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장] ⑨ 우리 마을 할맨져스

우리 마을 할매들의 캐릭터는 서로 너무 다르다. 그만큼 잔소리도 많고 요구하시는 것도 다양하지만,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멋진 분들이다. 내가 할매들을 편안해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위아래를 찾아 상대를 누르거나 엄격한 예의범절을 강요하지 않으시기 때문인 듯하다.

“이장님, 안 바쁘요?”

“아… 네… 괜찮습니다”

“그라마 내 하나 물어 보입시다. 이거는 어떻게 하면 좋겠으요?”

A 할매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전화를 거신다. 전화를 받기 전엔 침을 꼴깍 삼키며 각오를 좀 해야 한다. 할매와의 통화는 짧으면 30분, 길면 1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걸걸하고 화통한 부산 할매인데다 일면 꼼꼼하기까지 하셔서, 내가 알 수 없는 노인회관의 내밀한 이야기를 나에게 전해주신다. 어느 댁 어르신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셨다고 알려주시기도 하고, 도로 옆 제초작업을 해놓고 풀을 널브러뜨리고 안 치우고 갔다고 화를 내기도 한다. 반대로 할매는 이장 이야기를 다른 어르신들에게 전해주는 양방향 스피커이기도 하다. 오랜 통화로 또똣해지는 전화기를 붙잡고 있노라면 가끔 ‘시어머니의 잔소리를 견디는 며늘아기들의 마음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도 그걸 알고 호탕하게 웃으시는 분이다.

할매는 어린 시절부터 험한 시장 바닥에서 장사하면서 단련된 배포가 남다르다. 사연을 듣다 보면 1990년대 ‘덕이’ 같은 역경 극복형 TV 아침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으로도 손색이 없는 것 같다. 2019년 12월, 도청에서 제주동물테마파크 환경영향평가심의위가 열리는 날에 공무원 허리춤을 붙잡고 “동물테마파크가 들어오면 좋은 게 뭐가 있는지 3가지만 대답해 봐라”라고 호통을 치셨다. 그날 밤 9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도 회의장 복도 바닥에 주저앉으시며, 대답을 들을 때까지 여기서 자고 가자고 하시는 분이다. 조천읍장이 말도 안 되는 핑계로 전 이장의 해임을 미루자, 아예 읍장실 소파에서 신문지를 덮고 하루 주무셨다. 내가 이장으로 당선되자 혼자 일하면 힘들 거라며 70이 넘은 연세에도 마을 개발위원을 자청하셔서 활동하고 계신다.

A 할매와 단짝인 B 할매는 나와 고향이 지척이다. ‘그래여’ ‘안그래여’로 끝나는 경상북도 북쪽 사투리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옛날 우리 할매와 대화하는 것 같아 때론 아련하다. 두 분이 가까이 사는 절친이지만, 궁합 잘 맞는 부부처럼 성격은 완전 반대다. B 할매는 매사 조용조용 하시고 드러나지 않게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시는 스타일이다. 지난해 도청 앞에서 1인 시위하실 때는, 허리 통증 주사까지 맞으시고 피케팅을 하셨을 정도다.

또 할매는 정이 많으셔서 이것저것을 많이 챙겨주신다. 요즘 얼굴이 안되어 보인다며 직접 수확한 오가피, 더덕 등을 다려 건강즙을 내려주기도 하시고, 갈무리한 감자나 무 등을 상자째 조용히 현관 앞에 두고 가시기도 한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고 작은 선물이라도 할라치면 한사코 손사래를 치시고, 늘 더 큰 것으로 되돌려 주시니 늘 죄송스럽다. 제발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는 작은 선물을 편안하게 잘 받아주셨으면 좋겠다.

