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한 대로, 내가 자란 대로 살면 아이는 결국 나밖에 안 된다. 나보다 뛰어난 삶을 살지는 못한다. 아이들은 부모가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를 살아가야 한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명확하다. 아이가 자신을 탐색할 수 있게끔,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끔 돕는 일이다. 가끔 부모들이 묻는다. ‘무슨 학과가 앞으로 전망이 있나.’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이가 정말 행복해하는 일을 하는 게 전망이다.” 숙명여대 아동복지학 유미숙 교수가 십여 년 전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시간은 지났어도 자녀에 대한 과잉보호와 과잉간섭이 일반화되어 버린 이 시대에 더 깊이 새겨 들어야할 부모를 향한 조언입니다.

사진 제공 : 강세기
다 큰 자녀까지도 어떻게든 끼고 돌며 간섭하려는 부모들은 지구 생태계의 기반을 만들어 주는 식물의 자식사랑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침 풀과 나무들이 열매를 맺는 계절입니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는 문장 들어보셨지요? 흔히 화엄경의 한 구절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 경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문장입니다. 출처가 무엇이 되었든 나무가 열매를 얻는 방식을 통해 깨달음의 바다에 이르게 하는 말입니다. 나무 입장에서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한 과정입니다. 꽃이 아름답다고 해서 거기에 집착해 머물게 되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무는 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비움을 통해 열매라는 더 큰 성취에 이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꽃이 필 때는 아름답지만 질 때는 추하더라는 말을 서슴없이 합니다. 꽃은 열매를 위한 과정임을 잊어버리고 오히려 꽃을 중히 여긴 것이지요. 이렇게 앞과 뒤가 뒤바뀐 것을 전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꿈같은 생각을 하는 것을 ‘전도몽상’이라고 하지요. 사람들이 자식을 키울 때 이런 전도몽상에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자식이란 부모를 빛내줄 장식 같은 꽃으로 생각하고 거기에 집착하느라 자식 스스로 열매를 맺어야 할 다음 과정으로 나가는 것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처음 뿌리 내린 곳에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수십 수백 년을 살아가는 나무들이지만 일 년에 한 번씩 움직일 수 있는 기회를 갖습니다. 물론 자신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자식들, 씨앗을 이동시킬 수 있는 기회이지요. 이 때 어미나무는 자기 자식들을 최대한 멀리 보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합니다. 어떻게든 끼고 있으려는 사람들과는 다르지요. 어미나무는 왜 자식들을 멀리 떠나보내려 할까요? 만일 열매가 어미나무 바로 아래 떨어져 싹을 틔운다면 어린 나무는 어미나무의 세력 아래서 제대로 성장할 수 없는 운명이 되어버립니다. 이미 그 자리에서 수십 수백년을 살면서 자기만의 가지와 뿌리로 자기 세상을 구축한 어미나무의 그늘 아래에서 자식나무는 햇빛도 물도 양분도 충분히 얻지 못하고 시들어버릴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어미나무는 어떻게든 자기의 그늘을 벗어나 새로운 기회의 땅을 찾아 착실히 뿌리를 내리고 자기보다 더 큰 나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멀리 보내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지요.
어미나무들은 씨앗을 멀리 보내기 위해 고도의 전략을 구사합니다. 먼저 바람을 이용하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씨앗에 낙하산 같은 털을 달아 바람에 띄우는 버드나무, 사시나무가 있고 씨앗에 날개를 달아 바람을 타고 날게 하는 단풍나무, 자작나무, 느릅나무, 소나무, 돛단배 같은 모양의 긴 포를 달아 주는 피나무 등이 있습니다. 소나무는 비가 오거나 습할 날에는 씨앗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기 어려우니 씨앗이 나가지 못하도록 솔방울 조각들이 오므라들게 하는 별도의 장치를 준비하기도 합니다. 바람 타고 얼마나 멀리 가겠어 싶지요? 제가 오대산 노인봉에서 직접 목격했는데요 바위에 놓여 있던 고로쇠나무 열매(단풍나무과 집안의 열매 중에서도 크고 무거운 축에 듭니다)가 마침 불어 온 일진광풍을 타고 까마득히 산 너머 너머 두로봉을 향해 날아가는 걸 봤습니다. 아마 지금도 날아가고 있을 거라 저는 믿고 있습니다.

