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댁 이야기] ④ 며느리들은 꼬추만 기다렸다

시집을 간 보성댁은 첫 아이를 사산하고 두 번째 출산에서 가족들이 간절히 바라던 아들을 낳는다. 그런데 동서의 네 번째 아이도 딸이면 보성댁의 아들이 동서의 아들이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안나는 처음 시집 와서는 시부모와 시아주버니 부부와 함께 살았다. 안나는 보성에서 살다 시집왔대서 보성댁으로 호칭이 바뀌어 살게 되었다. 보성댁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하려고 노력하며 지냈지만 깨친 생각을 갖고 살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던 영향으로 새로운 가족이나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과 생각이 달라 힘들고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들이 많았다.

가장 먼저 보성댁을 당황스럽게 한 것은 시아버지였다.

“둘째는 머리가 왜 그 모냥이냐?”
“네? 아버님 무슨 말씀인지 잘…….”
“아, 새각시가 낭자머리를 해야지. 왜 그렇게 방정맞게 짤라부렀다냐?”

보성댁은 큰애기일 때 긴 댕기 머리를 하지 않고 짧게 자른 신식머리를 하고 있었다. 보성댁의 머릿결은 부드럽고 빛깔은 칠흑같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뜬 후 어머니랑 힘겹게 살다가 보릿고개를 넘을 때 삼단같은 머리를 잘라 보리 석 되와 바꿔 굶주린 가족들의 배를 달랬던 것이다. 그리고 짧은 머리가 편해 그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가 혼례날을 받았다고 해서 갑자기 자랄 리가 없는 지라 그냥 그런 상태로 혼인을 치른 것이다. 보성댁은 시아버지에게 그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이제 갓 시집 온 새댁이 시아버지 앞에서 구구절절히 변명하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는 시대였다.

“네, 아부님. 부지런히 질러서 낭자머리 허겄습니다.”

보성댁의 대답을 듣고 그 자리에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지만, 시아버지는 작은 며느리가 맘에 안 들거나 소리를 질러주고 싶을 때는 뜬금없이 보성댁의 머리를 트집잡았다.

“그 놈에 대그빡은 언제 질러서 낭자를 헐 것이냐?”

이미 머리카락을 길러서 쪽진 머리를 하겠다고 대답을 했음에도 한 번씩 소리를 질러대는 시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어른들한테 말대답하는 것이 예의 없는 상놈의 행동이라고 가르침을 받아온 보성댁은 서러움을 꾹꾹 누르며 머리가 어서 자라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딸만 넷인 집에서 큰딸로 살아 오며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 온 보성댁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또 있었다. 보성댁이 시집왔을 때 손윗동서는 딸을 셋을 낳아 기르고 있었다. 너댓 살짜리 큰 애부터 갓난 셋째딸까지 오목조목 귀여워 보성댁도 아이들을 잘 돌봐주고 얼굴이 더러워져 있으면 씻겨주고 밥을 먹을 때면 정신이 없는 형님을 대신해 큰 애는 데리고 밥을 먹이기도 했다. 특히 아직 돌을 넘기지 않은 셋째 조카는 피부가 하얗고 달덩이 같은 아이였다. 어느 날 마루에 앉아 놀고 있는 아이를 보고 지나가던 마을 아낙이 한마디 했다.

“아이고! 애기가 흐그니 예쁜 거 봐라.”

마당에서 그날 하던 일을 마무리하던 시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왕산만흔본이 멋흐꺼이요?”(큰 산처럼 대단하다고 한들 무엇을 할 것이요?)
“예?”

아낙이 당황스러워하며 반문했다.

“왕산만흔본이 가시내를 어따 쓰꺼이요? 씨잘 데없는 가시내만 셋이나 낳아놓고!”
“아이고…… 난 또 먼 소리라고.”

남의 딸 예쁘단 말 한마디 했다가 갑작스런 봉변을 당한 아낙은 입을 삐죽거리며 서둘러 제 갈 길을 갔다. 어느 겨울 동서네 둘째딸 아이가 감기에 걸려 콧물을 흘리고 다녔다. 코가 꽉 막혀 훌쩍이며 힘겹게 숨을 쉬는 아이를 두고 시아버지는 또 버럭했다.