언제나 ‘편’이 되어주시는 우리동네 할맨져스 ⓒ이상영
언제나 ‘편’이 되어주시는 우리동네 할맨져스 ⓒ이상영

C 할매는 소녀 감성을 가진 멋쟁이시다. 남편의 건강 때문에 서울에서 이곳에 오신 지 20년이 넘었단다. 늦은 밤 회의에도 늘 곱게 화장을 하시고, 챙 넓은 모자를 예쁘게 쓰시고 참여하신다. 전화 목소리만 들으면 드라마에 “평창동입니다”라고 전화 받으시는 딱 그 사모님이시다. 게다가 70을 훌쩍 넘긴 연세에 자가 드라이버라니!! 가끔 검은색 구형 자가용에 친구들을 태우고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는 할머니를 상상만 해도 멋지지 아니한가! 물론 아직 스마트폰 사용법은 서투르셔서 카톡방을 자기도 모르게 자주 탈출하시기도 하지만.

암튼 이렇게 표현하니 새침데기 서울 할머니 같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진 않다. 지난해 마을갈등으로 혼란했던 시기에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반장을 자원해 맡아 주셨고, 요즘도 마을 감사로 활동하시는 남편분과 함께 매일 클린하우스 주변에 쓰레기를 줍고 청소를 하신다. 마을 청소에 진심인 편이신지라 이장에게도 가끔 잔소리하시지만, 만날 때마다 “내가 매일 우리 이장님을 위해 기도한다니까~, 그러니까 힘내셔”라며 다정하게 어깨를 토닥여 주신다.

마지막으로 D 할매는 엘리트 교수 스타일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당시에 여성으로서 유명 사립대를 졸업하셨을 정도니 아주 똑 부러지신다. 그래서인지 말씀하실 때 사용하는 어휘들이 예사스럽지 않다.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이 뛰어나시고, 풍부한 경험과 논리로 무장한 말솜씨를 당해낼 분이 별로 없다. 여전히 배움의 욕구가 강해 버스를 타고 멀리까지 여러 수업을 들으러 다니신다고 한다.

할매들을 만나면 ‘이장은 이래야 해’라며 다그치는 말씀보다는, 함께 화내고 욕해 주신다. 그러다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누며 함께 웃을 수 있어 좋다. 사진출처 : Diego PH 
https://unsplash.com/photos/SZYreZsJ-fE
할매들을 만나면 ‘이장은 이래야 해’라며 다그치는 말씀보다는, 함께 화내고 욕해 주신다. 그러다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누며 함께 웃을 수 있어 좋다.
사진출처 : Diego PH

그렇다고 머리와 말씀만 앞서시는 분이 아니다. 불의한 것을 보면 절대 참지 않으신다. 몇 년 동안 반상회 한 번 열지 않는 반장에게, 반상회 개최를 요구했다가 봉변을 당했던 경험을 지금도 이야기하신다. 동물원 반대 서명을 받을 일이 생기면 직접 발 벗고 나서 이웃집 초인종을 누르시고,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도 어려운 기자회견문을 척척 읽어내신다. 이장으로 당선되었을 때는 고소한 메밀 부침개를 부쳐 직접 리사무소로 가져와 축하해 주셨다. 요즘은 산책길에 불법으로 몰래 버린 산업 쓰레기를 발견해 제보하거나, 태풍으로 가로등이 나간 곳이 없나 꼼꼼히 살피는 등 반장 아닌 반장 역할을 제라지게 하고 계신다.

우리 마을 할매들의 캐릭터는 서로 너무 다르다. 그만큼 잔소리도 많고 요구하시는 것도 다양하지만,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멋진 분들이다. 내가 할매들을 편안해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위아래를 찾아 상대를 누르려거나 엄격한 예의범절을 강요하지 않으시기 때문인 듯하다. 할매들을 만나면 ‘이장은 이래야 해’라며 다그치는 말씀보다는, 함께 화내고 욕해 주신다. 그러다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누며 함께 웃을 수 있어 좋다. 코로나 시국이 끝나면 우리 마을을 지키는 영웅들 ‘할맨져스(할매+어벤져스)’랑 오래된 자동차를 타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야겠다.

이 글은 『제주투데이』 2021년 10월 6일 자에 실렸던 내용입니다.

이상영

20년 가까이 중고등학교에서 지리(사회)를 가르치다, 2018년 한라산 중산간 선흘2리로 이주한 초보 제주인. 2019년 초 학부모들과 함께 참여한 마을총회에서 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원으로 선출된 후, 2021년 어쩌다 이장으로 당선되어 활동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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