 투표로 학급 회장이나 부회장, 학교의 회장단을 선출하는 일은 민주주의를 체득하는 중요한 교육 과정이다.

3월은 대부분의 학교에서 ‘선거의 달’이다. 
사진 출처: Element5 Digital
3월은 대부분의 학교에서 ‘선거의 달’이다.
사진 출처: Element5 Digital

어른들에게 옛날 ‘반장 선거’는 몇몇 잘 나가는 아이들이나 빽(?) 있는 부모를 둔 아이들의 잔치로 기억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학교의 선거 풍경도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요즘 선거는 입후보 제한이 없고 누구나 입후보해 어떤 학급을 원하는지, 아이들이 꿈꾸는 학교를 만들고자 하는 즐거운 축제가 되기도 한다.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학교에서는 2주 정도의 선거운동을 한다. 전교 임원선거는 그중에서도 가장 치열하다. 초등학교에서는 대개 5,6학년 아이들이 전교 회장 부회장에 입후보 등록하는데 30명 정도의 추천을 받아 후보 등록한다. 후보 등록을 마치면 자신을 지지하는 친구들과 공약을 만들고 대자보에 적어 게시한다. 그리고 교문에서 피켓을 들고 선거 운동을 한다. 교문 앞에서 하는 선거 운동 덕분에 등교시간은 왁자지껄하다.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을 목청껏 부르다가 아는 후배들이 지나갈 때는 후보의 이름을 어필하기도 한다.

교사들은 아이들의 선거운동 분위기가 과열되지 않도록 늘 신경이 쓰인다. 선거일에는 후보들이 자신의 후보이력과 들고 나온 공약을 가지고 전교생 앞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전교생이 투표를 실시한다. 온라인으로 투표를 하는 경우도 있고, 직접 투표를 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 학급 임원들로 참관인과 개표 요원을 뽑아 개표를 한다. 다음날 당선자가 발표되면 선거는 마무리 된다. 당선된 후보는 자신의 공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유권자였던 아이들은 당선된 후보의 공약을 기억하고, 만약 공약이 현실화되지 않으면 왜 실천하지 않느냐고 당선된 후보에게 항의를 하기도 한다. 당선된 아이는 그 이야기에 상처(?)를 받고, 괴로워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기존의 선거라는 시스템 속에서 선거를 치루지만 아이들 수준과 이해 정도에 맞는 타협하지 않는 아이들 특유의 윤리성을 가진다.

욕망이 우리 사이에서 생성되기를 기대하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자리 잡고 있을 때, 혹은 강도와 온도, 밀도, 속도가 다른 사람들 사이에 오가면서 관계가 발효되고 성숙할 때 변화와 이행, 횡단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모두의 혁명법』, 437쪽)

선거 과정과 선거 이후에 아이들은 전교임원이 된 회장과 부회장을 보면서 역할이 다를 뿐 전교 임원이라고 해서 권력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서로 다른 일 하는 것임을 깨닫고, 개인이 모여 공동체가 되는 것을 보고,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이렇게 아이들은 사회 속의 거시정치를 학교라는 공간에서 미시적으로 배우고 익힌다.

학교는 나와 다른 친구들이 함께 생활하고 서로 다름에 대한 인정을 교육하는 곳이다. 또한 타인의 자유에 대한 인식과 ‘자제력’을 요구한다. 다른 친구들의 존재를 인식하고 긍정하는 힘을 길러주고자 노력한다. 자신의 ‘욕망’을 성숙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다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공교육의 책임이자 의무이기 때문이다.

‘2019 학교 민주시민 교육 국제포럼’(이하 국제포럼)에서 거트 비에스타 교수(아일랜드 국립 메이누스대, 교육철학·교육정책 전공)는 “학교가 민주시민 양성의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 ‘민주시민 교육에 실제 필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학교는 어떤 방식으로 그 역할을 해낼 수 있는가?’를 먼저 질문해야 한다. 민주주의인 것과 민주주의가 아닌 것의 경계를 어떤 기준으로 나눌 것인지, 공교육은 민주 시민성과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지를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를 다수에 의한 통치라고 기계적으로 정의하는 것에 의문점을 가져야 한다. 미래세대를 위한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인정하며 더불어 살아가기’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라고 했다.

