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농으로의 초대

자급을 꿈꾸는 이들의 가장 중요한 도전은 주곡(主穀) 농사가 아닐까 싶다. 경칩을 이틀 앞둔 봄날, ‘홍성자연농학교’ 첫 만남이 있었다. 자연농 방식의 벼농사와 보리(밀)농사를 한 해 동안 함께 짓는다. 올해로 8년째 이어오고 있는 홍성자연농학교는 금창영 농부의 초대로 시작되었다.

아이들과 자연을 만나는 기회로 소소하게 시작한 5평 주말 농사가 한 가족의 채소 자급을 가능하게 한다는 뜻밖의 경험은 도시농부에게 더 큰 꿈을 꾸게 한다. 해를 거듭하여 사용할 수 있는 밭을 찾아 겨울 농사로 마늘을 심고, 양파를 심는다. 그러면 다음 해 밭의 넓이는 더 넓어져 있다. 작지만 짱짱한 마늘과 양파의 달고 아린 맛은 고소한 참기름과 들기름을 직접 길러 짜 먹으리라는 꿈을 꾸게 한다. 그리하여 도시농부 몇몇이 제법 넓은 면적의 참깨밭, 들깨밭을 함께 일구는 공동 농사에 도전한다. 어찌어찌 우여곡절로 맛보는 고소함은 그냥 고소함으로만 끝나지 않는 뒷맛을 남길 수도 있다는 깨달음도 함께 얻는다. 공동체가 정말 가능한 걸까? 라는 물음표도 한 번쯤 떠올려보게도 된다. 그럼에도 여기서 한 발짝 더 욕심을 내 어느새 논에 발을 담가 서툴게 모내기를 하고 있다. 우리 밥상에서 가장 중요한 쌀, 벼농사를 지어보아야 비로소 비어있던 한구석이 채워질 것만 같은 이 마음을 어찌하겠는가. 가을이 시작될 무렵 색색으로 출렁이는 토종벼 논의 아름다움은 까슬한 벼 사이로 힘겨웠던 한여름의 피사리를 잊게 한다. 향기롭고 달콤하고 구수한 밥 한 숟가락은 또다시 볍씨를 담가 촉(싹)을 틔우게 한다. 이렇게 한해 한해 지나다 보니 어느새 도시농부의 삶으로 15년째가 되었다.

그중 벼농사는 8년째다. 절기로는 곡우(穀雨) 무렵, 자연 달력으로는 진달래가 피고, 조팝나무꽃이 필 무렵 볍씨를 담가 촉을 틔워 못자리 뿌려 모(苗)로 길러낸다. 물을 채워 써레질한 논에 모를 심는 모두가 아는 그 방식이다. 어릴 때는 온 동네 사람들이 돌아가며 거의 한 달 동안은 모내기를 했던 듯하다. 우리 집 모내기가 마지막이었던 날의 기억이 아직 남아있다. 동네 방송 스피커에서 우리 집 모내기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우리 논으로 모여 어른들은 ‘못줄 넘어간다’를 외치며 모내기를 하고 아이들은 논 옆에서 놀다가 심부름을 하다가 또 놀고 모두 모여 참을 먹는 잔치 같은 날이었다. 이앙기가 모내기를 대신하기 시작한 지 오래지만, 도시농부들의 모내기는 다시 사람이 한다. 지나가던 농부들이 오랜만에 신기한 광경이라며 웃음을 짓는다. 색다른 모의 모습을 보고 궁금해 하기도 한다. 벼가 자리를 잡고 벼꽃이 피고 벼 이삭이 여무는 동안 주변 농부들의 주목을 받는 논이 된다. 도시 사람들이 논 관리를 어찌할까에 대한 관심을 주시고 색다른 벼에 눈길도 주시기에 벼는 이쁘게 잘 자라나 보다. 서울 근교 도시농부가 짓는 논에서도 이러한데, 충남 홍성 논에서의 ‘색다른’ 벼농사는 어찌하랴.

