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과 방학 : 학습노동의 탈주로는 있는가?

코로나 19로 인해 학교도 외부 세계의 변화를 민첩하게 수용하고 있다. 비대면으로 유지되던 학교 일정이 개인에게 주도권이 이양된 방학은 학생들에게 학습노동의 탈주로일까? 학생들의 학습노동은 평가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사교육과 학교와의 관계까지는 논하지 못했지만,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평가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2021년의 2학기는 가을장마와 함께 시작했다. 코로나 19가 변화시킨 세계에서 학교도 예외일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학교가 이렇게 외부 세계의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한 적이 있었을까? 학생으로서 혹은 학부모로서 학교와 관계를 맺고 있기에 우리는 대체로 학교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학교’에서 느껴지는 감각과 경험은 개인별로 차이가 크다. 그래서 누구나 ‘학교’와 ‘학생’에 대해서 잘 알고 교육정책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학교가 혁신적인 변화를 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대학서열화로 인한 입시교육의 폐해가 여전히 학교현장에서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물론 최근 ‘대학혁신 시민행동 시민응원단’이 조직되어 전국의 시민들이 줌으로 모여 공부하고는 있지만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너희는 세상의 지식과 견해를 주입받고 있는 중이야. 우리는 아직 이런 주입식 교육 체제보다 더 진보된 교육 체제를 만들어내지 못했단다. 미안하지만 현재로선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야. 너희가 여기서 배우고 있는 것은 이 나라의 특정 문화가 선택한 내용과 동시대의 편견이 뒤섞인 혼합물이지. 역사를 조금만 돌아봐도 이런 것들이 얼마나 일시적이고 덧없는지 알 수 있다. 전임자들이 만들어놓은 사유 체제에 자신을 순응시켰던 자들이 너희를 가르치고 있어. 그런 식으로 체제는 영속된단다. 너희들 중 강하고 독창적인 아이들은 여기를 떠나 스스로를 교육할 방법을, 다시 말해 자신만의 견해와 판단력을 길러낼 방법을 찾으라고 권하고 싶구나. 여기서 남은 아이들은 이 특정한 사회의 협소하고 특정한 필요에 맞춰, 마치 거푸집으로 형상을 뜨듯 판에 박은 듯 주조되고 만들어지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로리스 레싱, 『황금 노트북』

이는 조너선 코졸의 『교사로 산다는 것, 학교 교육의 진실과 불복종 교육』에서 표지를 넘기면 만나게 되는 글로, 마주하기 힘든 현실과 묵묵히 싸워가는 교사들의 삶을 떠오르게 해준다. 공교육 현장에서 숨겨지고 미화된 거짓말, 말도 안 되는 관행들을 아이들이 감당하게 하는 것은 모든 어른의 몫이겠지만,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에 교사의 슬픔은 곧 학교의 슬픔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대안학교가 생겨나 거대한 강물의 흐름을 바꾸지는 못해도 자신의 몫을 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최근 공교육에서 대안 학교의 성과를 수용한 혁신학교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이곳도 입시교육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이들에게 배움과 성장의 기쁨이 움트고 자리 잡기보다 공정성과 객관성을 바탕으로 한 평가로 경쟁을 통한 승패의 감각을 익히는 시간이 훨씬 많다. 그 때문인지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유년 시절의 환하고 천진난만한 표정과 몸동작이 차차 굳어져 무채색의 표정과 자세로 대학을 졸업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행복 사회로 정평이 나 있는 덴마크에서는 학교급이 올라가도 어릴 때의 밝은 표정이 여전한 것에 충격을 받았다는 오연호 선생님의 말씀이 우리 아이들의 모습과 겹칠 때면 씁쓸하다.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유년 시절의 환하고 천진난만한 표정과 몸동작이 차차 굳어져 무채색의 표정과 자세로 대학을 졸업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by. Feliphe Schiarolli, 출처:
https://unsplash.com/photos/hes6nUC1MVc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유년 시절의 환하고 천진난만한 표정과 몸동작이 차차 굳어져 무채색의 표정과 자세로 대학을 졸업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사진 출처 : Feliphe Schiarolli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일 년에 한 번 대학수능시험일이면 비행기도 멈추고 회사원의 출퇴근 시간도 바뀐다. 교사들은 교실의 모든 게시물을 떼어내고 수능고사장을 단장하고, 매해 교활해지는 첨단기기를 활용한 커닝 수법을 방어하기 위한 수능시험감독 연수를 받는다. 수능 감독을 할 때면 교실을 돌아다녀도 안 되고 지정된 자리에서 가만히 서 있다가 시험을 치르는 학생이 도움을 요청할 때만 이동해야 한다. 5지 선다형 객관식으로 순위가 매겨지는 시험문제가 출제되어야 그 결과를 수용할 수 있는 공정성이 성립된다. 공교육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대학수능력시험장의 삼엄함의 축소판인 학기별 중간, 기말고사장의 긴장감은 대입, 취업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싶은 학생들에게 학년이 높아질수록 커진다. 그리고 시험 문제를 출제하고, 학생과 학부모가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수치로 환원하여 이를 증명해야 하는 교사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학기말, 학년말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학생 개개인이 배우며 성장하는 기쁨보다는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기준이 더 강력한 힘이 발휘되는 곳이 현재의 학교 교육이다. 그러므로 엄격하게 말해 ‘학교’가 곧 ‘교육’은 아니지만, 우리는 흔히 이 둘을 혼동해서 사용해서 말하기도 하고, ‘공교육이 이루지는 학교’에 다닌 청소년들을 ‘학생’이라고 부르고,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행위를 ‘교육’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구별되어야 하는 개념이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어 불편한 감정이 생기는 지점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문제의식 없이 수용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아 이들의 구별이 필요하다.

