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으로 시작해 칼국수로 끝나다 – 연극 《기후비상사태: 리허설》을 보고

연극 《기후비상사태: 리허설》에 대한 후기(後記)이면서, 동시에 연극을 보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써내려간 글이다. 연극에 대한 평이라기보다, 현실에 대한 실망과 반성을 담았다.

연극에는, 연극과 리허설과 현실이 뒤섞여 있었다.

연극에 등장하는 한 인물은 지금 이 무대에 서기까지 그날 아침부터 실제로 있었던 일을 줄줄이 말했다.

《기후비상사태: 리허설》 포스터. 사진제공 : 이나미
《기후비상사태: 리허설》 포스터. 사진제공 : 이나미

극 중 인물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봤다. 연출가가 보낸 톡을 보게 되는데 그 톡은 본 연극의 호평기사였다. 그 연출가는 평소 관객의 반응에 신경 쓰지 말자는 주의였는데(이 부분에서 관객들 빵 터짐), 연극에 대한 좋은 평이 실린 기사를 보고 흥분해서 톡을 보낸 것이다.

이 극처럼 나도 연극 《기후비상사태: 리허설》을 보게 되기까지 있었던 일부터 쭉 글을 써 내려 가보려 한다.

평소 어쭙잖게 생태 관련 글을 쓴다고 설쳐대는 나를 위한 배려였을까? 어느 날 남편이 기후위기를 다룬 연극이 있으니 보자고 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6월 5일까지 공연을 한다. 내가 쓰고 있는 원고들이 얼추 끝나게 되는 6월 4일에 보기로 했다. 연극이 다 그러하듯 티켓값이 절대 적지 않다. 자발적이 아닌 타의에 의한 가난 그리고 자의 반 타의 반, 저소비를 지향하기에 가격에서부터 망설여졌다. 연극을 보고 나서 돈이 안 아까웠던 경험은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정도였기 때문이다. .

아~ 맞다. 이 연극을 보고 감상문을 쓴 후 《생태적지혜》에 투고하자. 평소 동선이나 효율성의 극대화를 매우 중시하는 나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정작 연극을 보고 나서, “계획 실패다. 쓸 말이 없다”라고 느꼈다. 별 감흥이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형식으로 해보려는 노력은 보였지만 재미도 의미도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단, 메시지는 조금 전달된 느낌이다. 딱 그 정도!

“이 작품의 정보를 종합하자면 ‘기후위기가 와닿지 않는 연출[연출가]이 명동에 작품을 올리고 싶은 욕심에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이렇게 저렇게 탄소발자국을 남겼다’는 것이다. 그러자 본질적인 의문이 들었다. 이럴 거면 공연을 안 올리는 게 맞는 선택 아닌가? 탄소배출도 줄이고, 연출도 관심없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을 텐데. 대체 뭘 위해 이 공연은 무대에 올랐나?”

“국립극단 연극 《기후비상사태: 리허설》 리뷰: 와닿지 않음이 와닿지 않다” 작성자 아스랩
왜, 기후위기도 공감하면서 또 탁월하게 그것을 연출할 수 있는 무대는 없는 것일까. 
사진출처 : struppi0601
왜, 기후위기도 공감하면서 또 탁월하게 그것을 연출할 수 있는 무대는 없는 것일까.
사진출처 : struppi0601

위의 리뷰가 딱 내가 받은 느낌 그대로다.

그런데 오늘 아침 세수를 하면서(난 세수를 할 때 좋은 생각이 많이 난다), 극 중 인물이 당일 아침에 실제로 일어난 일부터 말한 그 대사가 생각났고, 그런 식으로 쓰면 나도 뭔가 할 말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 한번 써보자.

난 연극을 보기 위해 을지로입구역 5번 출구를 나와 ‘네이버 지도’가 친절히 가르쳐 주는 대로 명동예술극장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만나는 약간 좁은 길에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배도 피우고 무언가 먹기도 했다. 거리두기 해제가 되어서인지 명동에 사람들이 많았고 마치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냐는 식으로 명동은 과거와 똑같은 모습의 명동이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앞으로 또 똑같이 생활하다가 또 바이러스를 맞이하고 그러면 또 마스크 쓰고 백신 맞고 또 거리두기 하고,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이번 팬데믹 사태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것 같았다. 우울했다.

명동예술극장 앞에는 청년들이 몰려 있었다. 예매했는데 줄 서서 표를 받아야 하는 건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으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표를 이미 받은 이들이 시간이 남아 밖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청년이 분명한 듯했다. 관객 중 청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런데 속으로 생각했다.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이 청년들은 그래도 연극을 볼 수 있을 만큼 부유한 편이니 축복받은 젊은이들이라고.

젊은 관객들은 잔뜩 준비하고 있었다. 환호하고 감격하고 응원할 준비를! 초반부 작은 ‘웃김’ 포인트에서도 젊은 관객들은 성의껏 웃음소리를 내어 반응을 보이고자 했다. 나이 먹을 만큼 먹어서 순수하고 착하게 반응할 에너지가 별로 없는 나는 시니컬하게 입을 약간 찌그러뜨리고 보고 있었다. 어쨌든 시간이 지날수록 묘하게 연극은 재미없는데 견딜 만은 했고 또 가끔 볼만한 구석도 있었다. 시간은 빨리 갔으니 그것은 좀 신기한 노릇이었다. 아마도 이 모든 연극 분위기가 기후위기를 대하는 인류의 느낌 그대로가 아닐까.

그러니까 확실한 것은 사람들은 정말 공감하고 싶고 절망하고 싶고 외치고 싶은 거다. 그 장을 연극무대가 만들어줬으면 좋았을 텐데. 왜, 기후위기도 공감하면서 또 탁월하게 그것을 연출할 수 있는 무대는 없는 것인지. 나는 그 젊은 관객들과 함께 기다리겠다. 기후비상사태를 다루는, 리허설이 아닌 진짜 무대를!

연극을 보고 나서 저녁을 먹으러 걸어가는데, 두 청년이 지나가면서 경상도 말투로 나누는 대화가 내 귀에 들어왔다. “내가 왜 서울 왔나 몰라. 사람들 보러? 에이! 맛있는 거 먹었으니 됐다!” 아, 다시금 서울로 서울로 사람들이 오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맛있는 거 먹을 수 있으니 됐다! 우리 부부도 연극 끝나고 명동교자에 가서 칼국수와 만두를 먹었다. 연극은 재미없었지만, 칼국수, 만두, 겉절이 김치는 맛이 있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칼국수를 먹을 수 있으면 됐다고? 연극은 이런 사람들이, 또 이런 사람들을 향해 만들어진 듯하지만, 정작 이런 사람들은 이 연극을 보지 않았을 듯싶다.

이나미

한국의 정치이념과 정치사를 주로 연구해왔다. 정의가 구현되고 사랑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치적 해법은 무엇인지가 주요 관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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