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나무가 있는 시골 마을엔 인적도 드물다. 이 마을 내광리 근처에 청실배나무 거목이 있다는데, 조각자나무 노거수만 몇 번을 보러왔지만 천연기념물로 지정할 만한 크기의 청실배나무가 있다는 것은 최근에 알았다.
아, 저기 밭에 나온 사람이 있다. 아저씨는 땅콩을 그물망으로 싸매고 있다.
“고라니가 자주 들어오는 모양이죠.”
“……..”
“여기 마을에 큰 청실배나무가 있다던데 어디 있는지 아세요?”
“………..”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
“혹 이장님은 아실려나요? 연락처 가르쳐 주실래요.”
“여기 이 전화로 해 봐요.”
“내광리 이장님 되시죠? 저기 이 마을에 오래된 청실배나무가 있다던데요. 혹 어딘지 아세요?”
“네 끝각단길 끝까지 가면 나옵니다. 정**씨 집입니다.”
차를 도로에 대고 좁은 길을 걸어 올라가니 감나무 여러 그루가 돌담장을 끼고 자라는 집이다. 돌담 옆에는 참죽나무가 자라고 입구에는 큰 엄나무가 대문을 지키듯 서 있다. 나물로도 좋지만 가시가 많아 벽사(辟邪)의 의미로 대문 옆에다 많이 심었다. 마을 산자락에 대나무숲을 끼고 있는 가장 윗집이고, 안채와 사랑채가 있는 나름 규모를 갖춘 집이다. 주인을 불러도 인적이 없다. 사랑채 댓돌에는 장화만 한 짝 있었다. 산 쪽을 바라보니 회화나무 꽃피고 있는 것이 보이고 그 오른쪽에는 더 높이 솟은 나무가 보인다. ‘아, 저것이 청실배나무구나’. 두세 번을 더 불러 보고는 인기척이 없어도 그냥 마당을 지나 나무가 있는 뒤뜰로 갔다.
청실배나무(Pyrus ussuriensis var. ovoidea Rehder)는 이제 막 테니스공 정도 크기로 자라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청실배나무는 산돌배나무의 변종으로 한국특산종이다. 청실리(靑實梨)라고도 불린다. 많이 알려진 청실배나무는 진안 은수사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1997년 지정)와 정읍 두월리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2008년 지정)이다. 하지만 울산지역 울주군 온양읍 내광마을에 더 큰 청실배나무가 자라고 있는 사실은 잘 모른다. 둘레가 가장 굵은 것으로 은수사 청실배나무보다 더 큰 것으로 확인되었다. 아직 익지는 않았지만 근처 떨어진 배를 한 입 베어 먹어보니 그리 딱딱하지 않고 단맛이 들었다. 청실배는 맛이 달고 연하며 시원한 느낌이 있어 구한말까지 왕실에 진상되던 재래종 명품배로 유명했다. 이 집을 살던 어른들은 진상품 조달로 시달렸을까 아니면 귀한 배를 맛보는 풍족함을 누렸을까?
옆에는 우물이었는데 바로 위에는 오래된 회화나무 고목이 한 그루 심겨져 있었다.
회화나무는 학자수로 알려져서 귀하게 여기는 나무지만 또한 물을 정화시키는 역할이 탁월해 다고 알려졌다. 포항시 흥해읍 영일민속박물관 마당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600년 된 회화나무가 있다. 흥해 일원은 과거 호수 지역이었던지라 수질이 나빠 피부병 환자가 많았다. 그래서 아주 용한 풍수학자가 회화나무 식재를 권장했던 기록이 있다.
오래전부터 회화나무는 엄청난 수질 정화 능력이 인정되었고 선조들은 생태순환적인 지혜를 일상적으로 적용했다. 내광리 여러 집에 우물 근처에 회화나무가 심겨져 있다. 이런 생태적 지혜는 수질오염이 더 심해지고 있는 현재에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근처에는 경상도 향신료로 빼놓을 수 없는 제피나무도 자라고 있다. 집 뒤에 산비탈에 대나무숲을 조성한 것은 산에서 내려올 외부 적을 막고 겨울철에는 찬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 역할을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죽순이나 죽세품을 만들 긴요한 재료도 조달할 목적이었다. 지금 같은 여름철에 방문을 열면 데워진 텅 빈 마당은 상승기류를 타고 그 빈 공간을 대나무숲에서 불어온 시원한 바람이 방을 통과해 대청마루를 통해 마당으로 쏟아져 나갔다. 자연대류현상을 활용한 바람길 냉방시스템인 것이다. 나만 시원하면 된다고 온갖 외부공간을 닫고 열을 품어내는 이기적 방식과는 차이가 난다.
마당 끝 부분에는 반가운 쉬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쉬나무는 운향과 식물로 까만 씨앗이 익으면 기름을 짜서 호롱불을 켰다. 쉬나무 기름은 그을음이 생기지 않는 고급 기름이 나왔다.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는 쉬나무를 ‘소등(燒燈)’이라 하는데, 횃불이란 뜻이다. 석유가 들어오기 전에는 불을 밝힐 때는 소나무 옹이에 든 관솔과 들깨, 아주까리기름 등을 썼다. 특히 쉬나무는 아무 데나 잘 자라고 열매가 많이 달려 동백나무, 때죽나무와 함께 중요한 기름으로 대접받았다. 『성호사설(星湖僿說)』에는 “호남 지방에서는 들깨 대신 쉬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서 등불을 켰다.”라는 기록으로 봐서 호남지역이 먼저 이용했을 수도 있다.
집안에 글깨나 읽는 사람이 있으면 쉬나무는 필수품이었다. 조선시대 양반은 이사를 가게 되면 쉬나무와 회화나무 종자는 반드시 챙겨갔다고 할 만큼 소중한 나무였다. 쉬나무 기름은 붉을 밝히는 용도 외에도 머릿기름, 해충구제약 또는 피부병 치료제로 사용되었으니 약을 구하기 힘든 시절에 다용도 비상약 구실을 독특히 해냈다. 30년 이상 된 큰 쉬나무 한 그루에서 15㎏가 넘는 씨앗을 얻을 수 있다고 하니 대량식재를 통해 대체에너지용으로 연구할 만하다. 꽃에는 꿀도 많아 영어로는 ‘bee tree’로 불리니 밀원식물로도 아주 좋다. 지금 우리에게 잊혀지고 있는 쉬나무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밀원식물로 활용되고 있고, 유명한 생태공원에 많이 식재되고 있다.
나오는 길에 보니 골목길이 조릿대로 만든 생울타리다. 장생포 마을 골목길을 걷다가 본 적이 있는데 이대는 길이 성장 위주로 하니 생울타리로는 제격이다. 대나무보다는 땅속줄기 세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니 관리도 수월할 것이고, 인위적 시설보다는 훨씬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전통가옥에서 보는 적절한 나무를 활용하는 조상들의 지혜는 과거 흔적으로만 남아 있을 것인가? 도대체 이 집 주인어른은 어디 계신 것일까? 직접 만나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많다. 청실배 익을 즈음에 다시 한번 방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