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발행된 두 편의 글에서 나는 ‘회색지대의 정치학’이라는 주제로 동시대 정치현상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을 서술하였다. 두 글이 일종의 총론에 해당한다면, 앞으로는 나의 경험에 비추어 동시대 사회운동과 진보·좌파 정치의 변화와 관련된 각론을 전개하고자 한다. 시기적으로는 2010년대 이후이다. 나는 이 시기를 또래 대학생, 활동가, 연구자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하며 보냈다. 이 활동들 중에는 전통적인 의미의 사회운동과 진보·좌파 정치에 해당되지 않는 것도 많았지만, 한편으로 이 활동들에는 동시대 사회운동과 정치 영역에서 벌어진 여러 변화들이 반영되어 있었다. 언젠가 이 시기를 복기하는 것이 중요해질 때가 올 것이라 믿는다. 그런 마음으로 거칠고 시론적인 비평이 될지 모르지만, 글을 남겨두고자 한다.

첫 번째 주제는 ‘사회적 경제’와 ‘사회혁신’이다. 이 두 가지 주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신자유주의의 유기적 위기라는 조건에서 이른바 ‘사회적인 것(the social)’이 강조되는 상황과 관련이 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는 IMF 체제 하에서 노동 유연화, 민영화, 기업 구조조정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재구조화 과정에 돌입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전환은 양극화의 심화, 사회적 불안정성의 확대, 실업과 같은 사회 문제를 야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 마을 공동체, 사회적 경제, 사회혁신 등이 일종의 신자유주의 대항 담론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담론들은 규범적인 차원에서 국가와 시장 그리고 정치와 경제 논리와는 다른 사회적인 것의 가치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회적 경제는 구성원 간의 협력과 자조를 바탕으로 재화·용역의 생산 및 판매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경제 활동을 말한다. 대표적인 사회적 경제 조직으로는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이 거론된다. 한국의 사회적 경제는 국가 주도로 제도화되면서 적극적으로 육성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이 만들어진 이후 사회적 경제 담론과 제도가 본격적으로 확장되었으며 주로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활동 자체가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는 형태를 띤다. 이러한 경향은 제도적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혁신적인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바탕으로 민간 영역에서의 기업 활동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소셜 벤처(social venture)’라는 새로운 영역의 등장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넓은 의미에서 사회적 경제는 그 목적과 형식, 내용의 차원에서 시장경제와 구분되고자 하는 경제활동 영역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겠다.
한편으로 사회혁신(social innovation)은 기존의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 전략 또는 개입의 총체를 의미한다. 문제 해결 방법의 혁신성을 강조하는 것을 제외하면 사회혁신에 대한 일관된 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박원순 서울시정과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잠시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 수준으로 도약하긴 했지만, 사회적 경제와 비교했을 때 제도화 정도도 약하고, 관련 기관이나 단체도 많지 않다. 그렇지만 사회혁신 담론의 모호함은 그 강점이기도 하다. 사회혁신의 고유성은 전통적인 사회변화의 전략인 ‘개혁’과 ‘혁명’이 아닌, 넓은 의미에서 경영학의 개념 중 하나인 혁신(innovation)을 사회변화와 연결했다는 점이다. 사회변화가 사회 구성원들 간의 창조적 협력을 통해 추동될 수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 새로운 사회변화의 전략으로 여겨진다.
제도나 정책의 수준에서는 여러 부침이 있지만, 2010년대를 거치며 사회적 경제와 사회혁신은 오늘날 사회문제 해결과 관련된 대중적 상상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편으로 사회적인 것의 부상에 대한 비판적 연구들도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들 연구들은 대체로 사회적 경제나 사회 혁신과 같은 담론들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항 담론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신자유주의로 인해 초래된 사회적 위기를 정상화하고, 대항적인 실천들을 포섭하는 통치의 전략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주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통치성(governmentality) 논의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헤게모니의 관점에 입각하여 사회적인 것과 관련된 담론들을 통해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그려낸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저서로는 『포획된 저항』(김주환, 2017), 『비틀리는 사회혁신』(장훈교, 2021)을 들 수 있다.
