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거니즘 – 현실과 이상 사이

비거니즘, ‘비건‘ 제품을 사면 실천이 되는 것일까? 지속가능한 비거니즘을 위한 질문으로 현실과 이상 사이의 해결점을 찾고자 하는 고민은 계속 된다.

비건의 의미, 식단을 넘어 생활 습관으로

채식 위주의 식단을 선택하는 것은 기원전으로 거슬러 간 기록이 있다고 알려져 있을 만큼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유제품을 제외하는 완전한 채식을 뜻하는 비건(vegan)이라는 단어가 생긴 지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영국 베지테리언 소사이어(Vegetarian Society)에 따르면 1847년 협회가 만들어진 당시에는 베지테리언에 치즈, 달걀과 같은 동물성 원료의 섭취가 포함되는지 그 의미가 모호했고, 1909년~1912년 사이에야 동물성 원료의 포함 여부에 대한 논쟁이 이루어졌다. 그 후 영국 비건 협회를 설립한(1944년) 왓슨 부부가 동물성 원료를 포함하지 않는 명확한 의미의 단어를 만들기 위해 비건이라는 단어를 제시했다. 비건(vegan)은 베지테리언(vegetarian)의 앞, 뒤 글자를 따서 만들어졌다.

협회에 따르면 비거니즘(veganism)은 ‘음식, 의류 또는 다른 목적을 위해 동물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착취나 학대를 가능한 한 배제하려는 삶의 방식 또는 철학을 뜻한다. 더 나아가서는 동물, 사람, 환경을 위해 동물이 포함되지 않는(animal-free) 대안을 개발하고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동물을 위해, 환경을 위해 또는 개인적인 식단 조절을 위해 채식 위주의 식단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비건이라는 단어의 사용도 많아지며 이제는 먹는 음식을 넘어 생활도 들어볼 수 있는 말이 되었다. 특히 뷰티 시장에서는 2019-2020년 비건 화장품 마케팅이 활발히 성장하여 소비자의 마음을 끌기 위해 ‘비건’이라는 단어 사용은 홍보의 필수 수단이 되어 가고 있다.

유행인가, 신념인가

제품을 알리기 위해 ‘비건’을 광고에 내건 브랜드들이 쉽게 눈에 띄다 보니, ‘비건’이라는 단어 하나가 기업 홍보에 주는 힘이 세지고 있다. 그만큼 ‘비건’ 소비자들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비거니즘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관련 제품, 음식, 생활 팁에 대한 포스팅도 꾸준히 올라오고 경험을 공유하는 글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생활습관과 소비 활동이 동물과 환경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관심은 반갑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관심이 보여주기 위한 유행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지속 가능한 비거니즘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기업이, 그리고 사회가 함께 고민을 하는 과정이 같이 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한 번은 어느 브랜드가 해양 환경 보호를 위해 제품을 사면 수익의 일정 부분이 단체에 기부가 된다는 광고를 본 적이 있다. 해양 쓰레기로 인해 해양 동물이 영향을 받는다는 메시지도 함께 알리고 있었다. 마침 사고 싶던 제품이었고, 소비자 후기도 긍정적이어서 구매를 했다. 막상 박스를 열어보니 제품은 일회성 포장지로 쌓여있고, 해양 동물 스티커가 들어있었고, 스티커 한 개씩 플라스틱 포장지로 포장되어 있었다. 소비 자체를 줄이고자 선택을 할 때마다 신중히 하는데, 박스를 여니 브랜드에서 홍보한 해양 보호에 대한 메시지는 온데간데없는 포장으로 속임을 당한 거 같아 씁쓸했다.

비거니즘은 나의 가치관

“그것부터 고쳐야 해요.”

회의 후, 일행과 식사를 하러 갔다가 메뉴를 고르며 채식을 한다고 하니 들려온 첫 반응이었다. 이때가 약 6년 전쯤이다. 그분은 한국 전쟁 시절 먹을 것이 없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고 말씀하시며 먹을 것을 고르면 안 된다고 하셨다. 후식으로 나오는 수박을 먹을 때는 ‘과일은 고통을 안 느끼냐’며 ‘과일은 먹어도 되나’라고 하셨다.

