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였던 이들은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학부모’가 된다. 그런데 학부모라는 말에는 교육·입시·성적·경쟁·민원 같은 사회적 맥락이 달라붙는다. 문득 영어로 학부모가 무얼까 궁금해진다. 한국어의 학부모와 정확히 대응하는 독립된 일상어는 없어 보인다. 중국어 가장(家长)이나 일본어 보호자(保護者)가 있는 듯하지만, 한국어의 ‘학부모’는 유독 부모를 ‘학교라는 제도 안의 존재’로 표현하지 않나 싶다. 한마디로 부모는 관계의 이름이고, 학부모는 교육제도에서 역할의 이름이라 할 수 있다.
과외생활 동안 수없이 마주쳤던 학부모‘님’들. 다양하고도 특이했던 그들을 소환해 본다.
최근에 마약문제를 소재로 다루는 드라마에서, 해로울 걸 짐작하면서도 자식을 독려하는 엄마가 나온다. 그걸 보며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수업 가면 유난히 피곤해 하는 고1 남학생이 있었다. 짐작컨대 엄마가 학교-학원-과외를 종일토록 돌린 것 같은, 아이는 졸린 듯 멍한 눈빛으로 나를 마주하기 일쑤였다.
하루는 아이 방으로 들어가니, 침대에 누워서 널브러져 있는 아이가 보였다. 아이에게 엄마는 빨대를 꽂은 채, 일명 ‘스누피 우유’를 입에 대주고 있었다. 집중력 향상 우유로 알려져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던 ‘고카페인 우유’였다. 그것은 우유라는 외피를 쓰고 스누피 만화가 그려져 있는, 세상 무해해 보이는 ‘각성제’였다.
그 수업은 시험 한 번도 치르지 않은 채 잘렸다. 엄마의 ‘직접 가르칠 테니 그만 오셔도 된다’는 통화를 끝으로.

과외생활 초창기에 집안이 부유한 학생이 많았다. 유명 아파트단지나 고급 빌라촌이 그런 집들이었다. 아버지가 리무진을 사고 싶었지만 집 주차장 길이가 맞지 않아 포기하셨다는 아이의 이야기를 예로 들자면 말이다. 아이는 매일 아침에 늑장 부리며 곧 죽어도 그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감는 통에 엄마의 짜증을 돋우고는 했다. 그래도 A자 스커트 교복에 묶은 머리는 사뭇 잘 어울렸다. 교복뿐이랴. 집에서 평상복으로 입는다는 외국 전통의상도 꼭 맞아 동양적 자태를 자아냈다. 꼭 조여서 세상 불편해 보이더니만, 당사자는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면으로 만들어져 얼마나 편한데요. 과학 선생님께서 선물로 주셨어요.”
당시에 흔치 않았던 복숭아맛 아이스티를 맨 처음 먹어본 것도 그 집에서다. 처음 보는 범상치 않은 색채의 음료는 달콤하면서 풍미가 깊다고나 할까. 다른 과외 집에서 맛볼 수 있게 된 건 시간이 지나서였다. 간식으로 ‘짜먹는 요구르트’라는 신기한 물건을 구경하게 된 것도 그렇다. 수업시간에 나보다 더 많은 얘기를 늘어놓기도 했는데, 얘기 끝에 엄마 아빠의 파란만장한 연애 이야기를 거쳐 엄마의 고민거리를 꺼내 놓았다.
“엄마가 고민이래요. 그냥 보석으로 사서 물려줄까 하고요.”
같은 동네에 살아도 물질적 풍요의 양상은 집집마다 형편마다 같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또 다른 미대 지망 인문계 여학생의 서사는 사뭇 달랐다. 공부를 따라 가기도, 병행해야 하는 미술학원 수업도 많이 힘들어 보였다. 어두운 안색으로 말소리도 크지 않던 그 아이는 일찍 철이 들었던 걸까. 종종 자신에게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 푸념어린 걱정을, 눈시울을 붉히며 꺼내 놓기도 했다. 내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는 정보는 주로 수업을 이어주는 브로커를 통해 흘러 들어오곤 했다. 그 학생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가 불쑥 꺼내 놓는 한마디에 깜짝 놀랐다.
“걔네 엄마가 목욕탕에서 때 미는 일하시잖아요.”
일반입시에 들어가는 학원비도 수백만 원일 텐데, 미술학원비에 재료비, 때마다 무슨 대학주최 대회까지… 입시가 다가오면서 미술학원마다 무슨 캠프를 열어 한 두 달짜리 숙박까지 불사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곤 했으니, 가히 눈덩이처럼 불어가는 교육비가 아닐 수 없다. 찬찬히 되짚어 보니, 이제야 아이의 슬픔과 걱정이 비단 자신의 입시 자체만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학부모’로 리프로그래밍 되는 것 같은 입시의 터널을 지나며, ‘부모사랑’은 과연 변질된 것일까 끝까지 의구심을 갖고 싶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