사회적인 것에 대한 비판적 연구들은 사회적 경제와 사회혁신과 같은 담론들이 적대의 문제를 우회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정치란 적대를 구축하는 것이라는 샹탈 무페(Chantal Mouffe)의 관점을 따르자면, 이 담론에는 정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나 시민사회 전체 수준의 구조적인 문제로부터 출발하지만, 적대의 문제를 우회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동료시민들 간의 미시적인 협력을 강조하거나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하는 활동에 머물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경향적으로 권력의 작동에 취약하다. 이런 비판은 사회적 경제나 사회혁신과 같은 대안 담론들이 ‘적대 없는 협력’에 머무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로 인해 전통적인 사회운동과 진보·좌파 정치 영역에서 이 담론들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효과적인 전략으로 여겨지지 않고 있다.

오늘날 사회적 경제나 사회혁신과 같은 방법이 과연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적대 없는 협력’에 대한 비판은 적실해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들 담론이 왜 2010년대를 거치며 사회문제 해결에 대한 대중적 상상의 초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는가의 문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단지 신자유주의로 인해 위기가 초래되었고, 그 대안으로 사회적인 것이 강조되었다는 맥락만으로는 부족하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적대 없는 협력’ 문제 이전에 ‘협력 없는 적대’의 문제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적대 없는 협력에서 협력 없는 적대의 문제로 관점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것에 대한 강조를 일시적인 유행이나 특정 세력의 정책 담론으로 보기보다는, 1990년대 이후 사회운동의 제도화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시킬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1987년 민주화 합의 이후 확장된 정치적 공간에서 다양한 사회운동들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넓게 보아 이러한 흐름을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으로 구분하는 논자들도 있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적대를 조직하는 기존의 방법에 대한 반성적인 논의가 확산되었다는 점이다. 기존의 방법이란 독재 대 민주화 혹은 자본 대 노동과 같이 사회를 적대적인 두 전선으로 나누는 방법을 뜻하기도 하며, 흔히 말하는 ‘운동권 문화’의 구습과 관련된 정치조직화의 방법을 뜻하기도 한다. 이는 변화된 사회적 조건에서 적대를 구축하고자 하는 기존의 방법을 보다 민주적이고 협력적인 방식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반영된 것이었다. 말하자면, 기존의 방법이 ‘협력 없는 적대’에 머물지 않았는가 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제기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일군의 시민운동 세력이 실용주의 노선과 적극적인 제도화 전략을 택하면서 사회적인 것의 정치를 주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단지 위로부터의 개혁이거나 개량주의적 시도로 규정짓기보다는 이 흐름이 협력 없는 적대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했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나에게는 사회적 경제와 사회혁신 담론이 협력 없는 적대의 문제를 보이면서 권력에 포섭되었다는 사실보다, 어째서 협력 없는 적대에 대한 문제의식이 적대 없는 협력으로 귀결되었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좀 더 중요해 보인다. 이는 곧 어떻게 민주적이고 협력적인 방식으로 적대를 구축할 것인가 하는 정치적 문제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세력이 향후 사회운동과 진보·좌파 정치 영역의 헤게모니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재 이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으며, 적대 없는 협력과 협력 없는 적대라는 문제는 분화된 진영 속에서 일정 정도 보존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여전히 사회운동과 진보·좌파 정치에 대한 첨예한 논쟁들이 총체적 변혁이냐 부분적 개량이냐 하는 틀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고 느낀다. 이를테면, 자본주의 체제를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 수준의 논의에 너무 많은 것들이 소모되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물론 이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문제이지만, 총체적 변화는 언제나 부분적 변화와 함께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개량주의적 시도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잠시 거리를 두고, 과연 작금의 사회운동과 정치가 협력적인 방식으로 적대를 구축하고 있는가의 문제에 좀 더 천착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사회적 경제와 사회혁신 분야의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이들이 협력적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한 다양한 상들을 현실에서 구현하고자 애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회 전체를 하나의 실험 공간으로 본다는 것이 비록 적대 없는 협력이라는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협력을 주제화하고 새로운 조직화 실험을 전개해 나간다는 점에서 배울 것이 많다고 느꼈다. 역으로 사회적 경제와 사회혁신의 개량성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협력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의 정치를 만들어 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때도 있다. 급진적인 사회운동가와 비판적 지식인, 사회적 기업가들과 혁신가들이 모여 서로에게서 배우는 날이 올까? 그렇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