“저 놈에 콧구녕을 짝대기로 콱 쑤셔부러라!”

며느리는 아이를 낳고 아이는 자란다. 이 오래된 사실은 그 개인들에겐 완전히 새롭고 낯선 경험이다. 
사진 출처 : Don O'Brien
며느리는 아이를 낳고 아이는 자란다. 이 오래된 사실은 그 개인들에겐 완전히 새롭고 낯선 경험이다.
사진 출처 : Don O’Brien

보성댁은 저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두고 어떻게 저렇게 말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혼인하고 몇 달이 지나자 빠진 적이 없는 달거리가 늦는다 생각할 즈음 입덧이 시작되었다. 첫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보성댁은 아이만 가지면 입덧이 심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어쩌다 입에 맞아 맛있게 먹고 나면 여지없이 토해냈다. 평소에 그렇게도 좋아하던 생선은 입에 대기도 싫어지면서 닭고기, 쇠고기만 먹고 싶어졌다. 그렇게 두어 달을 입덧으로 시달리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밥도 잘 먹고 몸도 가볍게 놀렸다. 그렇게 임신 기간을 보내고 달이 다 차 아이를 낳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가 숨을 쉬지 않았다. 아이를 받아주던 시어머니는 실망에 가득 차 부르짖었다.

“아이, 죽은 애기를 낳았다.”

기진맥진한 보성댁은 깜짝 놀라 반문했다.

“예? 뭐라고요?”
“애기가 죽어서 나왔다고, 그나마 계집앤 게 다행이다.”

보성댁은 믿어지지가 않았다.

“엄니 애기 좀 이리 조 봇씨요.”
“아이고 죽은 애기 봐서 멋 흔다냐.”

그러면서도 시어머니는 죽은 아이를 보성댁에게 내밀었다. 여자 아이였다. 죽었다는 아이가 어찌 그렇게 뽀얗고 포동포동한지 보성댁은 믿을 수가 없어 아이의 코 밑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아이는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보성댁은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이 아이가 이대로 두면 연옥을 떠돌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한 천주교 신자인 보성댁은 그렇게 교리를 배웠고 그 말을 믿었다. 성수가 없지만 대세-천주교에서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 갑작스러운 상황을 맞이하였을 때 사제가 아닌 일반 신자들이 약식으로 주는 세례-를 붙여야겠다 생각이 들어 남편에게 물을 떠다 달라고 했다. 급한 대로 대모의 세례명을 따 세례명을 헬레나라고 짓고 아이의 이마에 십자를 그으며 물을 붓고 아는 대로 기도문을 중얼거렸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헬레나에게 세례를 줍니다. 아멘”

그제사 아이의 영혼이 연옥을 떠돌지 않고 천국으로 바로 향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아이는 기저귀천으로 싸고 작은 나무 상자에 담아 남편이 뒷산으로 올라가 묻고 내려왔다. 그렇게 죽은 아이의 봉분은 너무나 작았고 당연하게도 묘표라고 할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보성댁은 열 달을 다 채운 아이가 죽었다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죽어버린 계집아이를 낳은 몸으로 긴 산후조리를 할 수도 없었다. 상심해 누워 있는 방앞에서 시아버지가 소리를 질렀다.

“씨잘 데 없는 지집애가 죽었다고 언제까지 글고 있을 꺼이냐. 먼 장한 일 했다고 그러고 한정없이 자빠져 있을 꺼이냐!”

큰동서도 시어머니도 남편도 아무도 아이의 죽음을 애석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시아버지 말처럼 ‘씨잘 데 없는 지집’이어서 그런가 보다 하면서도 그게 또 마음 아팠다. 아무도 그 아이를 애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보성댁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조카 셋이 여자아이여서인지 남편도 속마음은 어땠을지라도 무덤덤해 보였다. 아직 젊고 건강한 몸이어서 보성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아이를 가졌다. 그리고 큰동서도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하였다. 서로 비슷하게 배가 불러 가면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보성댁에게는 크게 압박을 주지는 않았지만, 큰며느리에게는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것을 수시로 강조했다.