얼마 전, 하루 만에 국가수사본부장에서 사퇴한 정순신-순신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도 아까운-을 보며 너무나 화가 났다. 법을 다루는 변호사가 가해자인 자기 아들을 위해 자신의 연수원 동기에게 법정 대리인을 맡기고, 강제 전학을 취소해 달라는 1심, 2심, 대법원까지 소송을 하는 등 일반인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각종 법기술을 이용한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정순신 아들의 언어폭력도 끔찍하다. 개돼지, 빨갱이라니… 어려서부터 조선일보를 탐독했다던 고등학생의 언어폭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 사건은 학폭의 최고수위인 강제전학, 서면사과, 특별교육이수 10시간, 학부모 특별교육이수 10시간이라는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이 학폭 사건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피해자 아이는 1년이란 소송 기간 동안 같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피해자에게 학교는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을 생각을 하니 교사로서 너무 가슴이 아팠다.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의 축적과 대화가 이루어지는 공간이어야 할 학교는 휴식과 여백의 공간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학교 폭력으로부터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공간이 되었다. 법과 제도로는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켜주지 못하는 현실이 갈등과 대립을 야기하고, 학교 구성원들의 에너지 소진과 고갈로 따뜻한 공동체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학교는 미래지향적이며 자유로운 상상력의 토대가 되는 삶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사진출처 : CDC
학교는 미래지향적이며 자유로운 상상력의 토대가 되는 삶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사진출처 : CDC

학교는 타인의 자유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자제력을 배우는 곳이어야 한다. 다른 친구들의 존재를 인식하고 서로를 긍정하는 힘을 길러주는 곳이어야 한다. 자신의 ‘욕망’을 성숙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다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학교이다.

학교는 배움을 넘어서 공동체성을 키우는 곳이다. 아이들이 세상을 만나고, 자신을 만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주는 안전한 공간, 그곳이 바로 학교다. 그러기 위해서 학교는 어떤 배치를 통해 과거의 경쟁과 입시지옥으로 살벌한 공간이 아닌 미래지향적이며 자유로운 상상력의 토대가 되는 삶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공동체에서의 갈등과 대립의 근본 이유를 따지고 들어가 보면 에너지의 소진과 고갈에 이유가 있다. 즉 서로를 수용하고 사랑과 정동의 흐름을 유통시킬 에너지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 즉 자신이 떠들고 돌아다니며 놀이를 할 수 있는 능력, 즉 지도를 그릴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동들이 책상에서 의자로 칠판으로 복도로 창문 틈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듯이 이행하고 횡단하고 변이하는 지도 제작의 과정을 그려내기 위해서는 응축된 에너지와 강렬도와 밀도를 전제로 한다. 그런 점에서 공동체는 에너지 살림, 활력 살림, 정동 살림 등을 기반으로 하여 지속가능성을 기약해야 하는 것이다.“

『모두의 혁명법』, 446쪽

비관주의와 절규, 아우성의 실천 과정이 아닌 현실의 도처에서 발생하는 활력과 생명에너지로 가득찬 욕망의 혁명, 무의식의 혁명, 분자 혁명에 대해 주목하고 그에 대한 철학 학습이 필요하다. ”곳곳에서 발생하는 활력과 생명 에너지로 가득찬 건강한 욕망과 엄청난 상냥함과 사랑의 부드러움이 공동체에 순환“(모두의 혁명법, 448쪽)하기를 시작으로 ”새로운 유형의 감수성“으로 학교가 아이들에게 행복한 공간으로 재배치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모두의 혁명법: 펠릭스 가타리의 분자혁명을 읽는 14가지 방법』 신승철, (알렙, 2019)

투모로우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을 위해 전교조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30년차 초등교사입니다. 아이들이 배움에 몰입하는 모습을 가장 좋아하며, 등산과 음악을 삶의 즐거움 삼아 살고 있습니다. (오늘보다 더 의미 있는 내일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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