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나 가을이면 친구 B와 강원도를 찾는다. 양양 물치리 인근은 한적하고 숙박비가 저렴한 편이다. 시각예술가 B와는 오래된 사이이고 그와 함께일 때 나는 그의 마음처럼 너른 마음을 품곤 한다. 집이자 작업실인 공간에서, 부대끼는 서울에서 나는 자꾸 탈출을 소망하고 참을 만큼 참았다, 하는 때가 오면 B에게 연락해 강원도 갈 궁리를 시작한다.
서울의 인구가 퇴근을 마칠 무렵 가족 차를 빌려 막힘없는 강변북로를 달리는 거다. 올림픽대교를 건너 암사를 지날 쯤이면 탄성 치듯 쏟아지는 해방감을 느낀다. 깊은 밤 서울-양양간 고속도로를 지나는 차들은 대개 과속하지 않고 나도 서두를 것 없이 간다.
익숙한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나면 캠핑 의자를 들고 가까운 해변(물치해변 혹은 정암해변)으로 향한다. 자정이 넘은 해변에서 여행의 첫 순서를 보내는 것인데, 끊임없이 자신을 쓸고 지우는 파도를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의 붉은 염증들도 같이 씻겨 내린다. 지난 5월 다녀온 B와의 2박 3일 양양 여행을 떠올리며 만났던 자연의 친구들, 회복하는 마음, 다시금 얻는 용기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물치리엔 제비가 많다. 제비들은 사람 사는 곳곳에 지붕 밑, 주택 현관 위에도 집을 짓고 수시로 드나든다. 현관 위 제비 가족과 같이 한 철을 보내려면 문을 여닫을 때마다 적지 않은 불편을 감수해야 할 텐데 집주인은 괘념치 않는지 그대로 두는 것 같았다. 제비 부부는 교대로 사냥을 나가고 새끼들을 먹인다. 한 마리가 화려한 비행술로 사냥을 해내는 동안 한 마리는 어린 새끼들을 토닥이기도 하면서 지키고 보듬는다. 쉴 틈 없이 움직이는 것을 성실이라 표현하고 싶진 않지만 온 힘을 쏟는 제비 부부의 육추(알에서 깐 새끼를 키움) 과정을 보자면 숭고한 마음을 느끼고 뭉클해지곤 한다.
참새 부부는 건물의 부서진 틈을 집으로써 살고 있었고 딱새는 빨랫줄에 널린 옷가지 위에서 노닥거리고 있었다. 낮은 지붕들 위로 보이는 뒷산에선 모르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번갈아 연신 울려 퍼지고 있었다. 소요하기 좋은 정감 가는 물치마을이다.

도문동엔 젊은 사람들이 적잖이 찾아오고 있었는데 이곳에도 제비들이 많았고 떼를 지어 저공비행을 하기도 했다. 전신주 줄 위에서 참새 부부가 짝짓기하고 있었고 조금 옆에선 방울새가 위엄있게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담벼락엔 종종거리고 폴짝폴짝 뛰다가 날아가는 작은 새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습지에 개구리들이 힘껏 울고 있어 쌍안경을 꺼내 관찰을 시작했는데, 기척을 느꼈을지 개구리들은 울음을 그치고 어디론가로 숨어든 듯했다. 정오 햇살을 피하고 있는 양서류를 볼 수 있을까, 소나무 아래 캠핑 의자를 펴고 앉았다. 지나는 사람들이 뭘 보는지 물었는데 뭘 보진 못했고 습지에 귀한 생물이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행 전 친한 작가님 J와의 술자리에서 경포가시연습지 보호와 조성에 힘쓴 활동가님을 만난 적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과연 아름다운 곳이었다. 연두빛 녹음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결혼사진을 촬영하고 있었다. 검은머리흰죽지는 수면에 둥둥 떠서 경포호가 자신의 영역이라도 되는 듯 기품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가시연은 처음 알게 되었는데 빤히 보고 있자니 귀엽고 한편으론 매혹적이었다. 바람에 물결에 흔들거리는 가시연과 억새들을 바라보는 시간이 좋았다. 가시연 군락지를 돌아 외곽 길로 걸어가니 강릉녹색체험센터가 보이는 한적한 수로길이 펼쳐졌다. 강바람일지 해풍일지 혹은 둘이 만나는 것일지, 6월의 산뜻한 바람이 논밭과 나무들과 나를 훑어서 불고 있었다. 여름이 당도하기 전에 나를 어딘가에 널어놓고 한껏 말리고 싶어졌다.

