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채식 실패담

주변 분위기를 통해 채식을 하게 되었고 채식을 통해 비거니즘을 접하게 된 필자 죤지의 채식 실패담에 관한 이야기이다.

생태적지혜연구소 신승철 소장님께서 “왜 청년들은 비거니즘으로 무장했는가?”를 주제로 글을 한번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주셨다. 이 주제 외에 다른 주제라도 좋으니 글을 써보라고 하셨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감히 내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글을 써본 적도 없고, 글을 잘 쓰는 편도 아니고, 스스로가 비거니즘을 잘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기회를 통해 비거니즘에 대한 나만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툴더라도 도전해보기로 했다. 내가 과연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 ‘채식 실패담’을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에게 채식은 비거니즘을 접할 수 있게 해준 매개체이며, 공부하게 하는 동력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비거니즘을 통해 ‘다채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기에 이번 글에서는 그 시작점인 ‘채식’에 관해, 그중에서도 ‘실패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어떻게 고기를 먹지 않고 살 수 있지?”

채식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어떻게 고기를 먹지 않고 살 수 있지?”였다. 사실 이 질문은 타인에게 채식한다고 이야기했을 때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채식의 ‘채’자도 모르던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처음 채식을 접하게 되었다. 당시 고등학교 선배 중 채식을 실천하는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환경과 동물권을 위해 채식을 한다고 했다. 고기를 정말 좋아하던 나로서는 동물권과 환경만을 위해 고기를 먹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마치 나와는 다른 세상 속에 살아가는 존재를 발견했다고 해야 할까? 채식인에 대한 신기함과 알고자 하는 욕구, 궁금증 같은 것들이 마구 샘솟았다.

그렇게 새로 입학한 학교에서 한 학기를 보내고 나니 채식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채식 급식, 환경을 모토로 한 축제 등등 학교에서 ‘환경과 채식’을 주제로 다양한 자리들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자리를 통해 함께 이야기 나누고 공부하며 그간 내가 보지 못했던 타인의 고통과 억압을 알게 되었다. 그에 공감하며 저항하는 언니들이 참 멋져 보였고, 동경심이 생겼다. 언니들을 따라 비거니즘에 관한 책을 읽고, 환경제품을 사용하고, 동물의 털과 가죽으로 만든 옷을 소비하지 않는 등 지구와 동물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나도 채식을 한번 해볼까?”라는 용기가 조금씩 생겨나긴 했지만, 평소 먹는 것을 좋아하고 고기반찬을 좋아하던 나에게 ‘채식’은 생각보다 큰 벽이었다. “너 고기 먹지 않을 자신 있니?”라고 스스로 물었을 때 자신 있다고 답할 수 없었다. 무대포로 채식을 시작했다가 욕구를 참지 못하고 포기하게 된다면 죄책감이 클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실천을 늘려가는 것이 맞지만 그 당시 나는 “먹을 거면 확실히 먹지 말아야지”라며 스스로에게 완벽함을 요구했다. 그렇게 “조금만 더 있다가 시작해보자”라며 미루게 되었다.

채식을 실천하기로 결심하다

윤리적 우월함에 빠져 허둥거리던 나는 일기를 통해 생각을 정리했고, 몇 권의 책을 통해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사진 출처 : JESHOOTS.com
윤리적 우월함에 빠져 허둥거리던 나는 일기를 통해 생각을 정리했고, 몇 권의 책을 통해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사진 출처 : JESHOOTS.com

그러던 어느 날, 채식을 결심하게 된 순간이 왔다. 같은 기수 (학년)끼리 엠티를 갔을 때였다. 우리 기수 중 채식을 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 함께 고기를 구워 먹었고 채식하는 친구는 소외되어 다른 테이블에서 버섯을 구워 먹었다. 채식을 하는 사람 앞에서 고기 냄새를 풍기고 소외시키는 것은 참 폭력적인 것이라는 생각에, 친구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어 미루고 미루던 채식을 하기 시작했다.

채식한다는 가오(?)

부끄럽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소수자 운동의 일환으로 채식을 시작했을 당시, 난 채식을 한다는 가오(?)에 사로잡혀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채식한다’라는 ‘윤리적 우월함’에 빠져있었다. 함께 공감하고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내가 참 멋진 사람이라는 우월함이라고 할까. 육식이 주된 세상에서 채식을 실천하는 일은 쉽지 않기에, 스스로를 논비건들과 다르다고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가슴 한편에 품고 채식을 하다 보니 타인을 미워하고 비난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채식뿐 아니라 일상에서 충분히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실천하지 않는 이들이 답답했고, 미웠고 비난하고 싶었다. 그 비난의 화살은 곧 나에게까지 이어졌다. 내가 느끼고 있는 윤리적 우월함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져 예민해졌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인적이 드문 틈을 타 고기를 몰래 먹기도 했다. 그러자 죄책감이 마음속에서 쑥쑥 자라났고, 점점 커버리는 죄책감에 스스로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더이상 채식을 지속할 수 없음을 깨닫고 결국 채식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첫 채식 도전기는 4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채식을 그만두고 난 직후 쓴 내 일기에는 이런 말이 쓰여있다.

“채식을 그만두었다. 다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근데 고기를 먹을 때마다 돼지의 얼굴이 생각이 나서 못 먹겠다. 근데 다시 채식을 시작하면 또 몰래 먹을 것 같다. 난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까? 나 왜 이럼? 아~~ 아무것도 모르겠다. 몰랑 잘랭.”

채식 실패담에 대해 일기를 쓰는 건 내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먼저, 내가 윤리적 우월함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에 대해 많이 반성했다. 또한 죄책감을 가지고 채식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잘해보려는 마음을 가졌던 나를 칭찬해주기로 했다. 채식에 대한 잘못된 접근을 바로잡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도 되어주었다. 윤리적 우월함에 빠져 허둥거리던 나는 일기를 통해 생각을 정리했고, 몇 권의 책을 통해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채식을 지속할 수 있는 나만의 힘이 생겨났고, 그 동력이 다채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사소한 언어에서부터 조금 더 세심해졌고, 자연스럽게 여겨졌던 것들을 더 이상 자연스럽다 여기지 않게 되었다. 고기라는 언어가 감추고 있는 한 생명의 죽음에 대해서 떠올릴 수 있게 되었고, 일상 속 흔히 볼 수 있는 ‘비둘기’에 대한 사회적 정동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 동물이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죤지

고등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께서 나를 ‘우리 죤지’라고 불러주시곤 했다. 그러자 곧장 친구들도 나를 죤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나를 애정있는 목소리로 죤지라고 불러주는게 참 좋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죤지인 게 참 좋다

댓글 1

  1. 솔직한 마음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예전에 간담회자리에서 누군가가 자기고백을 하며 ‘채식 실패!’ 라고 했더니 옆의 분이 이어서 해주신 얘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채식에 실패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100% 채식이어야 성공이 아니라 (모아니면 도가 아니라는 뜻) 어느정도 노력 선상에 있는 거니까요”… 그러고 보니 공부도 민주주의도 성공실패가 아니라 성취도? 로 가늠하지 않나요…
    어쩌면 채식도 지향점으로 간직하되 어떨땐 좀더 지향점에 가까이 갔다가 다른날에는 좀더 멀어질 수도 있는.. 그런거 아닐까요^^;; 노력하는 죤지님은 충분히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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