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km정치] ① 가까이에서 정치를 만날 수 있다면’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
지역정치가 되는 제3의 장소
‘제3의 장소’는 집과 회사, 집과 학교 밖 다른 공간을 말합니다. 이 말을 처음 쓴 사람은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입니다. 올든버그는 현대인의 생활이 제1의 장소인 집과 제2의 장소인 직장이나 학교를 오가는 것이 전부라는 데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리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제3의 장소’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개인에게도 꼭 필요한 ‘제3의 장소’이지만 지역정치를 위해서도 ‘제3의 장소’는 필요합니다. 새로운 건물을 지을 때 커뮤니티를 고려한 건축디자이너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만나고 교류할 수 있는 장소를 고민합니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일상생활 속에서 주민들을 만날 수 있게 말이죠. 지역정치가 되는 ‘제3의 장소’는 이렇게 장보기, 책보기, 아이들과 놀기, 운동하기 등 일상생활 장소에서 주민들과 무의식적으로 연결이 반복되면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는 조금 더하면 주민들과 함께 더 나은 지역을 위해 N개의 활동을 시작하는 장소입니다. 특별한 장소와 시간을 정해 의식적으로 포럼, 원탁회의, 행사의 이름을 빌리지 않고서도 말이죠. 『정동의 정치』에서 마수미는 어울림(관계)의 정치(a politics of belonging), 즉 사이에서 발생되는 ‘상관의 정치’에 주목합니다. 상관의 정치를 생성하는 ‘제3의 장소’입니다.

또 숙의민주주의 실험하는 ‘제3의 장소’도 있습니다. 얼마 전 경향포럼에서는 핀라드 헬싱키대학의 에밀리아 팔로낸 교수를 초청해 지역민주주의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물었습니다. 팔로낸 교수는 우선 시민의 다양한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게 먼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역정치를 위한 ‘제3의 장소’와 같은 ‘마우눌라 하우스’를 소개했습니다. 핀란드 마우눌라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원한 문화‧청소년센터와 도서관을 짓기 위해 아이디어를 모으면서 주민들이 단순한 센터를 넘어 ‘민주주의 공간’을 원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 결과 마우눌라 지역의 도서관, 청소년센터, 성인 교육센터 역할을 겸하면서 민주주의 공간 역할을 하는 ‘마우눌라 하우스’가 탄생했습니다. ‘마우눌라 하우스’를 어떻게 운영하고 어떤 문화 프로그램을 개설할지 등 모든 것을 주민들이 직접 결정한다고 합니다.
오무타빈타지 마을 선언문에 나오는 “그곳에 사는, 그곳에서 일하는,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결정해야 한다.”는 글이 떠오릅니다.
지역정치가 되는 시장(市場)
시장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예전의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넘어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고 즉흥적으로 세상일을 두고 야단법석 같은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서로에게 필요한 온갖 일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지금의 플랫폼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래전 어느 나라에서는 정치인들이 장이 열리는 날 시장을 찾아 점포를 열었다고도 합니다. 안 어울릴 것 같지만 그 장면을 떠올려보면 아주 그럴듯합니다. 정치를 사고파는 점포를 열고 정치인들은 먹고사는 데 필요한 주민들의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듣고 자신이 계획하는 일들을 소개했을 것 같습니다. 주민들이 찾지 않아 파리 날리는 시간도 있겠지만 한 두 명은 찾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보면 좋은 정치를 알아보고 주민들 사이에 소문도 날 것이고 단골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정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돌아갈 것이고 마음에 들면 즉시 거래가 이루어졌을 겁니다. 정치가 펄떡펄떡 살아 숨 쉴 것만 같습니다. 정치를 바라보는 답답한 마음을 활짝 열어줄 것도 같습니다. 작년 지역정당을 하는 분께 토론회도 좋고, 설명회도 좋지만 우선 프리마켓 같은 시장에 점포를 열어보라고 권해 보았습니다. 주민들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반은 성공이라고. 하지만 익숙한 정치방식만을 정치로 아는 정치인들에게는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을 겁니다. 제 바람대로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는 게 정치라면 시장만큼 어울리는 곳도 없습니다.
지역정치가 되는 음식
음식은 욕망의 상징입니다. 그래서인지 방송과 유튜브에서 먹방 인기가 식을 줄 모릅니다. 정동연구자 벤 하이모어는 「뒷맛이 씁쓸한 – 정동과 음식, 사회미학」이라는 글에서 미각이 갖는 의미가 고급감각들로 취급되는 시각, 청각, 촉각에 비해 저급감각으로 취급되지만 미각은 이성주의적 규칙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정동(Affect)의 필수조건인데 이유는 음식은 다른 감각 이상으로 몸(내장감각)에 세심하게 편성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생활협동조합 한살림도 우주와 연결된 마음이 몸뚱아리를 만나 생겨난 몸을 중요시하여 밥 한 그릇을 모시는 일이 평화의 삶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밥 한 그릇의 혁명입니다.
