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폐염전 저어새와 친구들

그날도 저어새는 홍대폐염전 깊숙한 곳에서 잠을 잤다. 반가운 검은머리물떼새는 늘 있던 바위 앉았고 우아한 장다리물떼새는 저편으로 걸어갔다. 그들은 내년에도 좋은 마음을 물고 올 것이다.

그날도 저어새는 홍대폐염전 깊숙한 곳에서 잠을 잤다.

홍대폐염전 안쪽으로 진입하는 너른 모래밭, 미모의 개망초가 가득 피어 해질녘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반가운 검은머리물떼새는 늘 있던 바위에 앉아 멀뚱멀뚱 표정을 짓고 깃을 고르고 똥을 쌌다. 물가의 수풀 속으로 들어갈 땐 뱀이 물지 않을까 걱정이 들지만 살금살금 ‘나 여기 지나간다.’ 소리를 내면 뱀은 알아줄 것이다. 저어새는 어디를 다녀올 건지 하늘이 붉어질 때까지 소식이 없었다. 그러나 얼굴만치 키가 큰 수풀 속에서 주위 자연을 바라보는 것도, 만나고 싶던 새를 보는 시간 못지않게 기쁜 시간이다.

쌍안경으로 살피다 장다리물떼새를 발견했다. 염전 한가운데 바닷물 위에서 장다리물떼새는 가늘고 긴 붉은 다리 한쪽을 들고 깃을 다듬고 있었다. 어떤 움직임에도 우아한 자태를 잃지 않는 품위의 장다리물떼새가 저편으로 다 걸어가기까지 저어새가 한두 마리씩 건너편에 앉는 줄도 모르고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어 물결이 일고 번쩍번쩍 금빛이 났다. 저어새들은 꽤 모여 앉았다. 휴식처에 온 그들은 걱정 없이 아무도 보지 않는 것처럼 편안한 모습이었다. 몸을 다듬고 다른 개체가 가까이 오면 어울려 서로를 다듬어주었다.

저어새가 타 개체와 더불어 깃을 고르는 것을 탐조인들은 특별히 여긴다. 저어새는 주로 인천 서해 부근에서 번식하는 멸종위기 1급의 여름 철새, 오래 탐조를 해온 선생님들께선 우리나라 국조國鳥를 저어새로 지정해 남북평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신다. 상대의 가려운 곳을 잘 아는 저어새들을 사진에 담다 보면 해는 이미 져 있고 짙푸른 풍경 속에 다른 것들은 보이지 않고 저어새의 흰빛만이 어렴풋 보이게 된다.

이곳 염전의 역사는 어땠을까, 어떤 이유로 폐쇄되었을까. 사람에게 폐허인 이곳이 저어새의 휴식처가 되고 장다리물떼새와 검은머리물떼새의 번식처가 되었다. 그들 사이 종종 있는 왜가리, 백로 외에도 이곳은 많은 생명들의 안락한 곳일 것이다.

홍대폐염전은 개발 위협에 있다. 이곳을 찾을 때면 다음 해에도 이대로 있을까, 그들을 만날 수 있을까 걱정을 한다. 올해도 내년에도 그곳에 가면 저어새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약속 같은 믿음을 유지하고 싶다. 춤추는 갈대밭 염전 풍경 속 저어새와 평화로운 친구들,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둥글어지고 곱게 정돈된다. 그들은 내년에도 좋은 마음을 물고 올 것이다.

(좌) 검은머리물떼새 / (우) 장다리물떼새
(좌) 검은머리물떼새 / (우) 장다리물떼새
(좌) 저어새 둘과 왜가리 / (우) 휴식터의 저어새들
(좌) 저어새 둘과 왜가리 / (우) 휴식터의 저어새들

한승욱

회화를 중심으로 글쓰기, 사진, 영상, 도자, 등을 다루며 창작하고 있습니다. 예술강사 활동을 했고 동료 예술가들과 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종종 환경 활동을 하고, 탐조를 즐깁니다. 녹색서울시민위원회 간사로 일하며 창작과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댓글 2

  1. 본문 중 “저어새의 둥근 부리는 사냥 효율에 뛰어나지 않지만”이란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어새의 둥근 부리 끝에는 감각 세포가 몰려 있어 부리 끝에 닿는 먹이를 금세 알아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사냥 효율은 서식지 특성에 달려 있을 것 같습니다. 물 반 고기 반인 곳에서는 언제든 쉽게 먹이를 찾을 수 있지요.

    1. 안녕하세요, 글쓴이 한승욱입니다. 좁은 지식으로 단정적 표현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해당 부분 조속히 수정, 보완하겠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배워가겠습니다. 말씀 깊이 감사드립니다.

댓글

댓글 (댓글 정책 읽어보기)

*

*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