사진 제공 : 강세기
바람을 잘 이용하는 건 나무들뿐만 아니라 풀들도 그렇지요. 갓털로 둥실둥실 날려 보내는 민들레가 대표적이지요. 풀들은 좀더 다양한 전략을 씁니다.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봉선화나 물봉선, 괭이밥 등은 노래가사처럼 열매가 익으면 껍질이 말라서 젖혀지거나 터지는 힘으로 씨앗을 멀리 2미터 정도까지 날려 보냅니다. 이 친구들의 가느다란 몸집과 작디작은 씨앗 크기를 생각했을 때 2미터면 어마어마한 거리이지요. 도깨비바늘, 도둑놈의 갈고리, 짚신나물, 도꼬마리, 진득찰, 명아주, 질경이 같은 풀들은 열매에 갈고리 같은 가시를 만들거나 열매에 끈적한 물질을 묻혀놔 지나가는 동물이나 사람의 몸과 옷, 신발에 붙어 멀리 멀리 다니지요. 제게 묻어 한라산에서, 지리산에서, 설악산에서, 서울까지 온 아이들도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때로 철새의 깃털에 붙은 아이들은 이역만리 이민을 갈 수도 있겠네요. 제비꽃이나 애기똥풀은 씨앗에 개미가 좋아하는 엘라이오좀이라는 알갱이를 붙여 놓아 개미들이 씨앗을 자기 집으로 가져가게 만듭니다. 개미들은 엘라이오좀만 먹고 씨앗은 집 앞에 버리죠. 이렇게 씨앗은 개미 등을 타고 이동하여 새로운 땅에서 출발을 합니다. 물론 무임승차는 아닙니다. 어미풀이 씨앗에 준비해준 엘라이오좀을 개미에게 교통비로 지급했으니까요.

아마도 어미식물들이 준비한 전략 중에서 가장 사람과 동물들에게 잘 먹혀 들어간 것은 맛나고 눈에 띄는 열매를 준비해 그 안에 씨앗을 넣어 둔 것이 아닐까요? 사람을 포함한 영장류와 새들만이 볼 수 있는 빨간색을 잘 익은 열매의 대표색으로 선택한 것은 식물의 뛰어난 전략입니다. 특히 새들은 빨간색을 멀리서도 잘 보고 이동범위가 넓지요. 그래서 여기 저기 씨앗을 날라주는 새를 공중의 정원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살짝 결은 다르지만 이번 추석에 전국에서 돌아다닐 사과와 배와 감을 생각해봐도 어미식물의 전략은 탁월하다고 생각됩니다. 개중에선 산책이나 등산이나 성묘에 따라 갔다가 먹히고 내던져진 씨앗들이 새로운 삶을 개척하겠지요. 우리나라 딸기, 참외, 포도, 배 등이 전 세계로 수출되는 것을 보십시오. 그리고 레몬, 오렌지, 바나나, 망고, 체리, 아보카도가 전 세계로부터 수입된 것도 그렇고요. 물론 어미식물의 의도와는 달리 사람에게 열매는 먹힘당하고 씨앗은 버려지기 일상이겠지만, 농부의 보살핌을 받아가며 많이 재배되고 새로운 지역과 환경에 널리 퍼져 살기도 하니 성공한 전략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어떤 전략을 선택했던 어미식물은 수만 년 대대로 내려온 자신의 천성에 맞는 방법으로 자식을 멀리 보내려고 노력합니다. 어미의 그늘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어미보다 더 크고 오래 번성하라는 기원을 담아서 말입니다. 그 기원은 작은 씨앗 안에 장차 어린 식물로 자랄 배, 그리고 첫 뿌리를 내려 스스로 영양을 얻기까지 버틸 수 있는 저장물질로 담겨 단단한 껍질에 감싸여 있습니다. 어미나무가 자식에게 해주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멀리 떠날 수 있도록 씨앗에 전략을 짜준 것. 그리고 수만 년 대대로 내려온 고유의 힘을 씨앗 안에 단단히 담아 전달해준 것. 이게 식물이 자식을 대하는 사랑법입니다. 다음은 자식의 몫입니다. 어디서 언제 첫 뿌리를 내리고 첫 떡잎을 올릴 것인지, 첫 여름의 벼락과 돌풍은 어떻게 이겨낼지, 첫 가을의 외로움과 첫 겨울의 혹독함을 어떻게 이겨낼지는 오롯이 씨앗의 몫입니다. 하지만 씨앗은 그 작은 몸 안에 어미식물이 담아준 기원과 수만 년 내려온 천성의 힘으로 자신의 온전한 삶을 시작하기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지금 숲에는 한 그루 푸르른 나무로 우뚝 설 기회를 준비하는 씨앗들과 이를 응원하는 어미나무들의 기원이 가득합니다. 마침 새로운 가을학기가 시작됐고 한가위도 있는 계절, 자녀와 함께 숲을 찾아 거닐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