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댁 이야기] ⑦ “느그 살림 친정 밑에 다 쓸어 열라고 흐냐?”

고향집과 땅을 팔고 순천으로 이사하며 살림을 전부 친정에 쏟아부을 것이라는 억측을 들으며 나온 보성댁은 친정에 쌀 한 톨도 안 주리라 결심을 하지만, 살림이 어려운 친정 형편은 보성댁이 맘먹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시어머니가 보성댁을 찾아왔다. 무시로 오가는 시어머니라 보성댁은 별다른 생각 없이 시어머니를 맞았다.

“엄니 오셌소.”
“그래 왔다. 나가 못 올 데를 왔냐?”

평상시 같지 않은 시어머니의 날선 말에 보성댁은 어리둥절했다. 이어서 당황스러웠다. 옴마? 엄니가 왜 저러신당가. 속으로 헤아려 봤다.

“너 일로 와 좀 앉아 봐라.”
“네 왜 그러신당가요.”
“니가 쟈들 애비한테 순천 가자고, 순천으로 이사가자고 쏘삭거렸냐?”
“예? 아이고 엄니 먼 소리다요. 쟈들 아부지가 먼저 그랬어요. 순천으로 가자고요.”
“머시 그래? 니가 쏘삭거렸제? 아이고 자고로 집안에서 여편네가 내 주장을 하면 그 집안은 말아먹는 거다. 근디 니가 니 서방을 쏘삭거려서 순천으로 가자고 해야?”
“아이, 엄니 그것이 아니당께요. 쟈들 아부지가 먼저 순천으로 이사 가자고 말하기 전에 지는 한마디도 한 적이 없당께요.”

보성댁이 열심히 해명을 했건만, 막내아들이 자주 보기 어려운 곳으로 이사 가고 불쌍한 큰 딸네에 반찬 하나라도 맘 놓고 갖다주기 어렵게 되겠다는 생각에 시어머니는 오기만 부려댔다.

“느그 엄니가 순천이로 이사했다등만 느그 엄니 멕애 살릴라고 순천 가자 그랬냐? 느그 살림 친정 밑에 다 쓸어 열라고 흐냐?”

보성댁은 이제 당황스러움을 넘어 억울했다. 자기 마음속을 버선 속처럼 뒤집어 보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고 엄니, 어찌코 흐먼 나 말을 믿어 주실라요? 아니당께 왜 이렇게 억지를 부리신당가요?”
“아니긴 머시가 아니여? 느그 엄니가 다 팔아가꼬 순천으로 오라고 쏘삭거리드냐? 다 느그 엄니 밑구멍으로 쓸어 늘라고 작정했냐?”

‘느그 엄니’하며 도를 넘는 시어머니의 억지에 보성댁은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이고 엄니, 아무리 맘도 안 들어도 사돈떡보고 느그 엄니가 뭐랍디여. 너무 하싱마요.”

대문 쪽을 보고 앉아 있는 시어머니의 눈에 들일을 마친 아들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시어머니와 마주하고 있는 보성댁은 남편이 들어오는 걸 몰랐다.

“아이고, 시상에 메누리가 씨어매를 잡도리하네. 두 눈 똑바로 뜨고 씨어매를 잡도리하는 메누리도 있네 시상으!”

시어머니의 갑작스런 울부짖음에 보성댁이 이게 무슨 일인지 당황하고 있는데 뒤에서 남편이 말하는 게 들렸다.

“아 엄니 왜 근다요. 먼 일이시다요?”
“아, 느그 각씨가 나한테 두 눈 똑바로 뜨고 대든단 말다! 순천으로 이사가지 마라갰다고!”
“어이, 참말인가?”
“아니, 나는 엄니가…”

보성댁은 눈 앞에 불이 번쩍하여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남편 상덕씨가 보성댁의 뺨을 때린 것이다. 아들이 순천으로 이사 가는 게 싫어 어거지를 부리던 시어머니도 상덕씨의 폭력에 깜짝 놀란 듯하였다.

“애, 애비야! 어른 앞에서 사람 치는 건 먼 경우다냐. 나가 순천 가지 마라 그래서 오기 부리냐?”

