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 다시 돌봄을 묻다

『돌봄의 공간들』 북토크를 통해 도시계획과 먹거리, 커먼즈, 자기돌봄의 논의는 돌봄이 삶의 조건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의 문제와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었고, 특히 기후위기 시대에는 폭염·먹거리·주거·재난 대응이 서로 연결되면서 돌봄이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돌봄은 선의나 희생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예방적이고 지역적이며 생태적이고 공공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하며, 공동체적 생활권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결국 돌봄을 다시 생각한다는 것은 복지의 범위를 넓히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얼마 전 생태적지혜연구소의 북토크에 참석한 뒤, 『돌봄의 공간들』이라는 책 제목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돌봄이라는 말을 떠올릴 때 나는 그동안 대체로 노년층이나 사회적 취약계층, 혹은 복지의 제도적 영역을 먼저 생각해왔다. 즉 누군가를 보살피는 일,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일, 제도가 책임져야 할 최소한의 안전망. 대체로 그런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들은 돌봄을 전혀 다른 자리로 옮겨놓았다. 돌봄은 단지 누군가에게 제공되는 서비스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새롭게 만들고, 오래도록 굳어져 온 질서를 흔들며, 다른 공동체의 가능성을 여는 실천이라는 것이었다.

도시계획을 돌봄의 행위로 바라보는 시선

듣고 보니, 돌봄의 영역은 내 생각보다 훨씬 넓고, 훨씬 근본적인 개념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우리는 흔히 돌봄을 사적인 영역에 가두거나, 공공이 제공하는 복지의 한 갈래쯤으로 보고 만다. 그러나 돌봄이야말로 한 사회가 무엇을 우선에 두는지, 누구를 안으로 받아들이고 누구를 바깥으로 밀어내는지, 어떤 삶을 지키고 어떤 고통을 방치하는지를 드러내는 가장 예민한 기준일 수 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도시계획을 돌봄의 행위로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도시를 설계하고 공간을 바꾸는 일은 얼핏 차갑고 기술적인 행정의 언어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너무도 직접적으로 삶에 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길 하나를 내는 일, 골목의 구조를 바꾸는 일, 아이가 걸어가는 통학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은 모두 누군가의 몸과 시간, 안전과 존엄에 영향을 미친다. 도시공간은 결코 중립적인 배경이 아니다.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우선순위와 침묵당한 목소리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그러므로 공간을 바꾸는 일은 결국 “누구의 삶을 먼저 헤아릴 것인가”의 문제이며, 그런 점에서 도시계획은 돌봄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제도 바꾸는 일로 충분치 않은 돌봄

자기돌봄은 단순한 휴식을 말하는 것일까? 사진 출처: RosZie

또 다른 논의에서는 커먼즈, 곧 ‘공동의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가 함께 만들고 함께 의존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것들은 모두의 것이어야 함에도, 현실에서는 자주 사적으로 점유되고 수탈된다는 지적이었다. ‘플랫폼 자본주의’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사람들의 관계, 정보, 감정, 노동, 시간을 모두 모아 이윤의 형태로 바꿔놓는다. 더구나 아프게 다가온 것은 자본이 언제나 우리 바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우리가 함께 만든 것을 다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마음, 공통의 것을 사유화하고 싶어 하는 욕망, 그 역시 자본의 논리라는 것이다. 이는 제도 비판을 넘어 삶의 습관을 돌아보게 하는 말이었다.

하여, 돌봄은 제도를 바꾸는 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제도 바깥에서, 혹은 제도 이전에 나와 내 자신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부터 다시 물어야 한다. 자기돌봄이라는 말이 그저 피곤한 몸을 쉬게 하는 일만을 뜻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가 경쟁과 소유, 성과와 효율의 논리로만 나를 다루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일일 것이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자기 배려’를 강조했다. 이는 진리에 접근하고 올바르게 살기 위해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수련하며 변화시키는 실천이지만 흔히 말하는 ‘힐링’과는 다르다. 이는 오히려 자기를 작업하는 일, 삶을 하나의 윤리적 형식으로 빚어가는 일에 가깝다. 이는 돌봄의 개념과도 깊이 연결된다. 왜냐하면 돌봄도 단순히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행위가 아니라,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며, 서로가 살 수 있는 조건을 함께 조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특히 기후위기와 불평등 시대에 더욱 의미를 갖는다. 고립, 돌봄의 외주화가 심해지는 시대에 우리는 서로를 돌볼 여유와 감각 자체를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자기 돌봄이라는 개념은 “지친 나를 잘 달래자”라는 뜻을 넘어, 경쟁과 소진의 질서 속에서 나를 다른 방식으로 형성하는 실천으로 읽을 수 있다.

