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에 맞서는 적극적인 제안 – 『디그로쓰』 읽기

경제 성장만을 추구하는 현재 시스템의 한계가 팬데믹의 모순 아래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지금, 성장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실천 사례들을 살펴보고 행동의 방향을 제시하는 책.

요르고스 칼리스 등 저 『디그로쓰』(2021, 산현재)
요르고스 칼리스 등 저 『디그로쓰』(2021, 산현재)

요르고스 칼리스, 수전 폴슨, 자코모 달리사, 페데리코 마리아 공저 『디그로쓰(derowth)』 는 우리가 그간 공부해왔던 기후 위기에 실천적 실마리를 제시하고 있다. 환경 문제가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직면한 과제임을 명시하고, ‘무엇이 정말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대전환’을 위해 이미 실험 중인 해법들을 권유하고 있다. 이 책의 서문에서도 거듭 밝히고 있는 바, 경제 성장만을 위해 굴러가는 현재의 시스템은 코비드 19라는 전세계적 대유행병의 시대에 그 한계를 극명히 드러내고 있다. 이 팬데믹 위기는 오히려 전환의 촉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1. 탈성장 세계를 옹호하는 이유

우리는 좋은 삶-경제 성장을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개인을 더 적게 착취하고 환경을 덜 침탈하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 경제 성장이란 인간과 자연을 착취하며 폐기물을 생산해 지구를 위협하는 방식이 아니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삶이 가능할 것인가? 식민주의적, 자본주의적 화석 연료 경제와 동일시되는 특정 양식의 지식과 삶은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제약하고 있다. 이런 삶의 방식은 우리 삶의 문화적이나 역사적으로 여러 형태로 존재했던 다양한 삶을 추방해 온 결과다.

성장 경제는 식민지적이다. 그것은 다른 인종이나 젠더, 그리고 미래까지도 착취하고 불공평을 공고히 한다. 그래서 질적으로 다른 성장, 즉 지구를 파괴하는 자동차나 금융의 성장이 아닌 인류가 필요로 하는 것들-녹색 에너지, 돌봄, 교육, 지속가능한 거주지-의 성장을 일으켜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녹색 성장의 방식은 ‘좋은 것을 제작하기 위해 일부 나쁜 것들을 제조할’수도 있다(청정에너지인 태양광 발전에 중금속 전지가 쓰이는 것처럼!). 탈성장론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생산하고 소비하기를 주장한다. 공유는 늘리고 분배는 공정하며 무엇보다 파이 전체의 크기는 줄어 들어야 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가치와 제도를 요구한다. 실제로 곳곳에서 지역 공동체, 대안적인 식품, 금융이 조직되고 있다.

GDP로 계산되는 경제적 성장은 모두에게 이롭다는 인식이 공고하다. 그러나 성장이란 순환적인 것이다. 영속적인 성장이란 불가능함에도 경제학적,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아 세계를 이끄는 힘이 되었다. 성장의 세기인 20세기에 GDP의 증가만큼이나 자원의 사용량과 폐기물 발생량도 복률적으로 증가했다. 경제성장 추구의 동력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라는 확신대신 탈성장에서는 공공선을 위한 상호부조, 호혜, 공유 역시 인간의 본성임을 말한다. 세계 곳곳의 문화에서 그 흔적이 발견된다.

탈성장의 2개 전선은 (1) 물질사용량, 시장 거래량의 증대를 누르는 것, (2) 경제 성장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새로운 관계와 제도를 짓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존감을 지킨 채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안전을 보장받아야 하고, 우정과 사랑과 건강을 경험해야 하며, 돌봄 받을 수 있고 돌볼 수 있으며 여가생활과 자연을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 탈성장의 포부이다. 이를 실천하는 개인의 노력이 미약해 보인다면 이는 사람의 능력과 의지를 빚어내는 사회문화 시스템의 힘을 간과한 것이다. 공유의 가치를 되찾고 관계를 재발명하기 위한 경로로써 협동적 필수재의 공급은 오래되었지만 새로운 삶의 형태로 제안될 수 있다.