홍성자연농학교 포스터. 자료제공: 곽선미
홍성자연농학교 포스터. 자료제공: 금창영

3월 첫 번째 토요일, 경칩 이틀 전날이었다. 올해 ‘홍성자연농학교’ 첫 만남이 있었다. 충남 홍성군 홍동면 구정리 금창영 농부의 900평 ‘자연농 논’에서 한 해 동안 벼농사와 보리농사를 함께 짓는다. 농사방식은 ‘자연농’이다. 2016년부터 함께 농사지을 가족을 모았다고 한다. 포스터에 나와있는 것처럼 한 가족당 100평 이하를 분양한다. 첫해는 아홉 가족이 함께했고, 참여자가 점점 많아져 작년에는 서른네 가족이 함께했다고 한다. 그 첫해부터 8년째 함께 하는 이도 올해 모임에 함께 했다. 가까운 곳으로 귀농한 이도 몇몇이 있었지만, 서울, 대전, 천안 등등 멀리에서 온 이들도 여럿이었다. 환경단체 청년도 여럿, 초등학생 자매를 데리고 참여한 먹을거리에 관심 많은 엄마, 은퇴자로 보이는 어르신 등 다양한 이들이다.

올해 농사의 흐름이 안내되었다. 공동으로 짓는 방식이 아니고 각자 자신이 정한 넓이의 논에서 자신의 농사를 오롯이 지어 수확하는 한 해를 보내게 되는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첫 번째 토요일에 모이고 농부는 그달에 할 일들을 참여자에게 안내하고 농사에 대한 정보를 준다. 이를 토대로 참여자들은 자신의 흐름에 따라 자신의 농사를 짓는다. 금창영 농부 특유의 솔직함은 유머가 되었지만, 참여자들의 몸과 마음에 힘듦과 갈등이 찾아올 것임이 안내되었다. 처음 참여한 이들은 안내를 받고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지 궁금해진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농사, 풀과 벌레와 함께 하는 농사 방법을 찾습니다.’라는 뜻에 동의하며 모였지만, 농사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올라오는 원망과 억울함으로 힘들 수 있다는, 아니 분명히 힘들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한다. 자신의 상황을 충분히 들여다보고 즐겁게 자연농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의미이리라.

자연농학교 논의 모습은 한눈에 보기에도 주변 논과 달라 보였다. 논이지만 밭처럼 두둑과 고랑이 있었다. 작년에 거둔 볏짚이 두둑 위를 가지런히 덮고 있고, 그 사이로 겨울을 난 호밀과 보리잎이 조금씩 초록초록 해지려는 게 보인다. 겨울에도 호밀과 보리의 뿌리가 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잎을 내밀며 볏짚과 함께 흙 위를 덮고 있었다. 이모작을 하는 자연농의 논은 이렇게 맨흙이 드러나는 시간이 없도록 한다. 마치 지금은 밭처럼 보이는 이 논은 곧 호밀과 보리가 봄기운에 자라나 이삭을 맺고 5월 말이면 누렇게 되어 수확을 할 수 있다. 밀짚과 보릿짚은 베어 눕혀져 다시 흙 위에 놓일 예정이다. 그 짚 사이를 열고 모(苗)를 심게 되는 시기는 6월 초쯤이 된다. 작년에 농사지은 이가 씨 뿌렸던 밀과 보리를 올해 농사짓는 이가 수확하는 방식이다. 올해 참여자는 벼 수확을 마치고 뿌릴 내년을 위한 밀이나 보리 씨앗을 남겨두어야 한다.

밀과 보리가 자라는 동안 4월부터는 볍씨를 준비하고 못자리를 만들고 모판에 볍씨를 심고 기르는 일이 진행된다. 벼의 품종은 여러 가지여서 그 특징에 따라 자신이 마음에 드는 품종으로 선택한다. 자라는 모습도 수확하는 시기도 여러 가지다. 자연농의 모심는 방법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방식과는 다르다. 논을 갈지 않고 물을 채우지 않은 상태로 마치 밭과 같은 두둑 위에 모를 심는다. 맨손으로 하기는 어렵고 도구를 이용한다. 쪼그려 앉아 한 포기 한 포기 정성을 들여 심으면 새끼치기를 더 잘하게 된다. 줄을 잘 맞추고 간격이 좋을수록 나중에 풀을 벨 때 좀 더 수월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모를 심는 모습은 기존의 벼농사 모습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어서 지나는 이들의 발을 멈추게 한다. 그리고 질문하게 한다. 그러나 설명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어서 길 가까이에 자리 잡은 이의 마음 근육은 튼튼한 단련이 필요하단다.