인문계 고등학생이 대학 진학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묘한 전쟁은 방학을 맞이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더 치밀하고 섬세하게 전략을 짜서 준비하는 시간으로 방학을 보내거나, 평가받은 과목의 성적을 보완하거나 유지하는데 시간을 보내지 못해 불안함이 커졌을 것이다. 고3이 되면 하위권 성적의 학생들도 대부분 대학 진학을 포기하지 않는다. 한국교육개발원에 의하면 2020학년도 대입에서 일반고 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최근 10년 새 가장 높은 수준인 79.4%를 기록했다고 한다. 당시 고3 학생 수가 전년도보다 약 7만 명 감소하면서 대입 경쟁률이 낮아짐에 따라 지망 대학에 진학하기 수월했던 것이 진학률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대학을 진학한다고 이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 대학 반수(半修) 7만 명 시대로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제대로 성찰하지 못한 채 서열화된 대학에 점수를 맞춰 진학한 후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대학 진학이 아닌 취업을 목표로 삼은 공업계 고등학생은 이와 다른 삶일까?

공고 학생들을 올해부터 만나게 되어 그들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중이라 쉽게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인문계 학생들에게서 느끼는 안타까움보다 더 쓰라리고 아픈 구석들이 있다. 인문계 학생들은 대학을 진학하여 사회인으로 진입하는 시간을 유예하지만, 공업계 학생들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취업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적성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사회적 환경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아니라 입시전쟁을 회피하기 위한 도피처로, 취업해서 빨리 돈을 벌어 부자가 되겠다는 순진한 마음에서 출발한 경우가 많다. 대·공기업 취직을 목표로 하거나, 아예 중소기업에서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으로 고등학교 생활을 한다. 이들의 방학 생활이 궁금해서 1학년 대상으로 간단한 설문조사를 했다. 방학 동안 새롭게 발견한 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적어보라고 했는데, ‘누워있기’, ‘게임’, ‘학원가기’, ‘숨쉬기’처럼 성의 없는 답변부터 ‘하늘 바라보기’, ‘서핑’ ‘가타연주’처럼 다양한 취미생활을 소개했다.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방학의 생활과 비대면 온라인 수업 상황에서 관심사나 생활에서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방학이라고 해서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공고 학생들도 전공 자격증부터 토익자격증, 한국사자격증까지 방학 동안 일과 중에 집중하기 어려운 학습노동에 열성을 다하기도 했다. 공고 학생들의 학습노동, 그리고 취업 후 상황이 인문계 고등학생들보다 낫다고 감히 말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학생들이라고 지칭하면 아이들의 삶을 말하기보다 공부하는 존재로 단편적으로 말하는 것 같아 불편하다.

이렇게 아이들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분명해진 것은 학생 스스로 거대한 사회이념을 탈출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새로운 탈주로를 찾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사회적 요구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방법을 체득하고 있는 것만 같다. 로리스 레싱이 말했듯이 자신만의 견해와 판단력을 길러낼 방법을 찾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신생철학』(윤노빈)에서 그 열쇠를 찾자면, 아마도 거대한 거짓말을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을까 한다.

