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읽은 책 『기내식 먹는 기분』은, 정규직이 아니라 대부분 최저 임금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을 들고 외국으로 가서 생활하다가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오곤 한 저자의 여행 에세이집이다. 저자인 정은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 인도, 미국 여행담과 함께 한국에서의 생활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남에서 자신의 성숙을 모색하는데, 그 과정은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아 보인다. 특히 그는 여행을 위한 비행기 기내에서 제공되는 식사는 어느 식당에서는 재현할 수 없는 맛이라고 정의하는데, 이는 인생의 마지막 식사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기내식 맛의 핵심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에게 있어서 여행이라는 것은 기분 전환이나 견문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비장함을 담고 있는 행위다.
저자는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을 때마다 여행했지만, 여행에서 돌아오면 여전히 변하지 않은 자기 모습에 매번 실망했고,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또다시 여행을 떠나기 위해 티켓을 사는 반복적인 생활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반복적인 일을 15년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여행이 스스로와 거리감을 만드는 일이라는 소중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떠나면서 흔히 기대하는 것처럼, 힘든 일을 겪고 나면 성장한다는 말을 믿고 그 길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순례자의 길을 걸으며 그는 몸이 힘든 것과 성숙하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큰 변화를 겪고 나면 성숙해지는 사람도 간혹 있지만 고통은 성숙의 필수 요건이 아니며, 고통은 그저 고통이고, 몸이 힘든 건 힘든 것이고, 사람은 마음을 바꿀 수 있을 때만 성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길고 긴 순례자의 길을 걸으면서 고생 빼곤 얻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남은 길은 버리는 것뿐이라는 것, 즉 버리는 것은 생존의 문제라는 ‘비움의 중요성’을 배우게 되었다고 쓴다. 가방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가진 짐들을 하나씩 버리기 시작해 더 이상 버릴 것이 없을 때까지 가진 것을 버리다 보니 자신이 누군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순례자의 길에서 무엇을 욕망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포기할 수 없는지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말해준다는 사실, 마음의 짐도 물건처럼 무게가 있어서 걱정과 분노는 확실히 무겁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험한다.
또한 그는 종교와 명상의 나라 인도를 여행하면서 ‘자신에 대한 존중’을 배웠다.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만이 사랑과 신도 존중할 수 있게 된다는 것, 결국 존중한다는 것은 믿을 수 있다는 것이고 믿을 수 있다면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저자는 미국 피츠버그의 작은 동네에 잠깐 머물렀을 때, 그곳에는 오래된 집들만큼이나 오래된 나무들이 많은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나이테가 나무의 나이를 알려주는 것처럼 도시의 나이를 가로수 나무가 알려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나라 도심의 가로수는 상가의 간판을 가리지 않도록 낮은 가지들을 모두 잘라버려 이상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을 목격하면서 우리들이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 곰곰이 성찰하게 된다.
많은 사람이 단조로운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많은 탄소 발자국을 남기며 해외로 떠나곤 한다. 일반인들에게 있어서 평범한 삶이 족쇄로 여겨지는 듯한데, 이 책의 저자는 달리 생각한다. 지난 팬데믹을 겪으면서 자신을 편안하게 만들었던 평범한 일상의 가치를 깨달았던 것이다. 즉, 좋은 하루를 쌓아가는 게 삶이라는 것, 거창한 목표를 위해 하루하루를 갈아 넣고 희생하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를 만족스럽게 완성하는 것,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거나 산책할 기회가 생긴다면 최선을 다해 그 순간을 즐기고 고맙게 여기는 것이 진짜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것은 욕망을 절제하고 소박하게 만족하는 미니멀리즘을 강조한 에피쿠로스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해외여행을 통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먼 곳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지인들과의 건강한 관계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생태적 삶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