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협동조합과 배달문화

빠른 배송, 다양한 물품, 건강한 먹거리를 앞세우는 온라인 몰과 비교했을 때 생협의 강점은 무엇일까. 생협으로 맺어진 보이지 않는 신뢰 관계를 통해 내 몸을 살리고 환경을 살리는 생명으로서의 먹거리로 우리의 밥상을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지 않을까.


상황 1.

잠자기 전, 냉장고를 살피다가 내일 아침 식사를 위한 달걀과 우유가 똑 떨어진 걸 알게 됐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① 대체할 다른 음식을 챙겨 먹을 생각을 하며 잠자리에 든다.
② 장을 미리 봐 뒀어야 하는데 자신의 행동에 후회와 짜증을 낸 후, 가장 최애인 달걀과 우유가 없으니 내일 아침은 굶을 생각을 한다.
③ 무슨 걱정. 내겐 새벽 배송이 있다. 당장 핸드폰을 들어 앱을 켠다.


상황 2.

한 주간 고생한 당신, 이번 주는 온종일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쉬는 걸로 마음먹었다. 가장 중요한 삼시세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① 귀찮다. 집에 있는 걸로 대충 먹거나 라면 끓여 먹는다.
② 배달의 민족답게 배달로 삼시세끼 해결.
③ 사람은 모름지기 밥심. 주중에 잘 못 챙겨 먹었으니 주말만큼은 원하는 시간에 배송 받은 재료로 만든 정성 들인 집밥으로.
④ 세상 쉬운 게 요리. 전날 밤, 급 당기는 메뉴를 새벽 배송으로 주문, 밀키트 하나면 유명 레스토랑 부럽지 않다.


“오늘은 뭘 해 먹냐.”

어머니가 항상 입버릇처럼 되뇌며 퇴근하시는 길에 시장이나 가게에 들러 저녁 반찬거리를 사 들고 오셨던 게 떠오른다. 그때는 주말이면 시장이나 마트에 가서 한 주의 음식 재료를 냉장고에 채워 두는 게 중요하고 큰일이었다.

가끔은 대파가 똑 떨어질 때도 있었고, 양파나 두부, 달걀이 없어서 부리나케 집 앞 슈퍼로 심부름을 하러 갔다.

하지만 요즘은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장 볼 시간이 없어도, 주말에 미리 시간을 내어 마트를 가지 않아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우리에겐 새벽 배송, 당일 배송, 지정일 배송이 있으니까.

자정 전에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에 받는 서비스는 얼마나 신박하고 편리한지. 외출하는 사이 몇 시에 도착할지 몰라 음식이 상온에서 상하기라도 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손바닥만 한 핸드폰을 몇 분간 까딱거리면 내가 잠든 사이 배달 기사가 문 앞에 둔 아이스백에 담긴 먹거리를 꺼내 와 냉장고에 차곡차곡 정리하면 끝이다. 무거운 걸 들고 나르며 가족 간에 서로 얼굴 붉힐 필요도 없고 손목 아플 일도 없다.

물품은 또 얼마나 다양한지. 유명 맛집의 레시피 그대로 재현했다는 밀키트, 냉동식품, 즉석식품을 보며 군침 한 번 흘리며 손가락을 바삐 움직이며 장바구니에 넣기 바쁘다.

심지어 이게 다가 아니다. 가입 후 첫 주문 고객에게 주는 다양한 할인 쿠폰과 혜택. 이걸 놓치면 왠지 손해 보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매달 용돈 주듯 쿠폰함에 들어오는 몇 천 원 할인 쿠폰을 볼 때면 무언가를 꼭 사야 한다는 왠지 모를 압박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술안주에는 진심이지만 먹거리엔 문외한인 남편도 결국엔 그 사이트에 가입했다. 온갖 사이트마다 광고로 도배된 그 업체의 첫 구매 고객에게 주는 선물에 혹한 거였다.

거저 주는 사은품에 첫 달 무료 배송, 몇 천 원의 할인 쿠폰을 안겨주자 신랑은 뭘 자꾸 사라며 닦달을 해댔다. 이걸 놓치면 현명한 소비가 아니라고. 그래서 어떻게든 몇 만 원 이상의 가격을 채우려고 먹거리를 구매했다.

그러니 굳이 집 근처 마트나 가게, 시장에 갈 일이 전보다 뜸해졌다. 내 눈으로 직접 물건을 살피고 손으로 만져 볼일도 없고, 가게 주인과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어떤 물건이 신선하고 좋은지, 제철 식품이 무엇인지 물어볼 일도 없다. 우리가 고민할 건 무엇을 살지 이거 하나면 된다. 얼마나 단순하고 편리한지 모른다.

빠른 배송은 우리에게 기다리는 시간을 줄여 주었고 판매자와 만날 일이 없게 만들었다.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선 핸드폰 앱과 신용카드만 있으면 된다.

코로나를 거치며 배달 문화가 정점을 찍는 동안 생협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사실 수년째 생협을 이용해 왔지만, 전과 후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는 못했다. 걔 중 가장 빠른 배송을 자랑하는 OO생협은 전날 오전 11시 주문에 한해서 다음날 배송이 된다. 시간은 조합원의 마음대로 정할 수가 없다. 그나마 담당 배송 기사의 운행 코스가 일정해서 도착하는 시간은 거의 비슷하다. 지역마다 달라 오전일 수도 오후일 수도 있다. 운 좋게도 우리 집은 새벽 배송이다. 단, 주말에는 운영하지 않는다. 나머지 생협들은 최소 이틀에서 사흘 이내에 배송 가능하다. 딱 봐도 일반 온라인 몰에 비해 편리성이 무척 떨어진다.