정작 뺨을 때린 상덕씨도 뺨을 맞은 보성댁도 서로 얼이 나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로를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며느리의 베갯머리 송사로 아들이 순천으로 이사하겠다 결심했다 믿는 시어머니는 어떻게든 순천으로 가지 못하게 하려고 억지를 부리다 뜻밖에 보이는 아들의 과격함에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서둘러 돌아가 버렸다.

“나 갈란다. 나 갈 건게. 좋게 좋게 말로 해라 이? 애비야 알았제?”

시어머니로서 며느리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건 위신이 손상되는 것이라 생각되어 애매하게 아들에게 이르고 시어머니는 총총히 가버렸다.  사진출처 : CDD20
시어머니로서 며느리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건 위신이 손상되는 것이라 생각되어 애매하게 아들에게 이르고 시어머니는 총총히 가버렸다.
사진출처 : CDD20

시어머니로서 며느리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건 위신이 손상되는 것이라 생각되어 애매하게 아들에게 이르고 시어머니는 총총히 가버렸다. 보성댁은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알아차리려고 애를 썼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얼빠진 모습으로 마주 보고 있던 상덕씨는 고개를 떨구고 미안허네 한마디를 한 후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보성댁은 흐르는 눈물이 그칠 때까지 마루에 걸터 앉아 있었다. 눈물이 마르고도 멍하니 마루에 걸터앉아 있던 보성댁은 동네에서 놀다 배가 고파져 집으로 돌아온 아들들이 엄니하고 부를 때까지 그러고 있었다.

“엄니 배고파요. 밥 줘요.”

아들들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려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상덕씨는 한동안 보성댁의 눈치를 살피며 지냈다. 그 사단이 나서인지 시어머니는 순천으로 이사하는 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상덕씨가 순천으로 이사간다며 집과 땅을 내놓자 우물가에서, 갯바닥에서 아낙들이 쑤근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저 집 이사간다대? 잉? 왜? 뭐 아아들 교육 때문이라나 뭐라나. 아이고 교육은 무신 교육이여. 친정 가차이 갈라고 그런 것이겄제? 오매 글믄 그 집 살림 다아 친정 믹에 살리는 데 쓰겄구만.

남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상덕씨와 보성댁은 이사할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갔다. 상덕씨가 내놓은 땅과 집은 어렵지 않게 팔렸다. 그렇게 집과 땅을 판 값으로 쌀 열다섯 가마니를 받았다.

이삿짐을 옮기기 위해 작은 트럭을 불렀다. 단촐한 살림이라 살림살이보다 쌀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했다. 이사하던 날 시부모와 시숙이 도와줄 겸 배웅도 할 겸 왔다. 세 사람은 못마땅한 기색을 전혀 감추려 하지 않았다. 시숙이 쌀을 싣는 것을 거들며 이것 처갓집으로 다 가는 거 아닌가 몰라하며 궁시렁거리는 것을 들었다. 짐을 다 싣고 두 내외가 아이를 각각 하나씩 트럭으로 올라가는데 시아버지가 시숙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저거 저 쌀 저거 처갓집으로 다 갖다 바칠 것이다. 보나마나 뻔허다.”

순천으로 이사하기로 결정한 후 무수히 들은 말, 보성댁은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친정에 이 쌀 한 톨도 안 준다. 절대 안 준다. 울 엄니가 굶어 죽어도 안 준다. 굳게 다짐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친정이 가난하다지만 너무나 무시하고 우습게 본다는 생각에 말할 수 없이 맘이 상했다.

순천으로 가서 다릿거리 근처에 있는 박씨네 집 아랫방을 얻어 네 식구가 들어가고 쌀가마니를 쌓아 놓으니 방이 좁았지만 당분간은 어쩔 수 없었다. 딸이 이사 온다고 친정어머니가 막냇동생을 데라고 찾아오셨다. 방을 들여다 보던 어머니는 윗목에 쌓인 쌀가마니를 보고 흠칫 놀라셨다. 막냇동생이 방안을 들여다보더니 쌀가마니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져선 말을 했다.

“와, 쌀이다. 언니 집엔 쌀이 이렇게나 많아? 좋겄다. 맨날맨날 쌀밥 묵겄네? 우리는 아침에 보리죽 묵었는디.”

