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Can we get over our addiction to possession and the myth of the faceless mother? What is the real thing? We can get a sense of it, to be sure, though it will upgrade our ideas of “real” and “thing” to boot. Ecology shows us that all beings are connected. The ecological thought is the thinking of interconnectedness. The ecological thought is a thought about the ecology, but it’s also a thinking that is ecological. Thinking the ecological thought is part of an ecological project. The ecological thought doesn’t just occur “in the mind.” It’s a practice and a process of becoming fully aware of how human beings are connected with other beings─animal, vegetable, or mineral. Ultimately, this includes thinking about democracy. What would a truly democratic encounter between truly equal beings look like, what would it be─can we even imagine it? (p.7, Introduction: Critical Thinking, 『The Ecological Thought』)
우리는 소유에 대한 중독과 얼굴 없는 어머니의 신화를 떨칠 수 있을까? 실제 사물이란 무엇인가? 분명 우리는 그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실제”와 “사물”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업그레이드해야한다. 생태학은 모든 존재가 연결되었음을 보여준다. 생태적 사유는 상호연결성에 대한 사유이다. 생태적 사유는 생태학에 대한 생각이며 또한 생태적으로 생각하는 것이기도 하다. 생태적 사유를 하는 것은 생태적 프로젝트의 일부이다. 생태적 사유는 단지 “머릿속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가 동물, 식물, 광물같은 다른 존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온전히 알아차리게 되는 실천이자 과정이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을 포함한다. 진정으로 평등한 존재들 사이의 진정으로 민주적인 만남은 어떤 모습이며 어떤 상태일까? 심지어 우리는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생태적 사유』 7쪽, 티모시 모튼)

사진 출처 : Farhad Edenia
밤새 읽고 또 읽은 날의 기록:
한 페이지의 1/3정도 되는 분량의 글을 읽으며 질문이 연달아 일어난다. 한 문장도 허투루 읽히지 않아 그 질문들을 기록해두고 싶다. 모든 것이 상호연결 되어 있다는 ‘생태적 사유’를 이해하고 싶다는 바람은 이제 답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알겠다.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전부다. 답은 보일 듯 말 듯 답답한 게 정답이겠지.
Q1. 소유에 대한 중독
중독이라고 한 이유가 뭘까? 어느 시대건 자원을 독점하는 소수는 있었는데 근대 이후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다수가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을 중독이라 할 수 있을까? 어느 정도의 소유가 적정한 것인지 누가,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
Q2. [신화] 얼굴 없는 어머니
자연을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것으로 이상화하는 것에 더해 무한한 자원을 퍼주는 ‘얼굴 없는 관대한 어머니’로 보는 관념에서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자연을 정복하고 극복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게 되었다.
Q3. 실제와 사물에 대한 우리의 관념 자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한다.
지금 단계는 어떤 상태이고 업그레이드 된 상태는 어떤 것일까? 현상학의 구호인 ‘사태 자체로!(Zu den Sachen selbst!, To the things themselves!)’를 인용한 하이데거의 사유는 업그레이드의 도약대인 것 같다. (이후의 상태는 Q8, Q9과 연결)
“현상학”이라는 칭호가 표현하는 준칙은 따라서 “사태 자체로!”라고 정식화될 수 있다. 즉 모든 허공을 떠다니는 구성과 우연한 발견을 반대하고, 증명된 듯이 보일 뿐인 개념을 넘겨받는 데에 반대하며, 때로 여러 세대를 거쳐 문제로서 널리 받아들여지던 그럴듯한 물음들에 반대한다. 『존재와 시간』 53쪽(마르틴 하이데거, 역자 이기상, 까치글방)
Q4. 생태적 사유는 생태학에 대한 생각이며 또한 생태적으로 생각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어로 보면 ‘생각’이라는 말이 반복되는데 영어 원문을 보면 다른 단어이다. 과거형과 현재진행형의 차이점을 생각하게 된다.

Q5. 생태적 프로젝트의 일부
일부라면 다른 건 뭐가 있을까?
① real과 thing의 개념 업그레이드
② 상호연결성 알아차리기
③ 실천- 스토아 철학의 praxis
Q6. 알아차리기는 실천이자 과정이다
알아차리는 것은 영성적인 부분인 것 같고 실천은 그리스 철학에서 이야기하는 프락시스, 과정은 스토아철학의 ‘훈련, 반복, 연습’이 연상된다
Q7. 민주주의에 대한 사유, 민주적인 만남
민주주의가 민중·대중(demos)와 지배·권력(cratia)을 뜻하던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18세 이상 남자 시민에게 평등하게 공동체의 선(善)을 위한 정치 행위에 참여하는 것이다. 2,500년쯤 시간이 흐른 지금은 동물, 식물, 광물같은 비인간 존재가 공동체의 선에 포함되어야 하니 소유물이나 자원으로만 여기지 말고 그들의 존재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지, 그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을 수 있을지, 어떻게 공존할지 생각해보라는 말 같다.
Q8. ~ 같이 보인다, 그것은 무엇일까~(~look like, what would it be~)
‘be’로 보아 본질, 상태가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를 묻는다.
Q9. 우리는 그것(어떤 모습으로 보일지)을 상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상상할 수 없어도 상상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로 들린다.
생태적 프로젝트

질문들을 분류해보니 세 개의 원이 그려진다. 과거의 사유를 현재에 배우고 실천하며 미래를 상상하는 실천적 지혜이자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며 방향을 찾아가는 생태적 프로젝트의 모습이다. 그리고 어디에 그려야할지 몰라 그리지 못한 원이 하나 더 있다. 겹치는 부분이 있는 세 개의 원을 들여다본다. 나는 어디에 있을까? 주로 과거와 현재가 겹쳐진 곳, 가끔 현재와 미래가 겹쳐진 곳에 있다. 아주 가끔 어느 시간도 아닌 시간을 느낄 때가 있는데 세 개의 원을 모두 감싸 그려야할지 아예 세 개의 원과 뚝 떨어진 곳에 그려야할지 모르겠다. 언제나 인식하는 주체는 나(인간 존재)라는 생각너머에 있는 것, 나의 시선이 사실은 나를 보는 우주의 시선이라는 것, 그런 순간에는 시간이 멈춘 것 같다는 것…들을 그릴 수 있으면 모튼 선생님이 내어준 숙제, ‘생태적 프로젝트’에 활기를 얻을 것 같다.
(업그레이드 하고 싶다)
조약돌 아홉
수많은 ‘물음표’를 조약돌로 둔다. 질문들은 서로 물리고 물려서 깔끔하게 정리가 되지 않지만 엉킨 채 두기로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