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견주일지] ① 식구가 될 운명이라니

서울을 떠나 시골로 이사를 했다. 동시에 우연히 길에서 만난 강아지와 함께 살게 되었다. 우리는 가족이 될 운명이었을까? 지나고 보니 태풍이와의 만남은 필연이었던 것 같다.

태풍이가 우리 집에 온 지도 벌써 7개월째. 서로가 낯설었던 게 얼마 전인데 가을, 겨울, 봄, 여름을 나고 어느덧 식구가 되어가고 있다. 태풍이는 강아지다. 나도 내가 강아지를 식구로 생각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귀엽긴 하지만 동물에게 특별히 애정을 가진 적도 없었고 타지에서 혼자 사는 불안정한 처지에 동물을 기르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태풍이를 만난 그날과 시기를 회상해보자면 우리가 만난 건 조금 운명적인 사건이었달까. 작년 11월 1일 늦은 저녁, 태어난 지 3개월쯤 되어 보였던 태풍이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작은 몸으로 차들이 빠르게 오가는 공용주차장 입구에서 중앙선을 밟고 서 있었다. 그날 안동에 갔다 밤늦게 돌아오면서 평소에 다니지 않던 골목으로 들어왔는데, 나보다 먼저 태풍이를 발견하고 전전긍긍하던 동네 친구 A를 우연히 마주쳤다. A는 이미 유기견 한 마리를 최근에 입양한 상황이라 선뜻 태풍이를 외면할 수도, 데려오지도 못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주인이 있나 싶어 집을 찾아주려 마을 한 바퀴를 구석구석 돌았지만, 강아지는 집으로 가지 않고 쓰레기봉투와 음식물쓰레기가 뒤섞여 있는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이미 음식물쓰레기를 잔뜩 먹었는지 배가 덩치에 비해 지나치게 불룩했다.

어제만 해도 유기견 한 마리를 입양하라는 권유에 ‘제가 아직 그럴 형편이 안 돼서요.’라며 기어이 거절해놓고 무슨 용기가 들었는지 ‘이제 마당 있는 집도 있고, 일도 그만두니 일단 우리 집에 데려가서 방도를 찾아보자.’라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일을 쉬면 여행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운동도 하겠다는 원대하고 자유로운 1인 가구의 계획은 강아지가 내 삶에 들어오면서 완전히 뒤바뀌었다. 사진제공 : 세모
일을 쉬면 여행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운동도 하겠다는 원대하고 자유로운 1인 가구의 계획은 강아지가 내 삶에 들어오면서 완전히 뒤바뀌었다. 사진제공 : 세모

태풍이를 만났던 즈음에 나는 건강 악화와 이사, 퇴사를 겪었다. 정신없이 짧고 높은 강도로 큰일들을 치러내면서 깊은 좌절을 맛본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게 파란만장했던 우연의 사건들은 마치 필연인 듯, 태풍이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날부터 동네에 벽보를 붙이고 면사무소와 지인들을 수소문해 강아지 주인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태풍이의 형제로 추정되는 강아지들이 계속 동네를 떠돌았다는 소식만 알 수 있었다. 작은 시골 동네에 펫월드가 생기고, 부쩍 길에 들개들이 늘었고, 명절에 타지 사람들이 오면 키우던 강아지를 고향 동네에 와서 버리고 간다는 흉흉한 소문은 덤이었다. 믹스견인 태풍이는 돌봐줄 사람을 만났으니 제법 ‘운이 좋은’ 강아지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반쯤은 키우겠단 마음을 먹었지만 반쯤은 주인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믿음이 있었다. 앞으로 강아지를 키우며 일어날 크고 작은 일들은 생각지도 못했다. 시골에서 자연스럽게, 개답게 키우면 좋지 않을까 하고 일면 방만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일을 쉬면 여행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운동도 하겠다는 원대하고 자유로운 1인 가구의 계획은 강아지가 내 삶에 들어오면서 완전히 뒤바뀌었다. 2인 가구의 초보 가장이 되었고 삶의 구 할이 강아지 중심으로 흘러갔다. 개를 키우면서 유난스러워지고 싶지 않았지만 유난스럽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홀로 ‘시골’에서 ‘개’를 ‘반려동물’로 키운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를 그때는 정확히 몰랐다.