식사가 끝나고 여러 생각이 오갔다.

서울 내에서는 찾아보면 집밖 메뉴로 한식, 양식, 중식을 모두 완전한 채식으로 먹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by 서보라미
서울 내에서는 찾아보면 집밖 메뉴로 한식, 양식, 중식을 모두 완전한 채식으로 먹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사진 출처 : 서보라미

동물성 재료가 들어간 음식을 안 먹는 것은 나의 식습관인데 이것을 왜 고쳐야 한다고 할까? 먹는 것을 위한 나의 선택에 다른 사람이 영향을 줘야 할까? 그리고 거기에 어디까지 대응을 해야 할까? 건강상 이유로 채식을 한다고 해도 ‘고치라’는 반응이 돌아올까? 나의 가치관에 따라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이 평가하고 비판을 해도 되는 것인가? 상대는 왜 다른 생명을 위한 나의 식습관을 존중하지 않는 것일까?

최근에는 채식 식단과 윤리적인 소비에 대한 관심으로 비건을 지향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며 ‘그것부터 고쳐야 해요’라고 대응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6년이 지난 후 이런 유사한 질문은 다른 상황에서도 종종 던질 때가 있다.

올해 초 명절이라고 치킨 세트를 배달해 먹을 수 있는 온라인 쿠폰을 선물로 받았다. 그분께 치킨은 안 먹으니 마음만 감사히 받겠다고, 쿠폰은 환불을 하시라고 정중하게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그럴 수도 있다고 하며 그럼 과일 바구니 배송으로 바꾸어 대신 쿠폰을 보내겠다고 답이 왔다. 하지만 일회용 사용을 줄이기 위해 배달을 안 시키고 있어서 정말 마음만 감사하게 받겠다고 다시 말씀드렸다. 치킨을 안 먹는 것은 이해가 갔지만 배달을 안 시킨다는 것은 이해가 잘 안 간다는 그분의 표정이 얼굴에 보였다. 배달음식 또는 배송을 시키면 나오는 쓰레기와 일회용품 때문에 (최대한) 배달과 택배 사절이라는 나의 선택에 유연성이 필요한 것인가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몇 번을 설득(?) 하여 정말로 마음만 받기로 하고 마무리가 되었다.

비거니즘은 나의 선택이지만 나만의 선택이기에는 힘든 사회에 살고 있다. 나는 불편을 감소하고 동물과 환경을 위한 소비를 선택할 수 있지만, 이것이 다른 사람과 연관이 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15년이 넘도록 늘 묻게 되는 질문이다.

완벽한 비거니즘은 힘들다. 인정하고 시작해보자.

생활 속에서 완벽한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많아졌지만 그렇다고 ‘대세’라고 하기에는 갈 길이 멀 정도로 아직 불편한 선택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과연 시작을 했다가 그만두면 어쩌지?

실천을 위한 질문과 의심을 던지면 그 벽은 더 커지기만 한다. 하지만 내가 왜 실천을 해야 하는 것인지 또는 왜 해보고 싶은지 고민을 해보는 것은 중요한 과정이다. 동물 착취에 대한 잔인한 영상을 보고 하루아침에 비건 식단으로 바꾸게 되었든, 어느 브랜드에서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것이라는 광고를 보고 크루얼티 프리(cruelty-free)1 제품을 한 번 사본 소비자이든, 본인이 생각하고 판단한 것이라면 의미 있는 시도이다. 완벽한 비거니즘은 힘들다. 그러니 이것을 인정하고 한 번, 두 번, 시도를 해보자. 주변 사람의 눈치로, 선택의 폭이 좁아져서 어렵게 느껴진다면 이번엔 쉬어가고 기회가 생기면 다시 생각해 보자. 완벽을 추구하는 것도, 과정을 거치는 것도 모두 용감한 결정이다.


  1. 크루얼티 프리란, 단어 그대로 학대(cruelty)가 없는(free) 것을 뜻한다.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혹은 ‘동물성 성분을 함유하지 않은’ 제품을 입고, 먹고, 쓰는 것으로 단순한 채식주의를 넘은 확장된 소비윤리 개념이다.

서보라미

생명을 소중히 하는 사회를 위해, 현재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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