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장] ⑤ 선흘에서 팔색조를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

열대 맹수 사파리를 만들려는 사업자의 계획은 일단 무산되었다. 하지만 사업자는 여전히 이곳을 15년 전 부실한 환경영향평가를 기반으로 개발하려고 하고 있다. 우리 마을 숲에서 팔색조, 긴꼬리딱새 등 멸종위기 생물들을 언제까지 만날 수 있을까?

요즘 마을 어르신들의 핫이슈는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할 것인가? 말 것인가?’이다. 지난 4월에 이미 마을 사무장님이 75세 이상 어른들께 일일이 전화를 드려 동의서를 읍사무소에 전달했지만, 선흘2리는 접종 순서가 제일 마지막에 배정된 탓에 6월 1일에야 맞게 되었다.

연로하신 어르신들이라 제주도에서는 관광버스를 대절했다. 75세 미만 어르신들의 경우에는 6월 3일까지 직접 신청을 해서, 개인별로 인근 병원에서 백신 접종을 하게 된다. 부작용에 대해 여러 말들이 많아서인지 접종을 포기(거부)하시는 분들도 있고, 포기했다가 다시 신청하시는 분도 있다. 아무튼, 혼란스러운 요즘이다.

한편 요즘 내 가장 큰 관심사는 곶자왈과 여름 철새들이다. 5월 초부터 마을에서 뻐꾸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여름 철새들이 곶자왈에 왔다는 신호다. 얼마 전 세계자연유산센터 해설사들로부터 비자림로에 팔색조가 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다음날 바로 곶자왈로 향했다. 깊고 깊은 제주 곶자왈은 멸종위기 여름 철새들의 피난처이자 번식처이다.

마을 곶자왈에서 매년 발견되는 멸종위기종 팔색조 ⓒ이상영
마을 곶자왈에서 매년 발견되는 멸종위기종 팔색조 ⓒ이상영

색이 화려해 유독 눈에 띄기 쉬운 팔색조, 긴꼬리딱새 같은 친구들일수록 어두운 골짜기에서 관찰된다. 지난해 팔색조를 처음 만났던 폭포 위 바위에 앉아 숨죽이며 바나나를 까먹고 있을 때였다. 특유의 힘찬 울음소리가 들려 황급히 카메라를 주워 들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고서야 나뭇가지에서 울고 있는 팔색조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너무 흥분된 나머지 손이 수전증 환자처럼 떨렸지만, 다행히 사진 몇 개는 건졌다. 아싸라비야!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나면 우리는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백신은 일시적으로 코로나 감염을 예방하고 증상이 주는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해주는 역할을 분명히 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연구자가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코로나19 이외에도 새로운 바이러스가 또다시 인간사회를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마스크를 쓰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마스크가 없었던 시절의 기억이 점차 사라지고 지금의 코로나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학교가 멈춰도 더는 놀랍지 않고 마스크가 없이 거리를 활보할 수 있다는 기대는 꿈처럼 아득하다.

매년 마을 곶자왈을 찾아오는 멸종위기종 긴꼬리딱새 ⓒ이상영
매년 마을 곶자왈을 찾아오는 멸종위기종 긴꼬리딱새 ⓒ이상영

코로나19의 원인으로 야생동물들의 서식지 파괴가 지목됐다. 많은 이들은 더 이상의 개발이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 않을뿐더러 이제는 이러한 삶이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모두 살 수 없다고, 팔색조가 살 수 없는 지구에는 인간도 살 수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뼈아픈 실패를 금세 좀 더 쉬운 해결책과 헛된 희망으로 메우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길고 어려운 해결책을 외면하고 증상에 대한 대증요법만으로 우리의 일상은 회복할 수 있을까? 먹고, 마시고, 함께 웃는 데 주저함이 없었던 바로 그 시절 말이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진짜 백신은 무엇일까? 드러난 증상을 예방하는 의학적 백신도 중요하지만, 바이러스 창궐의 근본적인 원인인 난개발과 야생생물 서식처 파괴를 막을 수 있는 사회적 백신을 만드는 것이 절실하다. 아름다운 곶자왈과 숲, 강과 바다가 더 파괴되지 않도록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고, 더 나아가 이미 파괴된 자연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어렵지만 꼭 해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말뿐인 이상은 공허하다. 정작 구체적인 대책을 정책적으로 제시하고 애써 보는 현직 정치인과 행정가들을 만날 수가 없는 건 기분 탓인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 3월 열대 맹수 동물원을 조성하는 변경계획안은 부결되었지만, 사업자는 여전히 15년 전 승인받은 계획으로 개발사업을 추진하려 한다. 공사장 인부들이 주로 다녀가는 마을식당발 뉴스에 따르면 기존에 승인된 조랑말 테마파크사업이라도 물고 늘어지며 곧 공사가 시작될 거란다.

곶자왈에 접한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장 ⓒ이상영
곶자왈에 접한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장 ⓒ이상영

그래서 나는 팔색조를 만나러 가는 길에는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지 안에 포크레인이 공사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유심히 살펴보곤 한다. 어쩌다 고사리를 꺾으러 온 분들이 세워놓은 자동차 행렬만 봐도 마음이 내려앉는다. 이장 임기 동안 저 개발사업을 몇 년간 유예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주도의 정책대로라면 곶자왈이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생태계가 다른 지역에 비해 잘 보존된 제주는 어쩌면 대한민국의 면역체계이자 백신이다. 조금의 인내심만 장착한다면 제주 곶자왈에서는 여전히 여름철마다 천연기념물 204호, IUCN 적색목록 취약종(VU),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이며 세계적으로 1만 마리 정도만 남아있는 팔색조를 만날 수 있다. 평생 한 번 보기 힘들다는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 IUCN 적색목록 준위협종(NT)인 긴꼬리딱새 소리도 시끄러울 만큼 많이 들려온다.

긴꼬리딱새가 오후의 뜨거운 햇살을 피해 곶자왈 웅덩이에서 몸을 비트는 고난이도 기술로 다이빙하는 모습을 내년에도 또 볼 수 있을까? 그 모습을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볼 수 있을까? 팔색조가 사라진 숲에 인간은 과연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을까?

이 글은 『제주투데이』 2021년 5월 28일 자에 실렸던 내용입니다.

이상영

20년 가까이 중고등학교에서 지리(사회)를 가르치다, 2018년 한라산 중산간 선흘2리로 이주한 초보 제주인. 2019년 초 학부모들과 함께 참여한 마을총회에서 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원으로 선출된 후, 2021년 어쩌다 이장으로 당선되어 활동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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