물품은 어떨까. 냉동식품과 같은 가공식품의 종류가 많이 늘어났지만 일반 마트나 식재료 온라인 쇼핑몰을 따라갈 수가 없다. 내 입맛에 꼭 맞는 맛집 레시피의 밀키트도 물론 구할 수 없다.

각 생협에서 가지고 있는 먹거리에 대한 기준인 국내산, 친환경, 안전 기준(농약, 납, 방사능)등을 충족시키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행복중심생협
사진 출처: 행복중심생협

그렇기에 바로 배송이 되지 않을뿐더러 밀키트나 그릇, 이불, 냄비 등의 생활용품 등은 거의 예약제로 진행된다. 최소 1~2주일 전에 예약해야 배송받을 수 있다. 날짜도 내가 원하는 날이 아니라 지정된 날만 가능하다. 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또한 사이트 곳곳을 둘러봐도 무료배송, 쿠폰 증정, 특가 할인, 카드사와의 제휴 같은 혜택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세간에서 말하는 현명한 소비와는 거리가 멀다. 신입 조합원에게만 주는 꾸러미가 가장 큰 혜택이라고 보면 된다.

사이트의 메인 화면에 뜨는 것은 책임 소비, 제철 채소 과일, 생산자들의 이야기이며 생활협동조합이 강조하는 것은 가치 소비다. 한 마디로 소비자에게 득이 될 것은 없다.

사진출처: 한살림연합회
사진출처: 한살림연합회

그런데도 내가 생협을 이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생협 물품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안전 기준을 정하는 것도, 그 기준을 충족시키는지 감시하는 역할도 조합원이 하고 있으니 믿고 사게 된다.

또한 물품을 구매할 때마다 발생하는 출자금으로 조합을 운영하는 자본금이 되니 일정 부분 생협에 대한 주인 의식도 한몫하게 되는 것 같다. 즉 일반적인 판매자와 소비자의 관계보다 더 친밀한 생산자와 조합원의 관계가 생성된다.

마지막으로 생협이 추구하는 가치가 ‘사람과 생명,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저 입으로 들어가 배를 채우고 밖으로 내보내는 음식이 아니라 내 몸을 살리고 환경을 살리는 생명으로서의 먹거리로 음식을 받아들이는 것.

사진출처: 두레생협연합회
사진출처: 두레생협연합회

그래서 그런지 생협 사이트며 소식지를 들여다보면 가뭄을 견디고 수확한, 알이 작지만 다디단 블루베리, 홍수를 겪고도 무사히 수확한 쌀 등 모든 농작물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구구절절하게 나와 있다. 깨끗이 세척되어 매끈한 모습을 자랑하는 감자가 아니라 흙이 잔뜩 묻어 아직 자연의 때를 벗지 못한 촌스러운 감자가 그래서 내 눈에는 더 정겹고 기특하다.

먹을 만큼 소량만 구매하면 편한 것을 책임 구매라는 조합원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10kg을 구매하며 무얼 해 먹을지 고민하는 순간은 부담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대감이 들기도 한다. 쪄 먹을까, 아니면 감자조림을 할까. 비가 오니 청양고추를 넣은 감자전은 어떨까. 감자를 넣어 칼칼하게 끓인 고추장찌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감자를 듬뿍 넣은 카레는 어떨까.

이런 행복한 고민을 하기도 하지만, 다 먹지 못해 싹이 튼 감자를 발견할 때면 내가 왜 먹지도 못할 걸 사서 이 고생인가 하며 스스로를 탓하기도 한다.

내가 느끼는 소소한 감정과 나를 불편하게 하는 책임감은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장담하건대 생협에 가입하기 전은 아니었다. 뉴스, 신문? 그것은 상식의 범위를 넓히는 데 도움은 되었지만, 내 가치관을 바꾸게 된 계기는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생협 커뮤니티 안에서 머리를 맞대고 자신의 경험과 지식, 정보를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천천히 변화하게 된 것이 크다. 함께 친환경 비누를 만들고 반찬을 만들어 나눔을 하고 인문학 서적을 읽으며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활동. 그 외에도 조합원 교육, 생산자 간담회, 생산지 방문을 하며 눈으로 보고 겪으면서 달라졌다. 이것이 일반 마트나 온라인 몰과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빠른 배송은 우리를 기다릴 필요 없게 만든다. 바쁜 현대인에게 기다림은 돈과 시간과도 직결된다. 당장의 편리함, 심신의 편안함은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먹는 음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내 밥상까지 오게 됐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

쌀을 생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를 거쳤는지, 햇빛과 공기가 제철 과일을 얼마나 맛있게 만드는지 아는 것은 핸드폰 얇은 유리막을 통해서는 알 수 없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제 경험을 공유하고 제 이야기를 나누어야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몇 발 빠른 온라인 몰보다 생협 매장을 조금이라도 더 이용하려 한다. 근처 채소가게나 시장에 들러 제철 채소를 맛있게 먹는 레시피를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관계를 맺으려 한다. 그럴수록 내가 먹는 먹거리가 더 귀해진다.

가뭄이 심해지거나 장맛비에 논밭이 침수되면 내가 먹는 먹거리가 어떻게 될지, 그걸 길러내는 생산자의 노고를 걱정한다. 내 일도 아니고 당장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지만, 생협으로 맺어진 보이지 않는 관계는 빠른 배송을 앞세우는 편리함으로는 절대 대체될 수 없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새벽 배송, 지정 배송의 유혹을 과감히 물리치고 약간의 기다림을 감수하며 생협을 찾는다.

봄날

8년 차 식생활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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