이번 한 번만이다. 이건 친정에 갖다 디린 거 아니고 우리집이서 밥해 묵은 건께 친정에 퍼준 거 아니다 생각하며 보성댁은 밥을 지어 어머니 동생과 함께 온 식구가 둘러앉아 저녁을 지어 먹었다. 쌀밥을 오랜만에 본 동생은 허겁지겁 먹다가 얹혀서 켁켁거렸다. 보성댁이 물을 떠다 주자 동생은 물을 마셨고 어머니는 동생의 등을 쓸어 내리며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보성댁은 저 쌀 한 가마 엄니집으로 턱하니 져다줄 수 있으믄 얼마나 좋을끄나 생각했다. 그러나 가난한 친정을 얕보며 시아버지와 시숙이 하던 말이며 마을 사람들이 쑥덕거리던 걸 생각하면 너무나 자존심이 상하고 울 엄니를 거지 취급하지 마라 싶은 생각에 그 쌀을 엄니한테 한 톨이라도 드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보성댁 부부는 집을 팔고 받은 쌀을 밑천으로 쌀장사를 시작했다. 무슨 돈이 있어 세를 주는 가게를 장만해서 하는 장사가 아니라 장거리에 나가 난전을 펼치고 한 됫박, 두 됫박 달라는 대로 퍼주는 장사였다. 보성댁은 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에 정숙한 아내로 살려고 노력하기는 했지만 타고난 천성이 활달해 쌀장사하는 것을 그다지 어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 상덕씨는 천성이 숫기가 없어 조용한 성격이라 장사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부부가 같이할 때는 그럭저럭했지만 보성댁이 셋째를 가져 해산을 하게 되자 얼마간이라도 상덕씨 혼자 장사를 나가야 했고 상덕씨는 그걸 힘들어했다.

셋째를 낳은 보성댁은 아이를 낳았다고 맘 놓고 쌀밥을 해 먹지는 못했다. 밥만 먹고 살 수 없고 새끼들 옷도 사 입혀야 했고 신발도 사 줘야 했다. 날이 추워지면 방에 군불도 때야 했다. 그런 돈이 다 어디에서 나오겠는가 다 쌀로 돈을 사야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몸을 푼 보성댁을 도와주러 친정어머니가 며칠 오셨다. 해산하느라 피 묻은 옷가지며 기저귀를 빨아 주고 별다른 건더기 없는 멀건 미역국이나마 어머니가 와서 끓여 줘서 먹을 수 있었다. 그런 어머니가 돌아갈 때는 보성댁은 남은 밥을 가져가시게 했다. 그 밥도 대부분이 보리가 들어 있는 밥이었고 절대 어머니에게 쌀을 주는 법은 없었다. 보성댁도 쌀장사라고 하냥 쌀밥만 먹고 살 수는 없었다. 여수머리를 떠나올 때 시부모며 마을 사람들이 했던 말들이 비수가 되어 들어와 박혀 보성댁으로 하여금 어머니에게 냉정하게 대하게 만들었다. 친정어머니는 다니던 장사를 그만두고 삯바느질을 하기 시작했다. 바느질 솜씨가 꼼꼼해 일은 잘 했지만 다들 어려운 시절이라 삯을 주며 바느질을 맡기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근근이 입에 풀칠하며 살았다. 어느 날 어머니가 보성댁을 찾아 왔다.

“아이, 안나야.”
“옴마, 엄니 오셌소? 방으로 들어갑시다. 나 빨던 걸레 마저 빨고 들어갈 겅께.”
“이 얼른 흐고 들어오니라.”

어머니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얼굴이었다. 보성댁은 애써 모른 척하며 걸레를 빨았다. 천천히 빨았다. 걸레를 꼭 짜서 마루에 두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 안나야. 나가 엥간흐믄 이런 말 안 할라고 했다만.”

보성댁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엄니 제발 말하시지 마씨요. 보성댁은 마음속으로 애원했다.

“나랑 느그 동생이랑 사흘을 굶었다. 저 윗목에 있는 쌀 소싱 한 대만 주믄 안 되겄냐. 멋흐믄 나가 나중에 갚아 줄 겅께.”

