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턱대고 비건] ① 내가 채식을 시작한 이유

오보 채식으로 시작해서 비건이 된 지 1년이 지났다. 경력(?)도 짧고 아직 채식에 관해 잘 모른다. 그래서 전문적인 정보전달 대신 채식을 둘러싼 내 삶의 모습을 쓰려 한다.

건설현장 일용직노동. 속칭 노가다를 하러 새벽에 집에서 나와 신림동에 도착했다. 아침밥을 준다 해서 근처 국밥집에 들어갔다. 메뉴엔 먹을 수 있지만 먹기를 거부한 것뿐이었다. 공깃밥 하나를 주문해서 입속에 욱여넣었다. 주위 사람들은 나를 보고 “이야, 채식주의자를 만났네” 하며 잠깐 호들갑을 떨더니 이내 각자 뚝배기에 남은 내용물에 집중했다. 이 장면이 어떤 과정을 통해 내 삶의 모습이 됐을까?

내 전공은 미술이다. 2017년 졸업전시가 끝난 뒤 성취감보단 수치심만 남았다. 보통 졸업전시 후 2년 동안 이력서에 기재할 만한 성과가 없으면 미술을 포기하거나 자연스럽게 도태된다고 한다. 난 그 중요한 시기에 괜한 치기로 스스로 인정할 만한 결과를 만들겠다고 기존의 습관적 창작 방식을 모두 끊어내고 미술로 돈 버는 일까지 거부하며 제도권 미술과 멀어졌다. 비장한 각오일 수도 있지만, 그냥 운과 실력이 없어서 길이 보이지 않아 이런 선택을 한 것일 지도 모른다. 여하간 주류에서 멀어지니 삶 자체에 집중하게 됐고 이윽고 삶의 부분들을 예술로 만드는 실험을 긴 호흡으로 해 보자는 다짐을 했다. 이후 준비기간을 거쳐 2020년 탈렌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脫 Rent. 빌리는 것에서 벗어나자. by 탈렌트
脫 Rent. 빌리는 것에서 벗어나자. by 탈렌트

脫 Rent. 빌리는 것에서 벗어나자. 대가의 유산, 전시장의 권위, 유행하는 형식, 학연과 지연 등을 빌리는 것에서 벗어나 원점에서 나의 미술을 찾아 모험을 떠나자! 세상 물정 모르고 낭만적으로 들리겠지만 난 어리석은 일을 할 때만은 자신을 잘 속인다. 무작정 경복궁 근처에 있는 월세 35만 원짜리 작은 공간을 임차했다. 이 공간은 돈을 내지만 통상적인 방식의 공간 사용을 거부하고 나의 다짐을 이어나가게끔 하는 상징으로 기능하는 공간이다. 학자금도 다 못 갚고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빈곤한 1인 가구인 나는 지금까지 아무런 경제적 부가가치도 생산하지 않는 공간에 임대료만 928만 원을 썼다. 옆에서 보는 사람은 착잡함에 한숨을 내쉬거나 손바닥으로 이마를 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돈을 써 보니 오히려 돈에 연연하지 않고 더 자유로워짐을 느낀다. 이런 시도를 할 수 있는 내 환경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렇다면 어떻게 삶을 예술로 만들 수 있을까?

예술은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것들의 사이를 자유롭게 가로지르며 새롭거나 중요한 가치를 불러낸다. 이는 모든 사소한 것들이 예술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약간의 노력으로 내 삶의 요소를 예술로 만드는 천재 같은 재능이 나에게 있다면 그것 나름대로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잠깐 멈춰서 단절하고, 주변을 끈기있게 관찰하고, 생각을 과감하게 실천할 때 장막을 뚫어낼 수 있다.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것에서 벗어나 생활 전반의 모습을 뜯어보기로 했다. 그 첫 번째 목표가 돈이었다. 웃기는 논리지만 돈은 사람을 차별한다. 돈은 돈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고 돈이 없는 사람을 싫어한다. 그렇다면 나도 돈을 차별하자. 투기로 번 돈 1억 중 만 원과 종일 땀 흘려 번 일당 12만 원 중 만 원은 사회적으론 같은 가치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도 되잖아? 그래서 번 돈에 등급을 매긴 뒤 등급에 따라 사용을 제한했다. 그리고 모든 소비에 11가지 기준으로 점수를 매겨서 목표점수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는 스스로 벌을 주기로 했다.

스스로 만든 소비등급표. 3월 3일이면 1년 달성이다.
스스로 만든 소비등급표. 3월 3일이면 1년 달성이다.

육식은 나에게 명확한 손해

이익과 손해라는 자본주의 중심의 사고방식은 분명한 한계가 있지만,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경제활동의 주된 동기다. 거래가 성립하면 상호 효용이 생긴다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의 주된 논리다. 인간끼리 너 좋고 나 좋은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돈을 냈다는 이유로 상품과 관계된 다양한 문제에 관한 책임이 사라지는 것일까? 적어도 최소한의 책임을 가지기 위해 위 사진의 소비점수표를 만들었다. 한 달씩 점수 결산을 하며 지금은 목표점수 110점을 유지하는 삶을 살고 있다. 목표점수에 미달하면 1점당 1시간의 봉사형벌을 해야 한다. 고기를 먹으면 보통 –6점 정도의 점수가 나온다. 이는 6시간의 봉사형벌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으며 6시간의 경제적 가치를 최저 시급으로만 따져도 54.960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한다. 이런 활동을 하다 보니 윤리부조화를 겪게 돼서 육식을 끊고 무턱대고 채식을 시작했다. 지금은 비건이기 때문에 동물시체나 동물유래 부산물을 먹게 된다면 –500점을 부과한다.(실제로 먹은 적은 없다) 고기를 먹지 않아도 질 나쁜 소비를 하면 마이너스 점수가 누적된다. 지금까지의 미완료 봉사형벌 시간은 140.5시간이고 실행한 봉사형벌로는 북한산 쓰레기 줍기, 코로나접종센터 안내, 무료급식소 봉사가 있다. 참고로 이 활동을 하기 전의 나와 비슷한 생활방식을 가진 친구의 한 달 살이 점수는 –407점이다. 내 규칙을 기준으로 막무가내로 상상하면 거래에서 얻은 상호 효용의 대가로 407시간 분량의 미래 시간을 자연으로부터 착취하거나 착취에 동조했다는 셈이 된다. 이런 개인적인 규칙을 만들다 보니 질 높은 소비를 위해서 쓰레기가 덜 나오는 것, 대기업보다는 생협, 수입품 보다는 국산 유기농, 중고제품, 윤리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소비, 카드 대신 현금 사용, 물건 오래 쓰기 등을 하게 됐으며 돈 쓰는 게 무서워서 충동구매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쌓인 경험을 미술로 흥미롭고 엉뚱하게 풀어나가려 고민 중이다.

채식하다 보니 동물권이나 기후위기, 건강 등에 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생겼다. 다음 글에는 비건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나의 태도에 관해 써 보겠다.

탈렌트

여러 해 동안 미술을 하다가 짧은 호흡으로 전시장을 전전하는 자신의 작업에 무력함을 느꼈다. 2020년부터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인 단위들을 미술화 하기 위해 어리석어 보이지만 배움이 있는 경험을 인위적으로 하고 있다.

댓글 2

  1. 이렇게 흥미로운 글을~~ 오늘 낭독회를 통해 알게 되었네요. 탈렌트 프로젝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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