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이 가까워 오던 어느 날, 한겨레 21에 실린 한 칼럼이 시선을 붙잡았다. 필자나 제목은 잊었으나, ‘사상의 자유’에 대한 내용으로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문학 작품 자체로 보아야지, 사상의 불순함으로 꼬아 보는 시선에 대해 명쾌하게 항의하는 글이었다. ‘옳거니!’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구치소 안에서 태백산맥은 다 읽지도 못하고 2권까지 읽은 상태였다. 아마 그때 누군가 감상을 물었다면, 거침없이 야하고, 묘사가 적나라하다는 충격을 먼저 말했을 거다. 그는 시대를 거침없이 들춰내면서 동시에 읽는 이의 혼을 쏙 빼놓고 있었다. 시간이 흐른 뒤에 역사 3부작 –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 중에서 특히 ‘한강’을 단숨에 완독한 기억이 새록하다. 그는 소설가라는 이름 뒤에 숨은 타고난 ‘전기수’이자 서슬 퍼런 ‘시대의 기록자’가 아닐까 싶다.
생각해 보니 구치소 안의 시간은 세상의 박자를 따라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만의 리듬으로, 따로 또 같이 흐르고 있었다. 교회청년부, 학과학생회, 학회, 대학운동 조직, 언더서클… 개인보다는 공동체와 사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던 이십 대였다. “애태우고 속태우는 노태우를 불태우자”는 구호가 선명했던 군부독재 정권을 뒤안길로 하고, 김영삼을 거쳐 김대중의 민간정권으로 서서히 바뀌는 그 어귀에 나의 학생운동과 청년운동이 있다. 깜빵생활은 어찌 보면 ‘공동체’에 속해서 정신없이 지나가는 중에 우연히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돌아보고 숙고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었겠으나 이십 대의 내겐 미처 그런 성숙함이 없었다. 예닐곱 명이 머물던 좁은 방은 또 하나의 세계였고, 적응하고 관찰하고 두리번거리고 적응하기 바빴다.
익숙해져 버린 일상과 이젠 작별할 때임을 실감한 건, 뜻밖에 나의 민변 변호사 접견에서였다. 단 한 번 방문에서, 그는 머뭇하더니 재판에서 어떻게 말할 건지 나에게 물었다. “그냥 잘못을 인정하시지요.”라고 딱 잘라 말하지는 않았지만 예상치 못한 뉘앙스로 말했다. 주목받는 재판도 아니고 대략 집행유예 정도 받을 것 같으니 그에 박자를 맞추라는 건지 당황스러웠다. 누가 변호사는 내 편이라 했나. 그는 나의 양심과 용기를 편들어 주지 않았다. 오간 대화를 세세히 기억하지는 못해도, 서로를 흔쾌히 여기지 않는 그 텁텁한 공기의 질감은 기억한다.
추석이 막 지난 9월의 한 날, 재판이 열렸다. 판사가 물었다.
“태백산맥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순간, 예상 질문을 받은 듯 반가웠다.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만족하지 못했다. 연이어 물었다.
“피고는… (잘못을) 인정합니까?”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의 질문에 잠시 숨을 삼켰다.
답을 정해놓고 몰아가는 판사, 그가 바라는 즉답. 싫었지만 나가는 출구가 눈앞인데 대놓고 부정할 수도 없었다. 솔직히 그런 구린 생각이 조각조각 기억날 뿐, 무어라 답했는지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나에게 내려진 판결은 집행유예 2년이었다.

사진제공 : 마이티
출소하는 날 학과 동기들이 구치소 앞에서 기다린다고 엄마가 알려주었다. 동기들은 ‘빛불휘’라는 소식지를 구치소로 보냈는데, 아마도 이름 때문에, 교정 시설에서는 불온물로 분류해서 출소하는 날에야 뒤늦게 받아볼 수 있었다. 긴장이 사라지자 그 동안의 피로가 갑자기 몰려왔다. 그저 쉬고만 싶었다. 친구들의 정성과 반가움을 매정하게 뒤로 하고 그냥 집으로, 부모님을 따라갔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어린 장금이 선보였던 유명한 대사가 있다.
“저는 제 입에서 고기를 씹을 때 홍시 맛이 났는데 어찌 홍시라 생각했느냐 하시면…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이온데…”
“왜 그랬냐”고 묻는 데 대하여, “그냥 그렇게 느껴서”라고 답하면 문제가 된다. 국가보안법 제7조 찬양・고무죄의 ‘표현의 자유’는 계속 쟁점이다. 국가의 안위를 흔드는 불온한 생각과 행동은 처벌의 대상이며, 남한에는 지금도 비전향 장기수들이 남아 있다. 그 많은 사상범들이 모두 감옥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어떤 상황을 맞닥뜨렸는지, 또 어떤 생각으로 살아왔을지 못내 궁금하다.
그들 중 한 명이었던 자는, 판사 앞에 섰을 때를 기억한다. 이제껏 한편 부끄럽기도 했고 외면하고 싶기도 한 장면으로서. 다만, 아직도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말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