돌봄체계, 재난 대비 개념으로 점차 확장

먹거리 돌봄 역시 같이 설명될 수 있다. 밥은 너무 일상적이기에 그 정치성과 사회성을 놓치기 쉽다. 그러나 누가 먹는가, 누가 굶는가, 누가 스스로 밥을 차릴 수 없으며, 누가 타인의 손길에 기대어 식사를 이어가는가는 철저히 사회적인 문제다. 더 이상 돌봄은 거창한 시설이나 제도 속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게다가 기후위기라는 현실 앞에서 이는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앞으로의 돌봄은 달라져야 한다. 폭염은 더 이상 한철 불편이 아니라 생명을 가르는 위험이 되고, 먹거리와 주거, 건강은 서로 다른 정책 분야가 아니라 하나의 생존 조건으로 얽히게 되며, 재난 대응과 일상의 복지는 분리되기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평소의 돌봄 체계가 곧 재난을 버티는 기반이 되어야 하고, 재난 대응체계 역시 일상의 관계망 위에서만 제대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돌봄은 사후적인 처치가 아니라, 위기를 견디게 하는 사회의 바탕이자 버팀목으로 작동해야 한다.

느슨하고도 연결된 돌봄의 공간

기후위기 시대의 돌봄은 더 이상 누군가의 선의나 희생만으로 유지될 수 없다. 그것은 예방적이고, 지역적이어야 하며, 생태적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돌봄을 수행하는 노동이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한다. 돌봄을 값싼 헌신으로 여기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 결국 돌봄은 복지의 확장을 넘어 도시계획, 먹거리 체계, 에너지 정책, 주거 구조, 노동의 조건을 다시 설계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돌봄이 점점 더 정치적인 과제가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돌봄은 이제 사회적 바탕으로 작동해야 한다.
사진 출처: CreativeCanvasShop

이제 공동체의 공간 역시 부각되어야 한다. 개별 가구는 더 이상 모든 것을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오히려 주거와 공용부엌, 냉난방 거점, 태양광과 배터리, 빗물과 중수 재이용 시스템, 공동 텃밭, 돌봄 공간이 느슨하지만 유기적으로 결합된 형태가 더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지 친환경 기술을 덧붙이는 일이 아니다. 삶을 유지하는 기반을 얼마나 공동의 차원에서 다시 조직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물론 이런 구상이 낭만적으로만 흘러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이 공동체적 삶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며. 공동 운영에서의 갈등과 관리 부담, 초기 비용과 제도적 장벽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잘못하면 그런 공간은 쉽게 또 다른 배제의 형태, 다시 말해 친환경과 공동체라는 이름을 가진 중산층 전용 구역으로 변질될 수 있다. 그래서 최근 논의되는 CLT(커뮤니티 랜드 트러스트)나 협동조합 주택, 지역 주도 적응 같은 모델은 중요하다. 주거를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라 공동체적 삶의 기반으로 다시 보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이는 지나치게 밀착된 공동체가 아니라, 필요할 때 서로를 지탱할 수 있는 정도의 관계망. 각자의 삶을 존중하면서도 고립되지 않는 거리. 이런 형태야 말로 지속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결국 돌봄이란, 복지의 범위를 넓히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도시를 다시 보는 일이고, 먹거리를 다시 보는 일이며, 노동과 에너지, 주거와 공동체를 다시 구상하는 일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돌봄은 선택 가능한 미덕이 아니라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조건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돌봄은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함께 살아낼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다.

동글이

철학과 환경커뮤니케이션, 생사학에 관심이 많다. 실제 철학을 전공했으며 이후 대학원에서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공부했다. 환경적인 문제를 취재하고 기사화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외부 환경 생태와 우리 몸의 관계, 행복권, 자아와 객체 간의 관계 등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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