음식을 생명을 향한 욕망의 과정(Process)으로 보면 지금 겪고 있는 정치실종의 문제와 지역정치의 기회를 생명적인 투박함을 지닌 음식의 정동으로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일상의 따듯하고 건강한 밥 한 그릇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좋은 정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뿐이겠습니까 기후재난과 사회재난의 문제까지도 풀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소박하지만 풍성한 음식이 차려진 밥상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음식이 돈에 포섭된 지금 지역은 아직 자연에서 나오는 풍성한 음식을 제공할 수 있는 곳입니다. 혼자서 밥 한 끼 해먹기 쉽지 않은 1인 가구부터 바빠서 음식을 때우는 사람들에게 철마다 밭이나 바다에서 난 건강한 식재료로 차려진 밥상을 만나고 나눌 수 있게 하는 지역정치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한 끼 음식에 담긴 서사로도 마냥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세 가지 지역정치의 잠재성과 가능성을 소개했지만 지역정치는 이 세 가지로 끝나는 게 아니라 무한히 확장되어야 하고 확장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가 횡적이라면 지역정치에게는 종적인 요소도 필요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욕망을 찾아서 표현하고 토론하는 학습과정입니다. 이 과정 없이는 지역정치도 표층적 욕망이 되는 부동산과 학력, 직장으로 헛돌 수 있고 확증편향으로 다툼과 갈등만 반복될 수 있습니다. 욕망과 관련되어서 ‘매슬로우 욕구 5단계’로(욕구가 물적인 필요를 전제로 한다고 해석하면 ‘매슬로우 욕구 5단계’는 욕구보다는 욕망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잘 알려진 심리학자 매슬로우도 인생의 마지막 무렵에는 자아실현의 욕구는 4단계의 다음인 5단계가 아니라 1단계부터 4단계까지의 욕구 전체를 아울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합니다. 그만큼 욕망의 드러냄과 실현이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근대정치와 자본주의체제로 가두어진 알 수 없고 경험해보지 않은 욕망을 드러내는 일이니 쉽지는 않겠지만 이성 이전에 감성과 감각을 일깨우는 문화와 예술이 이 역할을 잘해낼 수 있습니다. 예술은 익숙한 습관과 규범을 해체하고 해체된 틈으로 자신의 욕망을 찰나의 순간에 되살릴 수 있는 조력자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습니다. 또 예술은 내면의 자유와 영성의 명령과 공명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토론과 회의의 방식도 옳고 그름보다는 지금 시점에서 최선의 방안을 찾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지리산연찬과 지리산정치학교에서 회의방식으로 쓰고 있는 연찬의 특징 몇 가지를 간략하게 소개해보겠습니다. (1)연찬의 입구는 단정斷定하지는 않는 것이다. (2)‘누가 옳은가?’하고 마주 보는 토론이 아니라, 이 시점에서 ‘무엇이 옳은가?’를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함께 탐구하는 과정이다. (3)솔직하고 편하게 자신의 의견을 내놓고, 서로를 신뢰하며 자신과 다른 의견에 대해서 ‘경청’하는 데 집중해본다. (4)‘사람’과 ‘의견’을 따로 떼서 말하고 듣는 연습을 한다.
욕망 드러내기와 토론방식, 이 두 가지를 다른 말로 하면 ‘인문적 소양’입니다.
가까이에서 정치를 만날 수 있다면
양의 얼굴을 한 늑대의 모습을 하고선 배제하고 독점하는 나쁜 정치로 생명들의 살림을 망친 지금의 정치와는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지역정치가 꿈꾸는 정치는 각각의 존재가 서로 의지하며 함께 살아가는 아이가 태어나 학교에 가고, 일하고 은퇴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한 사람의 인생 사이클에서 언제 어디서든 가깝게 만날 수 있는 정치입니다. 작은 나무가 자라나 새들이 찾아오고 숲이 되는, 빗물이 모여 맑은 물을 제공하는 자연의 순환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정치입니다.
잠시 눈을 감고 떠올려보십시오. 지역에서 인간/비인간 모두가 자신으로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고 그들 서로가 주위의 사물들을 돌보아 모든 생명이 꽃피고 열매 맺게 하는 정치를. 나로부터 세상과 우주를 순리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작동하는 정치를.
정치가 생명과 함께 순환해야 한다면 정치는 지역에서부터 채워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채워나가다 보면 선형적이고 파편화된 근대산업문명이 전환되지 않고서는 바로 눈앞에 나타난 대재앙 속에서 지구생명이 미래로 연착륙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새로운 문명으로 도약하는 전환의 과정에 지역정치는 훌륭한 나침판이자 조타수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