인식은 살아있는 ‘무기’다. … 사람을 거세하며 사람의 물건을 빼앗으며 정신을 홀리는데 인식의 창(槍)처럼 강력한 무기인 것도 없다. 이처럼 인식이라는 무기는 한편 모든 공격으로부터 안전한 최후의 ‘후방’인 동시에 다른 한편 모든 방어를 뚫을 수 있는 ‘최전선’이기도 하다.…심리적 세균을 주사함으로써 공포와 흥분, 우울과 쾌감과 같은 정서적 반응을 유발시킨다. 그 결과 사람들은 용기와 저항의지가 무참히 거세되어 대량의 정신적 내시가 된다. 이것이 현대의 대량살육이며 대량뇌살이다. … 가장 고귀한 전리품인 산 사람을 대량적으로 노획할 수 있는 전쟁이 심리전이 아닌가. … 잡다한 자극에 지쳐 있는 사람은 잡다성으로부터 자신을 보존하기 위한 선천적 해결방법으로써 무관심이라는 방패를 사용하는 것이리라. 무관심은 시끄러운 소리, 눈부신 색깔과 같은 달갑지 않은 자극들에 대한 일종의 ‘판단중지’이며, 생명체의 자기보호를 위한 자율적 ‘자위책’인 것이다. … 무관심은 그 초보적 단계 또는 예비적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 현대 인류가 대심리전의 싸움터에서 당하고 있는 광범위하며 보편적인 고통은 무관심과 신경질이다. … 약자의 우정, 약자들 사이의 사랑은 약한 것이다. 노예에게 진정한 우정이 성립되기 매우 어렵다. … ‘자유’ 없이 우정없다.

『신생철학』, 231~244쪽 발췌

윤노빈의 목소리는 지금도 유효하다. 그리고 절실하게 아이들을 깨워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자유를 허해야 한다고 외치게 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주입식 일제 교육에서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부와 권력에 대한 추종하는 문화와 대학서열화가 존재하고 이에 순응하는 거대한 학교 시스템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가 학교를 변화하게 했지만, 학교는 온라인 학습 도구만을 민첩하게 수용할 뿐 거대한 평가시스템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다. 양적평가로 인한 문제의식 때문에 질적평가를 도입하여 수행평가로 학교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과 성과는 타당성과 공정성 시비로 인해 결국 퇴행하고 말았다고 생각한다. 양적평가와 객관적 증빙이 가능한 활동만이 교육평가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이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활동은 나이스(교육행정정보시스템 NEIS)에 기록하되 정해진 지침을 준수해야 하기에, 여전히 공정하게 드러낼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하기에 바쁘다.

유은혜 현 교육부 장관. 출처: 교육부 홈페이지.
유은혜 현 교육부 장관.
사진 출처: 교육부 홈페이지.

흔히 말하는 학교-공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에서 이루어진 과업은 국가정책과 연관이 깊다. 옛날부터 교육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하였지만 교육부 장관은 해방 이후(1948년~) 61번 바뀌었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여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보통은 관심이 없다. 교육부 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하며, 교육부는 교수집단이 만들어가는 국민교육 이데올로기 기관이었다. 친일파로서 친일교육법, 특히 교육법 제75조 ‘교사는 교장의 명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를 온존시킨 초대 안호상, 건국공신과 친일파의 양면을 지닌 2대 백낙준, 교육민주화를 말살한 인물로 평가되는 10대 문희석, 미군정 이후 폐지되었던 일제(日帝) 잔재 교감제도를 교사감독 강화 방침으로 부활시킨 12대 박일경. 이 외에도 교육부 장관들은 처세술에 뛰어나 진보와 보수를 넘나드는 속물적 근성을 지녔거나 반민족주의자로 시비가 끊이지 않는 인물은 물론이고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까지 교육부 장관의 내력1을 보고 있자면 학생 각자, 국민 각자의 각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더욱 깨닫게 된다.

이상이 없는 현실주의자는 돈의 노예가 되기 쉽고, 현실의 실력이 없는 이상주의자는 공허할 뿐이기에 이 모두를 아우르는 넓은 안목과 세상에 펼 수 있는 실력을 함께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도 매번 실패하는 탈주를 실패하기에 선각자들의 안목과 실력에 기대곤 한다. 내겐 『동경대전』과 『신생철학』이 그 단서를 찾곤 하는데, 탈주를 위해선 거대한 욕망이 복잡하게 얽힌 세계에서 탈주로의 첫 단추는 정신을 차리고 거짓말을 알아차려야 한다고 두 책에서는 말하는 것 같다. 어쩌면 아이들은 거대한 거짓말을 알아차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손을 내밀 때 손을 잡고 함께 할 수 있는 어른들이 많이 생긴다면 좋겠다. 그게 내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도 하다.


  1. 김대유, ‘교육부장관 그들은 누구인가’ 기획연재, 교육플러스(eduplus)(http://www.edpl.co.kr)

우수경

‘경험디자이너’라는 자의식으로 부산에서 고등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촛불 하나 밝히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그리고 삶에 있어 기쁨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위한 사랑과 용기를 반려견 동풍이에게서 전수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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