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정치 : 혁명은 바람처럼, 연대는 무지개처럼

이 글은 3월 15일 ~ 4월 30일 진행된 〈다른 세상을 만나는 봄바람〉에 참여하며, 보고 느낀 점을 기록한 글입니다. 중앙에서 하달되는 방식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풀뿌리 연대와 대안적 사회운동이 어떻게 가능할지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바람이 불어왔다. 제주에서 시작된 연대의 바람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경기도를 거쳐 서울에 도착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잡고서.

제주강정-제주시-대정읍-부산가덕도-울산-경산-경주-대구-단장-밀양-성주소성리-전주-군산-영광-순천-진도-목포-무안-하동-세종-대전-천안-아산-예산-청주-평택-삼척-강릉-양양-인제-춘천-홍천-봉화-인천-강화-의정부-인천공항-영흥도-의왕-수원-안산-부평-서울. 40일간의 순례를 마치고 서울 종로에 모여 함께 춤추며 난장을 벌이고 있다. 사진 제공 : 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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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바람은 민들레 씨앗처럼 투쟁의 현장에서부터 홀홀이 퍼져 나갔다. 봄바람 순례단은 긴 길을 걸으며 이 씨앗이 더 멀리 퍼져 나가도록 바람을 일으켰고, 씨앗들은 아름다운 연대의 싹을 틔우며 무지개처럼 형형색색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순례단은 서울에 도착하기 전까지 전국 각지에서 투쟁하는 다양한 사회문제의 현장에 방문하고, 연대하며 함께 걸었다.

모순적이게도 서울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서울의 문제점이 지역에서 더 선명하게 튀어 나왔다. 발전소, 쓰레기매립지, 오폐수처리장, 물류센터와 공항, 군사 기지. 서울이 과성장 할 수 있었던 동력은 지역위에 식민지처럼 군림하며 위험과 고통을 외주화 했기 때문이다. 위험시설이나 혐오시설은 감히 ‘서울’에는 지을 수 없기에 지역으로 떠넘겨졌다. 이윤은 기업이 챙기고, 정치인은 권력을 유지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과 희생은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이다. 모든 지역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이러한 기업-정치의 연합적인 형태로 작동한다. 지역에서 닫힌 싸움을 하던 이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었네’ 라는 연대의식을 갖는다. 기후, 노동, 평화, 평등이라는 의제는 각기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폭력의 구조는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렇게나 다양한 문제들로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에 아찔하기도 하지만 거대한 사회문제는 거대한 투쟁의 연대를 낳는다. 부당한 폭력을 겪는 사람들이 교차성을 가지고 연대할 때, 세상을 뒤엎을 동력의 단초가 싹튼다.

“단지 걷는 것만으로 세상이 바뀌겠어?”

순례단은 괴로운 투쟁의 현장을 찾아가 노래하고, 춤추며 함께 걸었다.

행진을 마친 참여자들이 함께 손을 잡고 평화의 춤을 추고 있다. 사진제공 : 랑
행진을 마친 참여자들이 함께 손을 잡고 평화의 춤을 추고 있다. 사진제공 : 랑

행진은 굉장히 온건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일종의 ‘점거’운동이다. 자동차에게 빼앗긴 도로를 한정된 시간이나마 시민들이 탈환한다. 사람들은 자동차의 눈치를 보며 신호등이라는 교통규칙의 명령에 따라 복종적으로, 제한적으로 움직였던 도로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걷고, 뛰고, 춤추고, 노래하며 자유와 해방을 만끽한다.

이때 자동차는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게 된다. 차선이 좁아져 길이 더 막히거나, 우회해서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행진은 방해시위이자 토지점유운동이다.

‘자동차는 걷는 것보다 편하다’는 생각은 도로라는 인프라가 자동차 중심으로 건설되어 있기에 가능하다. 차도가 막히면 자동차는 이동권을 박탈당하는 일종의 ‘장애 상태’가 된다. 사람들은 이 지점에서 어떤 모순을 목도한다.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도로에 선 사람들은 성난 상태로 고철 안에 갖혀 빵빵거리고, 천천히 춤추며 걷기 위해 도로에 선 시민들은 더 신나게 행진을 이어가는 것이다.

행진 현장은 우발적으로 지연되기도 하고, 약속한 차선 이외로 확산되며 새로운 영역을 침범하기도 한다. 행진의 진정한 묘미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사람이 하는 모든 일, 자연이 만들어내는 모든 것에 돌발적 변이가 수반되듯 행진도 그러하다. 늘어지고 확산되는 변이의 과정에서 뾰족한 무언가가 튀어나오며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 이런 경험이 혁명의 씨앗이 된다.

안될 것 같은 일이 사실은 가능하다는 작은 승리를 체험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한번 경험해본 일을 더 크게 상상하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것에 비하면 아주 쉽기 때문이다.

손수 바느질하여 만들어온 현수막에는 ‘이주 구금 없는 세상’ 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제공 : 랑

현장에서 발화된 야생의 언어, 한땀 한땀 바느질로 고이 만든 현수막, 거대한 삼두매와 도롱뇽, 폐자재를 재활용해 만든 악기, 정성스레 그려온 손피켓 등 다양한 기호들이 거리로 터져 나왔다.

거리 위에 선 신체들에는 그들이 걸어온 길에 따른 다양한 외침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지금 당장 기후정의! 차별을 끊고 평등으로! 전쟁연습 말고 평화연습! 일하다 죽지 않게, 비정규직 없는 세상!”

4월 30일, 용산에서 종로까지 이어졌던 거대한 연대의 행렬은 무지개처럼 아름답게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졌다.

비가 온 뒤 언젠가 무지개가 또 나타날 것을 알 듯이, 우리의 연대가 그날 반짝 나타났다 사라진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우리는 어딘가에서 각자의 일을 하겠지만 다시 거리로 나설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의 손을 잡고서, 더욱 거대한 연대의 행렬로.

동물권, 기후정의 활동가.
지구공동체의 안녕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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