2. 경제성장의 희생물

자본주의 경제는 성장에 의지한다. 재분배 요구를 무시하는 기득권 덕분에 파이가 줄어들면 가난한 자들이 더 고통받게 된다. 때문에 무한한 화폐의 증식을 위해 확대된 생산은 미덕이자 정치적 진보·보수 진영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되었다. 양적 소비와 시장 소비의 성장을 부추긴 신자유주의는 부채를 통한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이 허약한 토대의 결과는 모두가 아는 글로벌 금융 위기다. GDP로 계량되는 경제 성장을 가속화하기 위한 미봉책으로 정부가 은행에 돈을 퍼붓고 공공 지출은 삭감한 결과, 식품의 가격과 집값은 치솟고 불평등은 가속화된다. 이는 인간을 병들고 불행하게 한다. 또 환경 충격을 가속화시킨다. 이러한 성장의 바탕에는 늘 취약 계층에 대한 착취가 있었음도 간과할 수 없다.

성장 시스템은 노동을 팔아 살아남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을 빚어냈다. 공동체 참여 없이, 개인적 특권만을 좇는 얄팍한 인생말이다. 그러나 경쟁과 비축, 소비는 인간의 본성의 전부가 아니다. 어떤 성향을 키우고 어떤 성향을 억제할지는 사회 문화 시스템에 달려 있다. 인간은 서로가 도울 수 있으며 공동의 협력을 통해 원하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

3. 탈성장이라는 미래에 먼저 도착한 사람들

탈성장은 경제성장을 멈추는 경제영역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여는 사회개혁이다. 2014년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제4차 국제 탈성장 회의가 끝난 후의 기후정의 시위.
출처 : wikipedia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2/27/Degrowth-2014-leipzig-demonstration-3-klimagerechtigkeit-leipzig.jpg/800px-Degrowth-2014-leipzig-demonstration-3-klimagerechtigkeit-leipzig.jpg
탈성장은 경제성장을 멈추는 경제영역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여는 사회개혁이다. 2014년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제4차 국제 탈성장 회의가 끝난 후의 기후정의 시위.
사진 출처 : wikipedia

경제 성장의 종말이 인간의 종말이 되지 않을 방법을, 대안적 삶을 이미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배울 수 있다. “활력 넘치는 자원공유 시스템” 커먼스와 “협동과 갈등 해결의 실행이자 전통과 규제의 유지 및 변용”인 커머닝에서.

경제 성장에 휘둘리지 않고 환경 부담을 줄이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들은 때로 위선적이라는 지적에 위축될 수도 있다. 그러나 모순적인 행동도 4개 정도는 감수할 수밖에 없다. 7개가 넘어가면 걱정스러운 단계라고 할 수 있겠지만. 더욱이 이러한 삶을 단단하게 버틸 수 있도록 서로 도움을 주는 것이 협동적 실천이다. 인간은 협력 안에서 진정한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협동이 연대되고 연결되면 제도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환경에 해를 끼치는 자동차의 사용은 훌륭한 도시계획을 통해 줄어들 수 있듯이, 변화의 가능성들이 맞물려 공진화를 일으키고 있다. 사람들은 지구의 위기를 맞이해서 개인적 변화를 촉구하고, 지배적 규범과 기대를 부수며, 사람들에게 협동 속에서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도록 자극하고 있다.

이기적 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단종상품 경제의 세계화는, 인류 역사 전 기간에 걸쳐 사회 진화의 동력이었던 상호부조 활동을 계속 잡아먹어왔다. 그러나 공동체의 가치관은 수정될 수 있다. 이미 개인적 실천과 기성 경제들이 결합하여 나타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집단 농장에서 일을 하거나 공동 주택에서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의 단종상품 경제를 또다른 단종상품 경제로 대체하는 대신, 다른 가능성의 영역들이 성숙하도록 지원하자는 것이다. 현재의 정치 시스템은 임금노동과 소비를 토대로 한 성장 주도 모델에 치우쳐 다양한 실천의 기회를 막고 있다. 대안적 삶의 다양성이야말로 회복력과 적응력을 키우는 핵심 요소가 된다.

다양한 커먼스에서 일어나는 커머닝 사업들은 성장 경제 지향의 상식이 아닌, 새로운 삶을 위한 상식들을 성숙시키고, 이윤의 생산이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의 필요와 행복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공동체 소유 모델과 공유 및 협동 기반 생산 모델이 활성화되도록 돕는 동시에 사회생태적 부담을 줄이고 있다. 이윤 창출의 측면에서 보면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으나, 일자리 창출과 인간·환경의 복지를 높이는 생산성은 높다.

4. 새길을 여는 사회 개혁

노동과 생산은 줄이고 나눔과 자유는 더 많이 누리기 위해, 자존감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기 위한 다음과 같은 정책적 제안을 할 수 있다.

