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한 몸] ⑧ 조금 이른 가을

고통스러워하는 언니의 시간이 그만 멈추길 기도한 적도 있다. 그러나 한 고비 한 고비를 넘겨 회복되어 가는 그의 몸을 보면서, 나는 기도를 멈췄다. 그의 인생에 조금 이르지만, 가을이 왔을 뿐이지 않는가.

언니의 몸이 그만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울 병원의 의사가 말한 기대 수명은 길어야 5년이었다. 의사는 언니가 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했다. 기껏해야 의료 수단으로 몸을 유지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된 언니 몸에 집착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언니가 너무 아파했다. 쳐다보기도 힘들 만큼 고통스러워했다.

수술 후 언니에게는 긴 고통이 찾아왔다. 사진 출처: Pixabay

그의 몸을 되돌릴 수 있는 기술은 더 이상 없었다. 언니와 함께 다시 지역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낫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안정되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우리의 바람과 달리, 션트 수술을 했음에도 뇌압 조절이 원활하지 않았다. 머리에 물이 찰 땐 눈알이 흘러내릴 듯 튀어나왔고 물이 빠질 때면 아기 주먹이 들어갈 만큼 머리가 꺼졌다. 몇 번이고 압력을 다시 맞춰야 했다.

압력을 조절하는 방법 자체는 단순했다. 기구를 심은 머리 부위에 기계를 대고 밸브를 잠그거나 여는 식이었다. 간단한 의료 행위였지만, 정작 어려웠던 건 의사의 비위를 맞추는 일이었다. 그는 내내 아니꼬운 태도를 보였다.

“서울에서 맞추고 오지 그래. 무슨 A/S 맡기는 것도 아니고….”

핀잔이 이어졌다. 수술 뒤 뒷수습이나 한다고 생각하니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됐지만 따질 수 없었다. 의사와 사이가 틀어져서 언니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그를 대신해 일을 막 시작한 인턴이 왔다. 인턴은 서툰 손길로 진땀을 빼며 기계와 한참 동안 씨름했다. 그 사이 언니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졌다.

열이 떨어지질 않았다. 전해질도, 염분 수치도, 소변량도 정상 범위를 벗어났다. 상태에 따라 호르몬 약을 새로 처방받아야 했다. 수치가 겨우 잡혀갈 즈음 이번엔 왼쪽 다리가 붓기 시작했다. 종아리 위가 계단같이 층을 이루면서 볼록해졌다. 혈전이 생긴 것이다.

피가 굳어 생긴 덩어리가 허벅지 혈관을 막고 있었다. 만약 혈관에서 떨어진 혈전 덩어리가 심장 같은 중요 기관의 순환을 방해한다면 즉사할 수도 있었다. 의료진은 언니를 집중 치료 처치실로 옮겼다. 나는 또다시 그가 당장 숨을 거두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 놓였다는 걸 직감했다.

그날은 추석이었다. 우리 가족은 둘러앉아 송편을 빚는 대신 돌아가면서 언니와 단둘이 시간을 보냈다. 나는 언니 옆에 앉아 부어오른 그의 다리를 가만히 만졌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망설이다 그냥 요즘 사는 이야기를 했다. 언니랑 같이 가려고 했던 일본 여행을 혼자 다녀온 이야기, 언니가 좋아했던 수영을 나도 배우고 있다는 소식. 그는 잠자코 듣고 있다가 이따금 몸을 꼬며 강직을 일으켰다. 미안해졌다. 내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이, 실은 그가 다시는 경험해 보지 못할 일들이었다. 그에게 마저 하려던 말이 입안에서 고였다.

며칠 뒤 약으로 혈전을 막아냈다. 또 한 번의 고비를 넘겼다. 병원에는 노인 환자들이 많았다. 나는 자연스런 늙음으로서 병든 그들이 부러웠다. 언니는 마음대로 죽지도, 그렇다고 제대로 살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럼에도 위기가 닥칠 때마다 되살아나는 몸을 보며 나는 그의 죽음을 기도하던 마음을 내려놓았다. 언니의 평안을 비는 건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저 주어지는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의 언니 모습 그대로 사랑하며 살아가기로 했다.

느리지만, 그의 몸은 회복하고 있었다.
사진 출처: salisburysupportforautism

재활이 시작됐다. 언니는 굳어가는 근육을 움직이고, 침을 삼키는 연습을 반복했다. 다시 아기가 된 듯, 한때는 당연히 해냈던 동작을 연습해야 했다. 침대에서 벗어나 휠체어에 앉았을 때 목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붕대로 머리를 휠체어에 고정한 뒤에야 바퀴를 굴릴 수 있었다. 몸에 힘이 실리는 대로 아래입술을 깨무는 탓에 자주 피가 터졌다. 손가락과 팔, 다리도 갈수록 꺾여 갔다.

변화는 느리게 찾아왔다. 어느 날부터 앉아도 고개가 떨어지지 않았다. 침도 꼴깍 삼켰고, 입술은 자국만 남을 정도로 물었다. 틀어진 다리 관절이 돌아오진 않았지만, 강직도가 이전보다 약해졌다. 그러다 경관식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형체가 있는 대변을 봤다. 우리 가족은 이것 좀 보라며 언니에게 입맞춤을 퍼부었다. 더디기는 해도, 분명히 그의 몸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사고 이후 처음으로 언니가 바깥 공기를 맡은 날- 기껏해야 병원 테라스였지만- 언니가 오랜만에 마주한 세상에는 어느덧 가을이 찾아와 있었다. 빨갛게 물든 단풍잎 한 장이 휠체어에 앉은 언니 손등에 떨어졌다. 언니의 모습과 잘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언니의 스물다섯 인생에, 조금 이른 가을이 찾아온 것뿐이구나 생각했다.

솔빈

그 순간, 녹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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