벼를 수확한 후의 자연농 논. 사진제공 : 곽선미
벼를 수확한 후의 자연농 논. 사진제공 : 금창영

모심기가 끝나면 논에 물이 들어가게 한다. 고랑부터 물이 차올라 모를 심은 두둑 위가 충분히 잠기도록 한다. 이때는 여는 논과 비슷한 모습이 된다. 필요에 따라 농부는 물의 높이를 높게도 또 낮게도 조절하며 벼의 자람을 돕는다. 그러는 사이 벼도 자라고 함께 풀도 자란다. 자연농 방식은 밭에서든 논에서든 풀을 뽑지 않고 베어 눕힌다. 그러기를 두 차례 정도 해주면 논은 벼로 가득한 모습이 된다. 한여름 쑥쑥 자란 벼는 품종에 따라 저마다의 시기에 저마다의 벼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논은 더욱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끌어 모은다. 길이도 색도 다른 벼 이삭들이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이 모습에 반해 여러 품종의 벼를 심는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르게는 9월부터 늦게는 10월 말까지 늦가을이 되어 수확하는 벼도 있으니, 자신의 선택에 따라 벼의 자람에 따라 돌보고 수확한다. 그리고 내년을 위한 밀이나 보리 씨앗을 뿌려놓는다. 벼를 베어 볏단을 만들어 볏덕에 볏단을 걸어두고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말려 탈곡한다. ‘호롱기’라고 하는 발탈곡기는 수확 시기에 논에 항상 대기하고 있다. 박자를 잘 맞춰 발로 밟아주면 돌아가며 벼 이삭의 낟알을 떨어낸다. 방아 찧어 나온 쌀로 밥을 짓고 음식을 나누는 것으로 자연농학교의 한해 농사는 마무리된다.

올해 첫 만남의 참여자들은 웃음으로 인정하고 기대와 걱정으로 아직은 알 수 없는 자신의 감당할 만큼을 정하였다. 작게는 10여 평, 많게는 50평, 또는 내년을 기약하기도 한다. 농사짓는 동안 내가 정한 곳을 돌보는 것 외에도 논물을 넣고 빼는 일, 논둑의 풀을 깎는 일 등 공동의 일도 생기게 된다. 누군가는 그 일을 하게 되겠지만 그에 대한 보상은 자기 자신에게만 받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는 것도 규칙 중의 하나이다. 과정 안에서 일어나는 협업이나 도움도 서로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의사를 확인한 후 이루어지도록 할 것 등 조금은 낯선 방식일 수도 있는 규칙들이 존재한다. 이런 홍성자연농학교는 금창영 농부의 논에서 무료로 운영한다. 왜일까? 이날 그 이유를 묻는 이는 없었다. 어디에서 지원을 받는 것이겠거니 짐작해보았다는 이도 있었지만, 외부 지원 없이 운영해오고 있다. 어떤 이는 그 이유를 묻기엔 너무 커서 질문하지 못했다 한다.

8년을 이어오는 자연농학교의 앞으로의 지속을 묻는 나의 물음에 대한 답으로 “재밌잖아요.” 라고 말하는 금창영 농부의 얼굴은 웃음이다. 그는 참여자들에게 자연농에 대한 거창한 설명을 하거나 대부분 첫 모임에서 의례 설명되는 취지를 말하지도 않았다. 그저 이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요인들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한 몇 가지를 솔직하게 안내할 뿐이었다. 그저 참여자들이 자연농과 만나는 공간과 시간을 갖도록 안내하는 것이었다.

마치 자연농의 논밭에 다양한 생명이 깃드는 것처럼 그의 논밭으로 자연농을 경험하고자 다양한 이들이 깃드는 듯 보인다. 그러면서 자연의 방식을 닮아가기를, 아직은 싹을 품고 있는 씨앗으로 있을지라도 그 싹을 내놓을 흙과 때를 만날 수 있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곽선미

2009년부터 은평구에서 텃밭 농사를 짓는 도시농부. 반농반도(半農半都)로 먹거리 자급을 했던 소도시 출신으로 자연과 닮은 삶의 지향이 도시의 여러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믿는다. 현재 사단법인 텃밭보급소 대표로 활동하며 흙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을 하고 있다.

댓글

댓글 (댓글 정책 읽어보기)

*

*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