보성댁은 같이 울면서도 쌀은 못 주지 싶었다. 방 한쪽에서 놀던 아이들이 엄마와 할머니가 붙잡고 우는 걸 보더니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덩달아 같이 울기 시작했다. 사진출처 : CDD20
보성댁은 같이 울면서도 쌀은 못 주지 싶었다. 방 한쪽에서 놀던 아이들이 엄마와 할머니가 붙잡고 우는 걸 보더니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덩달아 같이 울기 시작했다.
사진출처 : CDD20

엄니 제발 그 말씀은 하지 마시랑께요. 나보고 어쩌라고요. 엄니한테 쌀 한 톨만 줘도 친정에다 다 갖다 퍼준다고 흐껏인디요. 보성댁은 깝깝했다. 어머니의 애처러운 얼굴을 애써 외면했다.

“엄니 죄송하구만요. 그냥 밥솥에 있는 밥 드릴겅께 쌀 달란 말씀은 하지 마시씨요. 나가 호두서 나올 때 먼 소리를 듣고 나왔는디…… 쌀은 못 드링께 그냥 밥이나 가꼬 가시씨요.”
“시상으…… 니가 이렇게 독한 딸이었냐? 이 모질고 독한 년아, 나가 굶은 건 괜찬해야. 니 동생이, 저 어린 것이 굶고 있는 것이 안 짠하냐? 주린 배를 안고 자빠져 있는 것이 짠하도 않냐? 어매 독한 것, 독한 것. 아이고 나가 자석을 잘못 낳았다. 잘못 낳았어. 어흐흐흐 아흐 독한 년, 독한 년!”
“엄니 죄송해요. 죄송하그만요. 그래도 쌀은 안 되아요. 어흐흐”

보성댁은 같이 울면서도 쌀은 못 주지 싶었다. 방 한쪽에서 놀던 아이들이 엄마와 할머니가 붙잡고 우는 걸 보더니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덩달아 같이 울기 시작했다. 잠들어 있던 갓난아기마저 깨서 울기 시작해 보성댁은 아기를 안고 눈물을 흘렸다.

“엄마, 할무니 으아앙!”
“엄니 죄송해요. 죄송해요. 어흐흑”

그러고 있는데 밖에서 상덕씨의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이게 먼소리당가?”

문이 열리고 상덕씨가 들어왔다. 장모와 아내가 서로 붙잡고 우는 걸 보고 황망해 했다.

“어이 먼 일이당가. 장모님 왜 이러시오. 어이 말 좀 해보소.”

어머니는 사위 얼굴 보기 민망한지 말은 못 하고 눈물만 찍어내고 있었다.

“어이 먼 일인가? 왜 긍가?”
“나가 이사나올 때 무슨 말을 듣고 나왔는디, 쌀 못 드려라 못 드려요. 나가 호두서 나올 때 엄니한테는 쌀 한 톨도 안 준다고 굳게 맘 묵고 나왔는디 왜 나 맘 약해지게 엄니 그러요. 엉엉”

보성댁의 이 말에 상덕씨는 이게 무슨 일인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이 근다고 어무니한테 그렇게 모질게 흐믄 쓴당가.”

말을 마친 상덕씨는 쌀을 한 됫박 퍼서 자루에 담아 장모 앞에 내밀었다.

“장모님, 그만 우시고 이 쌀 갖고 가서 막내 처제 밥해 멕이씨요. 얼마나 배가 고팠겄어요.”
“어이 나가 미안하네. 나가 저거 맘 독하게 묵은 것도 알고 엥간하믄 이런 말 안 흘라고 했는디 막둥이 저것이 사흘을 밥을 못 묵어서 물만 들이키고 배를 끌어안고 자빠져 있는 것을 보고 있을랑께 가슴이 미어져서 그냥 있을 수가 없드란 말이시.”
“아이고 장모님 알지요. 아다마다요. 그만 눈물 딲으시고 얼렁 가서 처제 밥 멕이씨요.”

그렇게 훌쩍이며 어머니는 쌀자루를 안고 나갔다. 어머니가 나간 후 보성댁은 저녁을 지어 상덕씨와 아이들 밥을 차렸다. 그리고 상덕씨에게 다시는 친정어머니께 쌀을 주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냈다.

최은숙

35년의 교직생활을 명퇴로 마감하고 제 2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소설로 쓰고 있습니다. 올해 91세인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어머니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글로 남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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