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한 존재론적 상실감에 이름을 주다

생태슬픔(Eco Grief)은 기후 위기와 환경파괴로 인한 상실, 불안, 분노, 두려움 등 복합적인 감정 상태를 의미한다.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는 미묘한 슬픔이라서 “말할 수 없는 애도, 박탈된 슬픔”으로 남는 경우가 많으며 다양한 생태 슬픔의 스펙트럼 중의 하나로 나타난다. 심각해지는 기후 위기 속에서 미래가 없다는 불안감, 무언가를 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무력감, 우울과 두려움, 나 역시 문제의 일부라는 죄책감, 산불·가뭄·홍수 ·폭염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삶의 터전과 공동체를 잃는 어려움, 자연의 파괴와 상실을 지속적으로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은 일어날 수 있다.
더 이상 빙하가 없는 ‘바다 얼음의 사람들’
이나경은 첫 번째 글에서 ‘희망이 사라지는 미래에 대한 비탄은, 점차 인류에게 커다란 문제로 제기’되리라 경고하며, 역설적으로 상실로 인한 슬픔은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준다고 말한다. 나아가 외부의 위기와 더불어 그로 인한 인간 내부 마음의 문제에 주목해야 함을 강조한다. 고통은 때로 어디가 아픈지 알려주어,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을 잃고 있는 것인지,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지 그래서 어떤 선택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지구가 우리에게 보내는 초대장”이라고 표현한다. 저자는 실례로 ‘바다 얼음의 사람들’ 캐나다 이누이트 부족을 꺼냈다. 더 이상 빙하가 없다면, 우리는 이누이트 족을 어떻게 ‘바다 얼음의 사람들’이라 부를 수 있을까? 녹고 있는 빙하는 그들에게 단순한 얼음이 아니다. 바다 얼음은 존재의 일부이며 그들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 생태 슬픔의 뒷모습에는 연결과 사랑이 동시에 어려 있다.
기후위기는 마음의 위기다!
「기후 우울증과 마음의 생태학」에서 신승철은 생태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한 기후 위기와 관련해서 세 가지 마음에 집중했다. 첫째는 사물, 기계, 자연, 생명 등이 모두 생태계의 주체임을 강조하며 그들을 어우르는 ‘넓이의 마음’이다. 둘째는 인간의 깊은 내면에 숨어 있는 아뢰야식, 태고적 원형 무의식, 고대인, 동물의 무의식을 생각하는 ‘깊이의 마음’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존재를 아우르고 과거, 현재, 미래를 생각하는 숭고한 높은 가치를 강조하는 ‘높이의 마음’이다. 신승철은 생각의 멈춤을 통해서 자신을 장악하고 있는 잡념을 버리고 집중으로 향하는 마음의 정동적 작동과 자기와 자기 자신이 끊임없이 초점 조절, 힘 조절, 거리 조절을 하면서 가장 미학적이고 윤리적인 생활양식과 행동으로 향하도록 만드는 돌봄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특히 여러 마음의 좌표를 그리면서 다양하게 생산된 책임 주체, 사이 주체, 판 짜는 자, 나서는 자 등 혼종의 주체성과 욕망 관계, 예속 관계, 기계적 제어 관계 등 새로운 관계 설정을 통해 마음의 생태 지도를 그려볼 것을 제안하였다.
생명의 근원과 정동의 힘 사이, 피어나는 야성적 생명의 힘
또한 그는, ‘탄소 발자국 줄이기 행동’을 통해 뜻있는 시민들의 노력과 더불어 석유 기업, 석탄화력발전소, 전기용광로, 대기업 등에 문제를 제기하고 제도와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시민들이 압박과 저항에 나서는 행동의 중요성을 힘주어 주장했다. 우리 안에서 꿈틀대는 생명의 근원과 정동의 힘을 깨닫는 순간, 자신을 뻔한 대상이 아니라 소수자 되기라는 재특이화의 경로가 개방되어 강렬도에 따라 기쁨으로 증폭되기도 하고 슬픔으로 위축되기도 한다. 여기서 정동의 강렬도는 사이, 빈틈, 여백에서 서식하는 야성적 생명력을 의미한다. 공동체의 판이 생성되는 순간, 가수가 아닌데도 노래를 부르고, 댄서가 아닌데도 춤을 추는 기관 없는 신체, 강렬도로서 정동의 판짜기 중요성을 말했다. 정동은 그 자체로 삶을 ‘살아지게 만드는’ 원천이다. 돌봄 수혜자와 돌봄 수행자 사이에는 본질적인 정동의 차이가 없다. 동시에 정동은 언제나 양면적이다. ‘착하면서도 악동 같은 우정’의 공식을 따르는 정동의 양상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방적 의존이나 희생이 아니라, 필요할 때 다가가고 문제가 해결되면 슬그머니 물러설 수 있는 유연한 관계 방식이다.
서로의 취약함과 연결되는 마음 민주주의
돌봄의 정동이 사회적 에너지로 작동할 때, 민주주의는 정동적 평등과 관계적 자율성에 기반한 생명정치의 새로운 형태로 진화할 수 있다.
