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통신] ㉒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순간들

겨울에는 마음을 한조각한조각 모읍니다. 봄이 되면서 조금씩 펼쳐갑니다.

손이 꽁꽁 얼 정도로 추운 날은 손에 꼽을 만큼 적고 눈은커녕 비도 제대로 온 적이 없던 겨울이 지나갔습니다. 코로나19도 주위로 점점 다가와 다 걸려야 끝나려나 보다 하는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마을에는 산수유꽃과 매화가 피고 봄이 왔습니다. 트랙터가 논과 밭을 갈며 농사준비로 바빠지고 방학동안 부쩍 큰 아이들은 한 학년 올라갔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정성스럽게

동제 전날 건구지 걸기(2022.2.14.) by 서우규
동제 전날 건구지 걸기(2022.2.14.) by 서우규

올해 정월 대보름 동제는 2월 15일(화)이었습니다. 동제를 의논하는 마을회의에서는 코로나 19 확산세가 염려되니 동제를 지내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지만 이런 때일수록 간소하지만 정성스럽게 제사를 모시자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대보름 전날에는 마을어른 몇 분이 당산나무 주위를 청소하고 건구지를 걸고(새끼줄로 금(禁)줄을 치고) 흰 종이를 끼워 준비를 하셨습니다. 동제에 쓰는 새끼줄은 역(逆)새끼줄이라 해서 왼 새끼꼬기를 합니다. 왼 새끼꼬기를 하는 사람이 없어 몸이 편찮은 마을어른이 해주셨습니다.

아이들은 방학이지만 방과후학교 수업을 하고 있어서 책가방을 메고 당산나무에 왔습니다.

“얘들이 우리 마을 보물이지. 동제 지낸다고 와서 절도 하고 착하다. 곧 새 학년도 되니 용돈 줄게”

동제 지내는 모습(2022.2.15.) by 김진희
동제 지내는 모습(2022.2.15.) by 김진희

용돈에다가 제상에 올라간 새싹삼도 받아서 마스크로 가린 입속으로 쏙 한뿌리씩 먹으며 음복했습니다. 아이들은 얼굴을 찡그리며 이게 무슨 맛이야 했지만 어른들은 먹어두면 머리 좋아진다고 하셨습니다.

마침 8시에 모여 30분만에 제를 모셨지만 마을사람들의 건강과 농사가 잘 되길 기원하는 마음은 가득합니다. 비가 워낙 안 오니 소지를 할 때는 시멘트 바닥에 앉아 바닥쪽을 향해 바람에 날려가지 않게 태웁니다. 음식 나누는 것도 삼가고 자리를 정리합니다.

작은 손으로 마음을 담아

두동초 아이들과 솟대만들기를 했습니다. 오랫동안 솟대작업을 해오신 산풍성신 작가님과 함께하는 ‘4.16 기억 304마리 솟대만들기’입니다. 2014.4.16. 세월호를 기억하며 많은 사람의 염(念)을 담아 하늘과 땅 사이 안테나를 세우는 작업입니다.

산풍성신 작가님은 테이블위에 도톰한 천을 깔고 쪽동백나뭇가지와 칼, 전지가위, 드릴을 놓아둡니다. 칼을 쓰기 때문에 주의할 점을 단단히 일러줍니다.

산풍성신 작가님과 솟대 만드는 아이들.
(2022.2.23.) by 노성훈
산풍성신 작가님과 솟대 만드는 아이들.
(2022.2.23.) by 노성훈

“칼날은 길게 빼지 말고 한 칸만 나오게 해서 앞으로 밀어 나무를 깎으세요. 팔에 힘을 줘서 쭉 뻗으면 옆에 친구가 다칠 수 있으니 조심합니다. 오늘 만드는 건 솟대예요. 옛날에 동네 입구에 길다란 나무 위에 올려두고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라고 했어요. 솟새라고도 하는데 새 같기도 하고 오리 같기도 해요. 몸통으로 할 나뭇가지를 골라 만들고 싶은 크기로 자르고 꼬리를 뾰족하게 다듬습니다. 그 다음에 몸통과 어울리는 머리로 할 나뭇가지를 고릅니다. 부리를 다듬고 선생님이 몸통에 드릴로 구멍을 내주면 머리를 끼우고 완성이에요. 새가 어디를 볼까요? 위를 봐도 되고 밑을 봐도 되고 오른쪽, 왼쪽 아무 데나 보고 싶은 데를 보면 돼요.”

작은 손에 칼을 쥐고 나무를 다듬는 아이들은 말이 없습니다. 작가님은 아이들이 열심히 한다고 칭찬해주셨습니다. 앞으로 다른 곳에서도 여러 사람이 솟대를 만들고 304마리의 솟대를 전시한다고 했습니다. 아이들과 전시회에 가면 우리가 만든 솟대를 찾을 수 있을까요? 작가님은 솟대작품을 만드는 의미를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마음이 담겨 있으니 알게 모르게 알 것 같습니다.

즐거운 겨울 추억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새해 첫날 아이들에게 썰매를 만들어주신 이전리 애지골 농막 아저씨가 설을 앞두고 갑작스런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아이들은 튼튼한 썰매로 논아이스링크장을 지치며 덕분에 신나게 놀았는데 너무 안타깝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진희

만화리 비조마을에 살며 만가지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마을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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