(1) 경제 성장 없는 그린 뉴딜

성장의 척도는 더 이상 GNP가 아닌 건강, 행복, 자연환경에 집중하자는 그린뉴딜과 탈성장의 비전은 같다. 그러나 탈성장에서는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가장 근본적인 해결, 에너지 사용량 감소를 주창한다. 이러한 비전은 일자리와 소득의 감소라는 두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2) 보편 기본 소득과 서비스

보편 기본 서비스와 보편 기본 소득의 목표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건강과 자존감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여건을 구축하고, 사회에 대한 무급 기여를 인정하며, 다양한 형태의 협동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윤 동기에서 비롯되지 않은, 의미 있는 물질적 지원을 통해 삶을 더욱 살만하고 즐길 만한 것으로 바꾸려는 집단적 노력이다. 이는 탈성장 변혁을 뒷받침하는 동기가 되며 시민의 자유를 보장해줄 것이다.

(3) 커먼스 되찾기

모든 것을 상품화하고 사유화하는 정책 대신 협동적인 생산과 필수재 공급, 생활을 촉진하는 태도를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공공 영역을 사유화하고 이윤을 내기 위한 기획들이 철회되면 적은 비용으로도 삶의 질을 개선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돌봄 커먼스도 중요하다. 의료시스템과 먹거리와 환경이 결합하는 총체적 건강, 그리고 건강 위협의 주요 원인인 불평등을 줄이는 조치까지 유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4) 노동시간 단축

적게 일하고, 일자리를 나누고, 과잉 생산에서 비롯된 환경 부담을 줄이고, 남는 시간을 활용해 개인들이 서로 돌볼 수 있어야 한다.

(5) 공공 금융

이윤과 GDP확대에 대한 투자를 줄이면 여러 대안적 선택이 가능하다. 고소득자에게 탄소 부담금을 걷고 하위 소득자의 순소득을 증가시키는 방식도 제안할 수 있다. 사회를 지탱하는 사람들의 노동에 과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파괴하는 것(공해와 불평등)에 과세해야 한다. 이로서 사회와 환경에 해로운 소비를 조절할 수 있다. 누진적 자산 과세는 불평등을 완화시킨다.

5. 대중조직화를 위한 전략

우리의 탈성장은 누구에 의해, 누구를 위해, 어떻게 조직될 수 있는가? 탈성장에 제안하는 미래는 경제 성장을 위해 조직화된 계급, 인종, 젠더에 대한 식민적 위계 질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런 가능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점점 커지고 힘이 실리고 있다. 따라서 곧 정치적 영역으로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 성장을 수호하고자 하는 반발의 목소리도 여전히 강력하다. 우리는 OECD 국가들이 다른 국가들을 식민지화하고 착취할 필요에서 해방되는 평화적 퇴로를 열어 주어야 한다. 대전환의 시대에 변화를 거부하는 목소리는 권위주의와 결합하기 쉽다. 이러한 두려움에 맞서기 위해 동맹이 필요하다. 노동, 젠더, 인종, 불평등에 맞서는 연대와 동맹 말이다. 이 의제에 동의하는 사람들과 폭넓게 네트워크를 맺고 대중조직화가 법제화, 정치화로 이어져야 한다.

결국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실천적 행동을 권유하고 있다.

(1) 이 책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토론한다
(2) 협동적 생활, 생산, 소비 영역에 시간과 자원을 투입한다.
(3) 탄소 발자국와 물질 발자국 감축을 위해 나의 행동 방식을 변화시킨다
(4) 같은 의지를 가진 정치인에게 투표한다.
(5) 노동조합이나 기후위기 행동에 동참하고 연대한다.

『디그로쓰』를 읽으며, 젠더와 노동, 환경과 공동체를 위해 연대하고 있는 많은 활동과 활동가들을 떠올렸다. 채식과 소비, 환경을 위한 개인의 행동에서 다양한 분야의 활동, 많은 활동가와 시민단체들의 노력이 개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를 위한 하나의 행동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멋진 가능성을 발견하고 가슴이 뛰었다. 활동가의 자존감을 다져주는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호

황선영 또는 글 쓰는 주호. 세기말 천리안 통신 활동에서 走狐라는 별명을 얻었다. 마을자치와 도시재생활동가. 공유경제와 공유밥상을 추구하는 공동체주의자. 성북동에서 곰과 강아지와 함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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