“씨잘 데 없는 가시나들을 셋이나 났응께 이번에는 아들 나야쓴다. 알겄냐?”
그럴 때면 동서는 아무 말 없이 땅만 내려다보곤 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보성댁의 마음도 편하지는 않았다. 얼음이 꽁꽁 어는 어느 겨울날 보성댁은 진통이 시작되었다.

“아이고…… 어무니, 배가 아파요.”
“잉, 아가 나올랑갑다. 얼릉 방으로 들어가자. 아이, 얼릉 방에 불 때고 물도 낄애라.”

시어머니는 작은 아들에게 이르고 보성댁을 방에 눕게 했다.

“하이고…… 꼬치가 나와야 쓰껐인디, 어쩔랑고.”

보성댁은 진통을 느끼는 중에도 시어머니의 중얼거림을 놓지지 않았고 걱정이 되었다. 이번에도 딸을 낳으믄 식구들이 다 안 이뻐랄 것인디, 어찌까…….

까무라칠 것 같은 산고 끝에 밑에서 미끄덩, 뭔가 뜨거운 덩어리가 빠져나가는 느낌 끝에 아이가 태어났다. 시어머니는 아이가 뭘 달고 있는지를 먼저 확인했다.

“아이고, 꼬치다 꼬치!”

시어머니의 부르짖음을 들으며 보성댁은 까물어가는 속에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 밖에서는 야단이었다. 아부지, 아들이다네요. 이 나도 들었다. 인자 우리 집안 대는 잇겄다. 조상님 벨 면목이 있겄어. 아부지, 엄마! 꼬치다요! 자기 아버지에게 전하러 뛰어가는 큰조카 아이의 수선스러운 소리까지.

“어이, 애기도 씻기고 작은 메누리 얼릉 첫국밥 해멕이세. 미역 어딨냐.”

보성댁이 처음 듣는 시아버지의 온화한 음성이었다. 큰동서도 곧 몸을 풀 것 같았다. 몸을 풀고 3일이 지나자 큰동서는 아직 산통이 오지 않은 것 같은데 조카아이들이 사촌 동생을 보러 들어 왔다. 기저귀를 가는 옆에서 자기들과는 다른 걸 달고 있는 아이를 신기하다는 듯 들여다보고 있던 큰조카가 말했다.

“작어매, 작어매. 울 엄마가 이번에도 가시내 나믄 이 애기는 우리 애기 된다글대.”
“응? 그게 무슨 소리야?”
“긍께에 울 어매가 아들 못 나믄 이 애기는 울 어매 아들된다고 글든디?”
“누가 그런 말을 했는디?”
“잉, 할무니가.”

보성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제 첫 아이를 무사히 기르고 있는데 이 아이를 동서에게 뺏겨야 한다고? 보성댁은 내심 이 아이가 딸이 아니고 아들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이 아이가 딸이었으면 아마 지금 이렇게 산후조리를 하고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집안 분위기를 봐서는 삼칠일을 조리하게 해 줄 것 같지 않았지만 며칠만이라도 이렇게 쉴 수 있는 건 아들을 낳은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내아이로 태어나 준 아이가 너무나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큰동서가 아들을 못 낳으면 이 아이를 데려간다니, 한집에 살아도 내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니게 된다니, 그럼 난? 형님이 낳은 아이를 내가 길러야 하는 건가? 아들을 낳지 말고 딸을 낳았어야 하는 건가?

그러나 보성댁은 자신의 그런 걱정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사실 아들을 낳지 못한 형제가 있으면 아들을 둘 이상 낳은 형제의 아이를 데려다 자식으로 삼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과연 자기 아들을 지킬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저 큰동서가 아들을 낳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보성댁이 아들을 낳고 일주일쯤 지나자 큰동서가 진통을 시작했고 누구보다 보성댁이 초조해하는 가운데 첫아들을 낳았다.

최은숙

35년의 교직생활을 명퇴로 마감하고 제 2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소설로 쓰고 있습니다. 올해 91세인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어머니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글로 남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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