강건한 실존적 마음은 실존주의적 자기 결단을 넘어, 배치와 관계망 속에 살아있는 마음의 넓이, 높이, 깊이를 발견하려는 탈성장의 과정이기도 하다. 여기에 정동과 돌봄이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 다시 말해 서로의 취약함과 연결됨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적 상상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도토리 한 알에서 시작된 떡갈나무숲의 천이
「마음의 메타모델화 논의와 전환의 이야기」에서 신승철은 기후 우울, 생태적 슬픔을 하나의 모델로 설명하지 않고 여러 모델이 어우러지고 관계 맺고 연결될 때의 이야기에 주목하고 있다. 수많은 전환의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고 그 이야기를 말하고 듣는 상상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완성된 이념적 청사진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늘 과정형이자 진행형이라는데 주목한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탈성장의 비물질적인 이야기 속에서 자아의 확장을 찾는 점에서 지금껏 인류가 경험치 못한 독자적 전망을 갖는다.
우리는 삶과 현장의 이야기를 만드는 작은 행동이 큰 변화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도토리 한 알에서 떡갈나무숲의 혁명이 이어지듯, 전환의 혁명도 그렇게 시작될 수 있다.
죽임에서 살림으로
저자 유정길은 조애나 메이시의 갈라진 세계의 ‘재연결 작업’을 통해 기후 우울을 극복하는 과정을 적으며 사라져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성과가 발전적으로 전수되도록 ‘호스피스’와 가치들이 다양하게 태어날 수 있도록 ‘산파’의 역할을 강조했다. ‘재연결 작업’은 네 가지 나선형 순환 단계 즉, 수많은 감사의 마음을 고도화하고, 고통을 존중하며, 새로운 눈으로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모색한다. 나아가 꾸준히 실행해 나가는 나선형 순환으로 진화하게 된다. 특별히 ‘온생명회의(Council of All Things)’를 통해 모든 생명의 고통에 동참해볼 것을 권유했다. 공저자는 생명을 연결하는 것뿐 아니라 사고실험을 통해 과거 세대와 미래 세대를 연결 짓는 체험으로 소개하며 변화를 이끌어가는 힘은 집단적 의식이 모여 손에 손을 잡고 옆으로 연결하며 작은 변화를 이끌어 내는 집단지성의 ‘동반형 파워’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우리의 마음이 부서지고 열리는 만큼 치유되는 세상
「생태적 애도와 치유」에서 이나경은 고통 속에 희생된 존재들에게 깊은 연민과 사랑의 마음으로 생태적 애도로 슬픔을 수용하고 이를 통해 생명들 하나하나에 깊은 자비와 연민의 마음을 투사해야 생태계를 치유할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치유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다양한 애도 방식을 소개했다. 여기서 애도란 온전한 존재로 돌아가기 위한 회복의 여정을 뜻한다. 호주 산불 애도 과정에서는 우리가 지금 여기에 숨쉬고 있기까지 지탱해 준 고맙고 소중한 것들을 떠올리며 함께할 공동체와 슬픔이 잘 흘러갈 수 있도록 ‘사랑의 둑 쌓기’, ‘타다만 장작 조각을 통해 함께 슬퍼하기’ ‘편안한 바닥에 서로의 온기를 느끼기’, ‘여럿이 슬픔 노래하기’에 초대한다. 서로의 슬픔과 염려가 하나로 연결되는 안전한 자리가 현실에 짓눌리지 않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를 깨운다. 또 아이슬란드의 빙하 장례식에서는 산 자가 산 자를 위해 행하는 의례로 치러지기도 했다. 빙하가 사라지는 세상을 살아갈 우리를 위한 의식으로 말이다. 이처럼 생태적 애도는 ‘함께하는 행동’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

스스로를 돌보고 보듬는 시간
「세상의 고통과 함께하는 생태 명상」에서 문윤형은 생태 위기 시대 마음 근육을 키우고 활동을 위한 생태 명상을 소개했다. 연결감, 생태적 자기, 수많은 ‘너’와 ‘생명들’과의 동일시, 애도와 용서 명상, 되어보기 명상, 지구의 아픔과 함께하기 명상들을 자세히 적고 있다. 작은 생명들, 나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존재들을 기억하며 작은 행동을 해나가는 것은 스스로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일이다. 선한 일을 함으로써 내 자신에 대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고, 동시에 나의 나약한 부분과도 연결되어 취약점을 인정하고 비로소 보듬어 안을 수 있다.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 희망
특별히 마지막 장에서 이미진은 이런 슬픔을 제거하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픈 것”이라는 통찰을 통해, 불안과 우울을 지구적 감수성과 윤리로 확장한다. 산불, 홍수, 태풍 등 재난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절망, 기후변화로 전통적 삶을 포기해야 하는 원주민, 농부, 기후난민들의 상실감, 일상에서도 플라스틱 사용, 에어컨 가동 등으로 느끼는 죄책감과 무력감이 별개의 구슬이 아니요, 지구를 이루는 만다라의 구슬처럼 공명 된다.
삶에 지친 현대인들의 무관심과 경제성장 중심 사고가 슬픔을 더욱 증폭시킨다. 여기에 생태적 삶과 익숙한 삶 사이에서 내면의 양가감정과 마주한다. 생태적 삶은 자동화된 사고와 태도를 넘어서 깨어있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생태적 슬픔은 기후 위기 시대의 필연적 감정으로, 지구와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고 새로운 윤리적 전환을 촉진하는 생명의 힘이다. 이 슬픔을 통해 우리는 무력감을 넘어 희망과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