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여행일지_Holland score] ① Schiphol airport to Amsterdam-Zuid

네덜란드를 3주 동안 여행한 뒤, 내게 남겨진 기억의 파편을 5편의 에세이로 연재할 예정이다. 필자는 네덜란드 Eindhoven에서 개최한 ‘Dutch Design week 2022’를 관람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디자인 페어를 관람한 뒤, 네덜란드에 위치한 여러 소도시 방문한다. 마주함과 떠남의 연속인 여행지를 생생하게 기록하기 위해 방문한 장소의 소리를 녹음한다. 오래 걷고, 오래 멈췄던 순간을 다시 글로 소환하며, 여행지에 두고 온 시공간을 공유한다.

네덜란드는 4월~9월이 성수기다. 이때는 온화한 날씨와 함께 튤립이 등장한다. 다만 나란 사람은 모두에게 환대받는 날씨를 피해 10월 22일 ~11월 12일을 여행 기간으로 정한다. 이 기간은 하늘이 수도꼭지를 꽉 잠그지 않아 비는 계속 내리고, 가을인 듯 겨울 아닌 애매한 날씨의 연속이다. 그런 모호하고 인기 없는 날씨가 퍽 마음에 든다. 또한 내가 여행하는 기간 그토록 가고 싶던 ‘Dutch Design week’이 개최된다. 시간적, 금전적 여유를 확보한 뒤, 3주 동안 네덜란드를 방문하기로 한다. 다만 네덜란드에 가기 전 특별한 계획 없이 숙소와 방문 도시만을 정한 채, 텅 빈 계획과 함께 비행기에 탑승한다.

나는 비행기에서 잠들지 못한다. 비행기에서 울리는 특유의 공기 소리 때문에 귀가 멍하고 불편하다. 기내식이 나오면 환해지는 조명과 기내식이 끝날 때 다시 어두워지는 조명. 그런 비행기 속 낮과 밤을 뜬눈으로 보낼 수밖에 없다. 비행기에 장착된 좁은 스크린 속 영화는 보기 싫고, 그렇다고 영화를 다운받아 올 정성은 없으니,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긴 명상을 한다. 이번 여행의 모습을 상상하며, 챙겨온 사물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중 녹음기와 필름 카메라를 떠올린다. 필름 카메라는 여행을 위해 언제나 챙기는 사물이다. 정해진 필름 개수에 맞춰 신중히 사진을 찍어야 하기에, 여행 장소를 깊이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경험한 생생한 시공간을 담기에는 부족하다. 그렇다면 여행지의 소리를 녹음하면 어떨까? 동영상 촬영 때 영상 배경음으로 존재하는 소리가 아닌, 소리 그 자체를 위해 녹음된 소리는 어떨까? 떠나기 전날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에, 일단 가방에 욱여넣은 녹음기를 생각한다. 나는 어떤 소리를 녹음해야 하나? 네덜란드에는 어떤 소리가 존재할까?

착륙 준비를 시작한다. 창문 아래로 짙고 붉은 저녁이 보이고, 뿌연 안개에 뒤덮인 암스테르담이 보인다. 벽돌집이 흐릿하게 보이고 산은 없다. 조각보 모양으로 잘린 네모난 평지가 펼쳐진다. 도착을 환영하는 한국어 안내방송 뒤, 네덜란드어 안내방송이 나온다. 처음 들어본 더치어다. 낯선 언어가 들리니 비로소 몸이 타지에 왔음을 체감한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기 전 화장실로 향한다. 나는 화장실 문이 벽처럼 높고 굳게 닫힌 것을 보고 놀란다. 한국 화장실 문은 대체로 위와 아래가 뚫려 있다. 힐끗 보면 사람 신발도 보인다. 하지만 이곳 화장실 문은 방문처럼 굳게 닫혀있다. 화장실 문을 열면 벽을 여는 듯하다. 또한 변기가 나의 앉은키보다 높아 까치발을 올린 채 변기에 앉아 있어야 했다. 꽉 닫힌 화장실 문과 높게 달린 변기에 대한 의문은 짐을 찾으러 가며 해결된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대부분’ 크다. 사람들은 야자수처럼 높은 몸 모양새다. 과거 유학 생활에서 키가 큰 사람들과 교류한 경험이 많지만,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새로운 키의 높이를 느낀다. 낯선 높이에 적응하기 위해 두리번거릴 때 이 공간에 동양인 여성은 없다. 확실히 실감난 타지 느낌. 긴장된 마음에 몸의 부피는 확 축소된다.

2022. 짙은 네덜란드 숲에서
짙은 네덜란드 숲에서

일단 밖으로 나온다. 네덜란드 공기 냄새를 맡고 싶었다. 바로 코를 후비는 냄새는 장시간 흡연을 참은 흡연자들의 담배 냄새다. 차분히 냄새를 맡으니, 점차 짙은 안개 냄새가 난다. 수분이 밴 밤공기의 척척한 냄새다. 밤이 더 짙어지기 전에 숙소에 가야 했다. 2분 뒤 목적지 ‘Amsterdam- Zuid’로 향할 전차가 도착하는 걸 알고, 허둥대며 지하로 향한다. 일단 눈에 보이는 전차에 탑승한다. 아무 자리에 앉아 건너편에 반소매를 입은 외국인에게 내가 맞게 탑승했는지 묻는다. 반소매 외국인은 패딩을 입은 외국인 옆에 앉아 있고, 미소로 끄덕인다. 보아하니 나는 후드티를 입고 있으니, 여름 가을 겨울이 모두 한 공간에 모인 셈이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하늘은 짙은 남색으로 어둑하다. 플랫폼에 켜진 주황 등불만 밤을 조금 밝혀준다. 플랫폼 밖으로 나오자 작은 공원이 보인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린다. 한 손으로만 핸들을 쥐고 자전거를 타는 아이, 핸들을 아예 잡지 않고 자전거를 탄 묘기를 부리는 아이. 공원에 앉아 두런두런 웅성거리며 대화하는 연인과 친구 무리. 나는 자연스러운 웃음소리와 대화 소리 사이를 캐리어 끌고 바퀴 소음을 내며 지나간다. 손에 핸드폰을 꽉 쥔 채 숙소를 찾으러 몸을 이리저리 돌려 방향을 찾는다. 몸에 짐을 열매처럼 매달고 긴장과 호기심이 가득한 여행자의 모습으로 걷는다.

우소아

공예와 순수 미술을 공부했다. 그리기와 만들기, 유기적 형태와 원색을 사랑한다. 지구 존재들의 생태적 연결을 상상할 수 있는 사물과 이미지를 제작 중이다. 4년 째 지속 중인 비건 지향적 생활 방식이 작품 제작활동에 미친 영향을 이야기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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