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구조물에서 생태적 호흡을 상상하기

거리를 배회하다 마주한 사물 중, 비범하게 다가오는 사물이 있다. 이 사물은 멈춰있지만, 풍족한 은유를 머금고 있다. 나는 이런 사물을 마주한 순간, 삶의 기어를 사물의 속도로 조정한다. 충분히 사물을 응시하고, 사물에 받은 은유의 조각을 흘러가는 느낌이 아닌 언어로 구체화한다. 주어진 역할 속 충실히 사는 사물이 나와 타자, 그리고 세상을 연결하는 상상력을 이야기하려 한다.

여기 지금, 연결된 꼭짓점

지금으로부터 2년 전, 무동력 환기구는 내게 새로운 사물로 다가왔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심각해질 무렵, 텅 빈 거리의 스쳐가는 사람은 흐릿해지고, 사물은 더욱 선명해졌다. 덕분에 나는 한때 사람에 의해 가려졌던 거리 속 사물을 오래 응시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다양한 사물을 느끼던 중, 건물 옥상에 있는 무동력 환기구가 바람에 의해 뱅글뱅글 회전하는 모습을 보았다. 언제나 알던 환기구였지만, 이때는 낯설게 다가왔다. 바람을 만난 정신없이 상모를 돌리는 환기구의 모습에 나의 눈알도 뱅글뱅글 함께 회전했다. 목덜미가 저릿해질 때까지 환기구가 회전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바람을 만나 회전하는 무동력 환기구가 건물 내, 외부 공기를 순환하는 과정을 공기가 소화, 배설되는 대사 작용으로 느꼈다. 흔히 닥트(duct)라는 명칭으로 통용되는 환기구는 공기 같은 유체가 흐르는 구조물이다. 환기구는 건물 내부 공기의 맑음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 공기의 유입과 순환을 담당한다. 환기구가 연결된 배관은 정화조, 화장실, 부엌 조리시설 등, 건물 내, 외부 벽에 창자처럼 길게 부착되어있다. 그리고 내부 공기는 창자 같은 배관을 통해 흘러 환기구로 통과한다. 환기구는 바람을 만나 회전하고 바람의 꼭짓점이 되어 안팎의 공기가 머물고 통과하는 중간 지점이 된다. 나는 코로나 시기 서로가 서로의 숨을 두려워할 때, 건물 안팎의 여전히 숨이 순환하는 모습을 무동력 환기구를 통해 보았다. 여기 지금, 여전히 연결된 우리의 호흡을 보았다.

열고 닫는, 우리의 숨구멍

우소아 작품, plantilation(2020), 식물, 알루미늄 배관, 바퀴, 재활용 박스, 가변크기
우소아 작품, plantilation(2020), 식물, 알루미늄 배관, 바퀴, 재활용 박스, 가변크기

코로나 시기 우리는 내부 공간으로 격리되었다. 마치 내부는 외부로부터 단절된 착각을 준다. 하지만 도시 건물이 외부 자연과의 관계망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을까? 나는 도시 건물도 우리의 피부와 같이 호흡을 위한 촘촘한 숨구멍을 가진 몸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건물은 거주자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혈관같이 얇고 복잡한 구조물, 창자같이 넓고 굵은 구조물 등을 건물 내부에 내장하기 때문이다. 건물 구조물을 통해 바람, 공기, 물 같이 맑은 것, 배설할 오물 같이 탈락할 것을 내, 외부로 이동한다. 이‘것’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건물 내부에서 혈액처럼 흐른다. 또한 건물 창문과 대문을 개폐하는 과정에서 먼지, 공기, 소리 등 외부 입자는 건물 내부로 출입한다. 폐를 조이고 팽창하고, 숨을 먹고 내뱉는 과정에 외부 입자는 우리의 내부 입자와 뒤엉킨다. 그렇게 우리는 호흡을 통해 몸에 뚫린 숨구멍을 실감한다. 그렇게 우리 인간은 ‘다공성 존재’임을 상기한다. 코로나 기간 ‘다공성 존재’ 인간은 ‘다공성 구조물’ 건물에 숨어 격리한다. 하지만 결코 자연과 완벽하게 격리될 수 없는 공간이다. 도시 건물은 환기구, 배관 등, 뚫린 구멍을 통해 외부 자연을 적극적으로 받아드린다. 우리 인간도 단지 건물과 다른 물질로 조성된 다공성 존재일 뿐, 안팎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동일한 성질을 공유한다. 나는 우리의 원만한 신진대사를 위해 온도를 조절하고, 맑은 공기를 순환하는 건물을 도시 유기체로 감각하게 되었다.

돌고 도는, 순환의 유기체

무뎌진 코로나에 대한 경각심은 다시 사람의 존재를 선명하게 해줬다. 전보다 거리 속 사물에 대한 집중력은 저하됐지만, 내게 건물에 달린 환기구는 더욱 분명해졌다. 나는 말없는 인공 구조물에서 숨을 보았고, 유기적 성질을 느꼈다. 견고하게 멈춰있지만, 흉부가 들썩이는 역동적 호흡을 보았다.
겨울이 성큼 다가와 바람이 서늘하고 하늘이 명료한 푸른색일 때, 나는 더욱 기웃거리며 바람에 회전하는 무동력 환기구를 찾는다. 건물의 꼭짓점, 숨의 꼭짓점인 환기구. 건물 내부에서 숨을 뿜어내는 우리와 건물 외부에선 숨을 내주는 우리. 건물 속에선 숨을 받아먹는 입자가 되고, 밖에서는 숨을 내주는 입자인 우리. 도시 건물은 견고한 식물 같은 유기체가 된다. 그리고 건물 구조물은 내, 외부를 연결하는 식물 피부가 된다. 몸 전체가 햇빛을 받고 이산화탄소를 뿜는 식물처럼, 도시 건물은 자신의 깊은 피부로 내, 외부를 순환한다. 녹슬고 무딜 때까지 충분히 회전하며 공기를 순환시킬 줄 아는, 작은 지구 같은 환기구는 무채색 숨이 푸른 바람으로 연결됨을 알려준다. 마음이 고여 있고, 관계가 단절되고, 자연과 멀어질수록 나는 식물 같은 환기구를 보러 간다.

우소아

공예와 순수 미술을 공부했다. 그리기와 만들기, 유기적 형태와 원색을 사랑한다. 지구 존재들의 생태적 연결을 상상할 수 있는 사물과 이미지를 제작 중이다. 4년 째 지속 중인 비건 지향적 생활 방식이 작품 제작활동에 미친 영향을 이야기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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