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장] ③ 소송은 내 운명?

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 활동을 하면서 11건의 소송이 진행되었고, 고소고발로 인해 십여 번의 경찰조사를 받았다.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약속했던 찬성측 인사들은 내가 이장으로 당선되자 사업자를 등에 업고 또다시 이장직무정지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2개월 만에 칼럼 연재 중단할 뻔한 사연

누구에게도 말 못한 고민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선흘2리 이장으로 임명되면서 주위 분들로부터 과분한 축하와 격려를 받았지만, 정작 3개월 내내 마음이 심란했다. 주변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 일단 결론이 날 때까지는 언급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괜시리 언급했다가 엉뚱한 소문이라도 나면 또다시 마을이 다시 혼란스러울 것 같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말을 듣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며칠 전 고민하던 일이 결론이 났고, 이곳을 통해 털어놓는다.

상황은 이렇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승복하기로 약속했던 상대측 후보(일명 제주동물테마파크 추진위원장)는 이장선거에서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하자 돌연 태도를 바꿨다. 선거에 문제가 있었다는 민원을 제주시청에 제기했다. 동시에 이분들의 입을 통해 이장선거에 부정이 있었다는 루머가 인근 동네까지 퍼져나갔다.

하지만 법률자문을 받은 조천읍장은 선흘2리 이장선거에 문제가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지난 12월 31일 난 이장으로 임명되었다. 이쯤에서 마무리되나 싶었더니 상대 후보가 소송을 제기한다는 풍문이 내 귀에까지 들려왔다. ‘설마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서까지 썼던 분이 거기까지 하겠어?’라고 했던 기대는 역시나 무너졌다. 왜 슬픈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는 걸까?

지난 1월 상대 후보 캠프에서 선거운동을 했던 이모씨와, 참관인이었던 고모씨는 이장선거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나를 상대로 ‘이장 직무집행가처분신청 및 대행자 선임가처분’을 제주지방법원에 접수했다. 특히 고모씨는 전임 이장이다. 마을 원로라 자칭하는 분인데 선거 직후 직접 나에게 축하한다고 덕담을 건넸던 인물이다. 이번 가처분 소송은 표면상으로는 두 사람이 총대를 멨지만, 누가 봐도 이 두 사람이 실제 소송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게 뻔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이 소송을 대리하는 변호인도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과 관련된 전 이장의 손해배상소송을 수임한 사람이다.

동물테마파크 반대 운동을 하며 제주지방검찰청으로부터 받은 문서들. ⓒ이상영
동물테마파크 반대 운동을 하며 제주지방검찰청으로부터 받은 문서들. ⓒ이상영

우리 마을에 오는 우체부 아저씨는 젊다. 검은 모자와 마스크를 쓴 얼굴은 무표정하긴 해도 자세히 보면 귀엽고 동글한 앳된 모습이다. 그런 우체부 아저씨가 “이상영 씨?”라고 내 이름을 부르면, 마치 수업시간에 딴생각하다 선생님께 걸린 학생처럼 긴장된다. 지난 2년간 나에게 건네진 등기는 모두 법원에서 날아온 두툼한 소장들이다. 이장 직무를 막 시작한 지난 1월 말, 사무장이 지켜보는 리사무소에서 우체부가 건넨 소장을 받았다. 이제 적응될 법도 하지만, 법원에서 온 소장을 받으면 심장 박동수가 빨라진다.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묻지도 않는 이런 말 저런 말을 사무장에게 주절거렸다. 긴장하면 나오는 버릇이다.

소송에 대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비를 들여 그동안 반대대책위를 도와주셨던 변호사를 개인적으로 선임했다. 지난 3월 10일에 가처분 신청에 대한 재판이 제주지방법원에서 있었고, 3월 19일에는 양측이 추가 자료를 법원에 제출했다. 그리고 3월 22일 법원은 ‘이 사건 신청에 대해 이유 없어 기각한다’라는 결정을 내렸다. 여기서 이장 직무집행정지가처분 신청이 인용되었더라면 이장일기는 2회 만에 끝날 뻔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이장일기를 이곳에 연재할 수 있을 것 같다.

P.S 2021년 3월 10일 재판에서 상대측 변호인은 이번 가처분 소송과 별도로 본안 소송을 준비해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3월 3일 개발사업심의회에서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 변경승인이 부결되었다. 하지만 사업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행정소송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이번 나의 임기는 소송으로 시작해 소송으로 마무리될 듯하다.

이 글은 『제주투데이』 2021년 3월 31일 자에 실렸던 내용입니다.

이상영

20년 가까이 중고등학교에서 지리(사회)를 가르치다, 2018년 한라산 중산간 선흘2리로 이주한 초보 제주인. 2019년 초 학부모들과 함께 참여한 마을총회에서 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원으로 선출된 후, 2021년 어쩌다 이장으로 당선되어 활동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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