저녁을 먹고 얼큰하게 취해서 밤 깊어진 정암해변 돌무더기에 앉았다. 언제까지 이 좋은 여행을 계속 다닐 수 있을까, B와 나는 여러 추억들과 마음 약해질 수 없는 세상살이와 여전히 캄캄하게만 보이는 미래를 얘기하고, 언젠가는 마을을 이뤄서 같이 병원 다니며 살자고 다시 한번 약속했다. 아무도 없는 김에 소리를 질러보고,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틀어 춤을 추고, 돌멩이 멀리 던지기 시합을 벌였다. 그리곤 다시 앉아 추위와 술기운을 못 이길 때까지 파도를 응시했다.

여행 마지막 날 물치천을 따라 걸었다. 조금 흐린 날이었고 바람이 불어 천천히 걷기 좋았다. 물치천 한쪽으로 데크길이 나 있었고 데크길 옆 얇은 띠녹지엔 해당화들이 피어 있었다. 낚시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고 키 큰 풀숲 사이로 들어가 대낚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린 딱새가 가지에 매달려 있다가 관목 속 무리로 돌아갔고, 무엇에 잘려 가지들을 잃은 오동나무들이 다시 생장하고 있었다. 사이사이로 천이 흐르는 돌다리를 건너 수풀이 무성한 길로 진입했을 때 나비도 나방도 아닌 날개 달린 곤충을 발견했다. 후에 알아보니 참밑들이라는 종이었는데 밑들이 종을 처음 알게 된 거였다. 전갈의 꼬리와 비슷한 배끝을 가진 참밑들이, 무시무시한 면모가 있을 것도 같은데 사랑스러운 이름이다.
길은 이내 우거진 수풀로 가려져 있었고 더 가지 않기로 했다. 관리를 하지 않은 사람의 출입을 막는 풀숲이 더 좋았다. 도로 돌다리를 건너 데크길로 걸었다. 앞에 보이는 다리를 기점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반대편 길은 차 한 대가 지날 수 있는 아스팔트 도로였고 몇 개 공장이 붙어 있었다. 저편으로 나 있는 샛길은 학교와 작은 마을로 이어져 있었다. 경고하듯 울어대는 전봇대 위 찌르레기를 보았고 활엽수 상층부에 있었을 휘파람새의 노래를 들었다. 휘파람새의 모습을 눈으론 찾지 못했지만 명금의 공연을 바로 밑에서 들을 수 있었다.

강원도에서 서울로 향하는 일요일엔 이른 아침이나 저녁 후에 출발하는 것이 운전하기에 수월하다. (애매할 때에 출발했다간 교통정체에 고통을 겪고 발목이나 정강이에 쥐가 날 수 있다) 눈에 띄게 해안침식이 일어나고 있는 속초해수욕장을 걷는 것을 끝으로 서울행 운전대를 잡았다.
짧은 여행은 절실해서 좋고 금방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어 좋다. 좁아진 차선에 바싹 붙어 다니는 차들을 먼저 보내면서 서울이란 화려하고 안타까운 도시로 진입했다. 사람들은 서울이 좋다면서 도시와 아파트가 좋다면서 왜 휴가나 주말이면 외곽으로 벗어나려 할까. 나는 서울이 싫다면서 서울은 지역 곳곳으로 분산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왜 수도권을 벗어나 살지 못할까.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사람에겐 마음 누일 자연이 필요하다. 흙길을 걷고, 사지 사이로 드나드는 바람을 맞이하고, 퍼덕거리는 새들의 날갯소리를 듣고, 고요히 물살을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도 땅 위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B를 내려주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면 창문을 열고 도시의 밤공기를 한껏 수용해 본다. 그리곤 괜히 목청을 가다듬고 진중한 맹수가 될 수 있을 것처럼 포효를 해본다. 밤이면 두려워하는 내일을 파도처럼 쓸고 닦아 윤을 내보겠다고, 당 떨어지는 오후엔 바람에 눕는 풀들처럼 공복을 다스리겠다고, 퇴근길이면 제비 가족과 살아가는 오래된 주택을 떠올리고 사람을 사랑하겠다고, 그림을 그릴 땐 자연의 나로서 돌아가 붓을 들겠다고.
작가님의 따뜻한 글에 위안을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