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비건이 되었나?

육식정상성 사회에서 살아온 청소년이 어떻게 비건을 다짐했는지, 실천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기억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다음 끼니에는 동물의 죽음을 먹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점점 변하기를 바랍니다.

“고기를 먹어야 튼튼해지지.”

“안 먹고 살다 보면 다 생각나게 되어 있어.”

“고기를 안 먹겠다니 무슨 소리야! 자, 어서 입 벌려!”

열아홉의 내가 숱하게 들은 말이다. 내가 비건을 시작한 건 대략 16살쯤. 3년이 아직 되지 않았다. 종종 사람들은 묻는다.

“그렇게까지 해야 해?”

응, 그렇게까지 해야 한다. 남들의 무례한 말을 견디며 비건을 고수하는 바탕에는 신념이 있으니까.

살면서 채식을 고려한 적은 많았다. 여섯 살 인가 일곱 살 때쯤,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이효리도 채식한대. 우리도 고기 그만 먹으면 안 돼?”

엄마는 대답했다.

“안 돼. 고기를 안 먹으면 아파. 너는 이효리가 아니잖아.”

고기를 안 먹으면 아픈가? 우리가 먹는 동물의 살점에는 어떤 화학물질이 들어 있는지 당신은 아는가. 동물은 밀집된 공간에서 산다. 몸을 돌릴 수 없는 우리에서 배설물이 온몸에 묻은 채로 짧게 살다 도살장에서 살해당한다. 그러나 도살장에 가기 전까지 동물이 죽으면 안 된다. 동물을 키우는 이들에게 동물은 재산이므로, 항생제를 투여한다. 동물이 빠르게 성장해야 돈이 된다. 성장촉진제를 놓는다. 우리는 그 동물의 살점을 굽거나 삶아서 먹고 즐긴다. 과연 건강한가?

그래서 고기를 줄였다. 텔레비전에서 채식 다큐멘터리를 보고 스스로 멋진 이름도 붙였다.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 우유와 달걀은 먹고, 살점은 피하겠다는 다짐. 왜냐면 그건 좀 더 쉬워 보이니까. 그 정도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동물을 죽이는 것도 아니잖아. 하루는 담임선생님이 오늘 집에 가서 마가린 간장밥을 해 먹을 거라고 하셨다. 내가 말했다.

침묵은 폭력을 만든다. 
사진출처 : Anete Lusina  
https://www.pexels.com/ko-kr/photo/5723316/
침묵은 폭력을 만든다.
사진출처 : Anete Lusina

“에이, 마가린보다 버터가 맛있잖아요.”

그러자 선생님은 동물권 단체의 동영상을 보여주셨다. 사람이 엄마 소에게서 아기 소를 강제로 빼내고 있었다. 피가 많이 났다. 소가 고통으로 몸을 뒤틀었다. 소가 울었다. 나도 울었다.

“왜 이러는 거죠? 소를 이렇게 괴롭혀야만 하나요?”

그 말에 선생님은 이렇게 답했다.

“이래야 소한테서 우유를 빼앗고 다시 임신을 시켜서 또 우유를 빼앗지. 항상 이랬어. 버터를 만드는 우유에도 고통과 착취가 녹아 있단다.”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바로 변하진 못했다. 육식정상성 사회에 너무 진하게 물들었던 탓일까.

베지테리안에서 벗어나 비건을 다짐한 건 열여섯, SNS에서 만난 한 지인의 글 때문이었다. 급식에 논비건 식품이 나왔는데 배식하시는 분이 의사를 묻지 않고 동물 사체를 식판에 올려 주어 싫다는 내용이었다. 머릿속에서 전구가 달칵 켜지는 느낌이었다. 아, 이거 사체구나. 나는 이때까지 죽음을 먹고 있었구나. 그때부터 스스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국내 동물권 단체의 영상과 글, 책, 생각지도 못한 동물 착취의 종류까지. 그리고 보호자에게 두유를 사 달라고 졸랐다. 이 결심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청소년에게는 채식 선택지가 너무 적다. 
사진출처 : Vegan Liftz 
https://www.pexels.com/ko-kr/photo/2377164/
청소년에게는 채식 선택지가 너무 적다.
사진출처 : Vegan Liftz 

그래서 그 후로 내가 논비건 식품을 아예 안 먹는가 하면, 부끄럽게도 그건 아니다. 지금 나는 학교 밖 청소년이라 한 끼는 사 먹고 두 끼는 집에서 먹는다. 외식에는 채식 선택지가 너무 적다. 특히 지방은. 학원 근처에서 비건 음식을 살 수 있는 곳은 없다시피 하다. 학교에 다닐 때는 어땠나. 대부분의 청소년은 하루 한 끼를 급식으로 먹는다. 선택권은 없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고 해도 여전히 음식을 남기면 꾸짖는 경우가 많다. 내가 먹는 음식에 무엇이 포함되었는지 정확히 알 길이 없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급식이 논비건 중심이기 때문에 비건인 음식만 골라 먹으면 정말 먹을 게 없다. 영양 불균형도 심하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논비건 음식엔 입도 안 대겠다고 다짐했었다. 김치? 젓갈 들어서 논비건. 나물? 액젓 사용해서 논비건. 장조림? 보자마자 논비건. 잔치국수? 멸치 국물이니까 논비건. 브로콜리 샐러드? 마요네즈에 달걀이 들어서 논비건. 다 제하고 보니 정말 밥 말고는 먹을 게 없었다. 영양 불균형이 너무 심하고 조리원 선생님과 영양사 선생님의 꾸지람에 질려 일주일 만에 포기했다. 아마도 청소년 비건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괴로움일 거다. 집에서는 다른가? 보통 식단을 정하는 사람은 양육자다. 청소년은 결정권이 없다. 주면 먹어야 하고 받으면 남기지 말아야 한다. 정말 운이 좋아서 가정이 청소년을 지지한다고 해도 열에 아홉은 앞에서 논비건 음식을 먹는다. 나의 결심이 무의미한 건 아닌지 회의가 든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동물의 권리를 위해 싸울 것이고 내 신념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비건이 어렵다면 세상을 바꾸면 된다. 다음 해에 채식 급식권 운동을 계획하고 있다. 모든 비건이 현실에 눌려 신념을 꺾지 않을 수 있는 날까지 투쟁할 것이다.

김캐롤

싸우는 트랜스남성, 비건, 학교 밖 청소년, 아픈 사람, 퀴어 페미니스트. 연대의 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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