철마다 뿌리는 농약과 강아지가 먹으면 안 되는 위험한 쓰레기, 불편한 길들 때문에 논길을 산책하는 것은 보기보다 제약이 많다. 사진제공 : 세모
철마다 뿌리는 농약과 강아지가 먹으면 안 되는 위험한 쓰레기, 불편한 길들 때문에 논길을 산책하는 것은 보기보다 제약이 많다. 사진제공 : 세모

강아지를 데려오니 접종부터 작은 병들까지 병원을 왔다 갔다 할 일도 많았고 써야 할 돈도 많았다. 동네에는 가축을 다루는 동물병원은 제법 있지만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을 다루는 병원은 없어 사십 분에서 한 시간을 운전해 근처 도시에 있는 동물병원에 가야 했다. 동물을 키우기 전엔, 동물병원이라고 쓰여 있는 곳에서 강아지를 봐주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당시 우리 동네에는 전국 최대 규모의 강아지 파크인 펫월드가 있었지만, 그것을 제외하곤 강아지 병원, 강아지 용품 샵, 미용, 강아지 호텔, 강아지와 함께 갈 수 있는 곳과 같은 선택지가 전무했다. 사실 사람들이 갈 곳도 제한적인 동네니까.

두 번째 착각은 마당과 산책에 대한 것이었다. 집에 작은 마당이 있으니 적당히 풀어놓으면 산책이 많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시골은 차가 없으니 논밭 사이를 강아지랑 산책하기 좋을 거라 막연히 생각한 것이다. 일단 마당에서 배변을 하는 것과 강아지가 산책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임을 알았고, 마당에 풀어놓으면 대문 사이로 탈출하거나 강아지가 너무 짖기 때문에 계속 두기가 어려워졌다. 동네 주민 중 내가 강아지를 키우는 게 탐탁지 않았던 할머니가 우리 집 대문에 돌을 던지고 욕을 하기 시작하면서는 마당에 강아지를 두고 키우는 것을 포기했다. 또 도시와는 달리, 목줄과 배변 봉투를 챙겨도 동네 공원이든 논길이든 강아지와 산책을 하면 어르신들로부터 불편한 눈초리를 받거나 심할 경우 쫓겨날 수도 있다는 점 또한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철마다 뿌리는 농약과 강아지가 먹으면 안 되는 위험한 쓰레기, 불편한 길들 때문에 논길을 산책하는 것은 보기보다 제약이 많다는 점도 강아지를 키우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이다.

때때로 누군가에게 의존해도 괜찮다는 점, 감정에 솔직해도 된다는 점을 태풍이를 통해 배웠다. 사진제공 : 세모
때때로 누군가에게 의존해도 괜찮다는 점, 감정에 솔직해도 된다는 점을 태풍이를 통해 배웠다. 사진제공 : 세모

그래도 비슷한 시기에 이 동네에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견주들의 모임이 생긴 건 감사하고 좋은 일이다. 강아지 키우기에 제약이 많은 만큼 각종 정보를 공유하거나 같이 산책 원정을 다니기도 하고, 급할 땐 서로 강아지를 맡기는 부탁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좋은 건 어릴 때부터 강아지들이 형제들처럼 함께 어울려 놀아서 자연스럽게 사회성을 기를 수 있었다. 견주들끼리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것은 덤이다.

여전히 서울에서 나를 알던 주변 사람들은 강아지와 함께하는 나를 믿기 어려워한다. 나 역시 강아지를 데려오고 처음 3개월은 가능하면 도망치고 싶었다. 책임이라는 단어에 온몸이 주저앉은 기분이었고, 남과 같이 사는 것처럼 왠지 어색하고 민망했다. 이 귀엽고 대단한 생명체는 너무 의존적이고, 예민하고, 눈치를 많이 보면서도 제멋대로이고, 지나치게 거리가 가깝고 살갑지만 밉지 않고 자꾸만 보고 싶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때때로 누군가에게 의존해도 괜찮다는 점, 감정에 솔직해도 된다는 점을 태풍이를 통해 배웠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어하지 않고,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나의 비대한 책임감이 약간은 허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를 해본 적은 없지만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상상을 해보면서, 어쩌면 이 귀여운 친구가 나를 무척 성장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가올 삼십대와 사십대에는 내가 ‘책임’이라는 단어를 피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 22년 신년 사주 풀이에 ‘식구가 하나 늘 것’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곤 피식 웃었다. 믿거나 말거나 아무래도 우리는 식구가 될 운명이었나 보다.

민재희(세모)

자립과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고민을 안고 가장자리에서 새로운 삶의 형태를 실험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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