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실리레이터의 태도 -양육하고 섬기는 평등의 서번트에 대하여

성공적인 집담회를 이끌기 위한 퍼실리레이터의 태도는 어떤 것일까? 나는 퍼실리레이터를, 양육하고 섬기면서도 평등하게 이끌어가는 서번트(servant)라고 표현하고 싶다.

내겐 고3 딸이 있다. 스스로 준비를 다 갖추어서 고등학교 2학년 직전에 인문계에서 예술계로 전학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나는 단지 확인 전화를 받고, 실기 시험 합격 통지만 받았다는 후일담을 나누다 보면, 다들 ‘독한 엄마’ 또는 ‘이상한 엄마’로 보는 듯한 눈길을 보낸다.

어릴 때부터 자기 음식은 꼭 본인이 주문하게 했고,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뭐든지 의견을 물어보며 수렴하고 최대한 의견을 존중했다. 학원 또한 스스로 택한 학원에 나는 카드를 가진 보호자의 역할로 단순히 동행할 뿐 결정은 딸의 몫이었다. 내 기준, 내 생각을 들이밀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 혹은 더 나은지를 따지지 않았고, 나쁜 것만 아니라면 뭐든지 그 선택을 존중했다. 딸의 모든 것을 존중하며 지지하려고 하는 나의 행동을 통해, 사람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깨닫기를 원했다. 그것이 양육자에게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싶다.

퍼실리테이터의 역할 또한 양육자와 다르지 않다. 퍼실리테이터는 팀에 참여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중하고 그들의 의견을 전폭 지지하며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 태도로 객관성을 잘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퍼실리테이터의 태도는 삶을 더 자유롭고 풍성하게 만드는 도구가 된다. 사고와 마음의 확장을 끊임없이 훈련한다는 것은 많은 장애물을 극복해 나가는 극기 훈련 중 하나인 셈이다. 딸이 아직은 완전히 독립하지는 못했지만, 많은 부분에서 나와 남편을 놀라게 할 만큼 주도적이고 독창적이다.

나에게도 아킬레스건은 있다. 강자가 약한 사람을 괴롭힐 때, 나도 모르게 약한 사람 편에 서려는 마음이 강하다. 그러나 퍼실리테이터는 약자의 손을 들거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항상 매력적인 중재자로서 중립을 지키며 당사자들이 서로 화합하고 협력하도록 힘의 조절을 잘해야 한다. 나이, 성별, 특별한 관계 등에 상관없이 아이들은 똑같이 존중받아야 하므로, 아이들을 대할 때 애정은 가지면서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자녀를 통해 나 또한 계속 훈련 중이다.

각자 표현 방법과 에너지가 다르더라도 그들의 의견을 배분하는 퍼실리레이터의 에너지는 동등해야 한다. 사진 출처: StockSnap
https://pixabay.com/images/id-2557396/
각자 표현 방법과 에너지가 다르더라도 그들의 의견을 배분하는 퍼실리레이터의 에너지는 동등해야 한다.
사진 출처: StockSnap

퍼실리테이터는 또한 일종의 서번트(servant, 하인)일 필요가 있다. 서번트의 역할은 무조건적인 순종이나 권위에 따르는 섬김과는 완전히 다르다. 산모를 조력하는 산파와 같이, 섬기는 역할이지만 자기 주도적으로 주체성을 가져야 하며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이타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참여자들을 위해서 전적으로 에너지를 몰입하여 그들을 위해서 섬기지만 그들의 주도성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주제에 관한 중심을 가지고 어떠한 의견조차도 소중히 생각하며 반응하고 수렴하고 응원해야 한다.

섬김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퍼실리테이터의 섬김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섬기기 위해서는 먼저 큰 그릇이 되어야 하고 그 그릇 안에서 참여자들이 마음껏 자기표현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참여자들을 기쁘게 맞이하고, 필요가 있다면 언제든지 참여자를 위해 움직이고, 이야기를 마친 후에도 그들의 시간을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친절하게 배웅하는 등, 퍼실리테이터의 섬김에는 경청은 물론 여러 요소들이 포함된다. 사전에 미리 자료를 잘 알려주는 것, 토론 전에 토론 진행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 함께 지킬 규칙을 미리 설명하고 서로 동의를 구하는 것 또한 섬김이다. 섬김을 받는 사람은 자존감이 높아지고 섬기는 사람은 에너지가 더 확장되므로 서로에게 유익함이 있다. 퍼실리테이터가 섬김의 태도를 유지할 때 참여자들 또한 자연스럽게 서로 섬기는 에너지 속에서 협력하고 화합하게 된다.

리더의 중요성은 퍼실리테이터가 이끄는 그룹의 분위기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섬김은 섬세하고, 구체적이고, 정확하고, 개인적이다. 그러므로 짧은 시간에도 친밀감을 가지게 되고, 행복하며 긴 여운을 남긴다. 사람은 모두가 영적으로 민감함에도 불구하고 자기방어를 위해 스스로를 둔감한 상태로 내버려 두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좋은 에너지들이 만났을 때는 서로 방어기제를 해제하고 결국 섬김의 기쁨을 함께 누리게 된다.

평등은 서로의 에너지가 비슷하고 눈높이가 맞을 때 함께 누리는 기쁨이다. 퍼실리테이터는 모든 참여자들과 똑같은 구성원 중 하나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서 서로의 다름을 온전히 인정할 때 비로소 평등해진다. 나이, 성별, 직분 어떤 것도 우선 순위가 될 수 없이 모두가 똑같이 소중한 존재임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각자의 의견은 모두 똑같이 동등하게 존중되어야 한다. 목소리 큰 사람의 의견으로 쏠리지 않도록, 소극적인 사람의 의견이 무시당하지 않도록 한다. 사람은 모두 각자 표현 방법과 에너지가 다르더라도 그들의 의견을 배분하는 퍼실리레이터의 에너지는 동등해야 한다. 퍼실리테이터는 평등한 섬김을 위해서 참가자들의 에너지를 재빨리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견 표현이 서툰 사람에게는 질문 기법의 적극적인 조력으로 참여자가 스스로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의견이 너무 많은 사람에게는 적당한 개입을 통해 적절히 조율해야 한다. 퍼실리테이터의 참여자들에 대한 평등한 섬김은 참여자들이 서로를 존중하도록 하는 기본 환경이 된다.

퍼실리테이터는 참여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진행 과정에서 그 진정성을 느끼게 되면, 집담에 참가한 그룹 내 사람들은 마치는 시간에 못내 아쉬워하며 연거푸 인사를 하기도 하고, 함께 ‘인증샷’을 찍기도 하며 진심이 담긴 감사의 표현을 잊지 않는다. 누군가 말했다. 퍼실리레이터 공부는 도를 닦는 경지에 이르는 것과 같다고.

정현진

동명대 두잉학부 객원교수, 한국퍼실리테이션 대표.

댓글

댓글 (댓글 정책 읽어보기)

*

*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