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 이야기가 담겨있는 〈창세가〉
세계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미미하였을 때, 세상 여기저기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천지창조(天地創造: the creation) 혹은 개벽(開闢: grand opening)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야기하였다. 그것이 한국문화 속에도 남아있다. 〈창세가(創世歌)〉가 그 하나다. 〈창세가〉는 함흥 지역의 무녀 김쌍돌이[金雙石伊]가 구연한 무속의 창세신화로 손진태가 1923년에 그것을 채록하여1 1930년에 《조선신가유편(朝鮮神歌遺篇)》에 소개하였다.2 이 노래의 가치를 박종성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창세가〉의 내용은 마이다르 보르항과 샥즈무니 보르항이 등장하는 몽골의 창세신화와 일본 류큐의 아마미 군도에서 전승되는 창세신화와도 내용상 공통유형에 속한다. 아울러 중·동부 유럽을 포함한 지역과 슬라브 민족들 사이에서도 이와 유사한 창세신화가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어 비교신화학적 관점에서 중요시되는 자료이다.”3
개벽 신화는 한국에만 있는 신화가 아니다. 그렇다고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보편성’을 가진 이야기이니 더 관심을 가져야 할 이야기다.
이 노래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하늘과 땅이 나뉘지 않은 상태였다가 하늘이 가마솥 뚜껑처럼 볼록하게 도드라지자 그 틈새에 미륵이 땅의 네 귀에 구리 기둥을 세워 천지가 분리되었다. 이 시절에는 해와 달이 둘씩 있었는데, 미륵이 해와 달을 하나씩 떼어 북두칠성과 남두칠성 그리고 큰 별, 작은 별들을 마련했다. 미륵은 칡넝쿨을 걷어 베를 짜서 칡 장삼을 해 입었다. 그런 연후에 물과 불의 근본을 알아내기 위하여 쥐의 말을 듣고 금덩산으로 들어가서 차돌과 시우쇠를 톡톡 쳐서 불을 만들어 내고, 소하산에 들어가서 샘을 찾아 물의 근본을 알아내었다. 미륵이 금쟁반·은쟁반을 양손에 들고 하늘에 축수하여 하늘로부터 금벌레·은벌레를 다섯 마리씩 받아, 각각 남자와 여자로 변하여 다섯 쌍의 부부가 생겨나 인류가 번성하게 되었다. 미륵이 인간 세상을 다스리고 있을 때에 석가가 등장하여 미륵에게 인간 세상을 내놓으라 했다. 미륵은 석가의 도전을 받고 인세 차지 경쟁을 하게 되었다. 미륵이 계속 승리하자 석가는 잠을 자면서 무릎에 꽃을 피우는 내기를 제안하고, 미륵이 잠든 사이에 미륵이 피운 꽃을 가져다 자기 무릎에 꽂아 부당하게 승리한다. 미륵은 석가에게 인간 세상을 내어주고 사라진다. 석가의 부당한 승리로 말미암아 인간 세상에는 부정한 것들이 생겨나게 되었다.”4
이 이야기를 이루는 주제들 즉 신화소(神話素)는 대략 다음의 네 가지라 할 수 있다.5 (1) 세상이 열림, (2) 사람이 생김, (3) 해와 달이 자리잡음, (4) 자리 싸움이 세상의 모습을 정함. ‘(1)’에 세상이 열림은 보이지만 천지창조는 보이지 않는다. 창조주가 없는 것이다. 새 세계가 어떻게 열리게 되었는지를 관찰 보고하고 있는 듯할 뿐이다. 〈창세가〉는 무(無)→유(有)의 천지창조(天地創造)[the creation]가 아닌 개벽(開闢:grand opening) 즉 새로운 세계의 열림을 이야기하고 있다. ‘(2)’에는 사람이 처음 생겨나는 과정 그리고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의 직접적 조상에 해당할만한 사람의 활동상이 들어있다. ‘(3)’에는 두 개의 해와 두 개의 달은 하나로 만드는 이야기가 들어있다. 해와 달은 살림살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라, 두 개씩 있는 것은 생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그렇다면 ‘(3)’은 오랜 역사 속에서 생태 위기는 여러 차례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는 단서라고 할 수도 있겠다. ‘(4)’는 대단히 간접적으로 그러나 강력하게 도덕적 삶을 이야기 향유자들에게 권하는 신화소라고 할 수 있겠다.

사진출처 : Carl Tronders
한국문화의 역사 속에서 ‘(1)을 확실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창세가〉다. 그런데 이 이야기도 제목 그대로 창세라기보다 개벽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 여기에서 개(開)와 벽(闢)은 모두 연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벽은 물리친다·떼어낸다 등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이 두 글자의 합은 ‘세상을 처음으로 여는’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무(無)→유(有) 즉 없던 것이 있게 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개벽은 굳은 땅에 쟁기를 박아 땅을 갈아엎어서 흙을 뒤섞는 행위 또는 오랫동안 드리워진 두터운 장막을 걷어버리거나 찢어버리는 행위를 연상시킨다. 밭갈이나 장막 걷기는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든 할 수 있다.
도덕적 삶을 권하는 〈천지왕본풀이〉
함흥의 〈창세가〉에서 ‘(1) 세상이 열림’에 해당하는 부분만 뺀 것 같은 이야기가 제주의 〈천지왕본풀이〉다. 이 본풀이는 “제주도 굿에서 해와 달을 정리하고 이승법과 저승법을 마련한 대별왕·소별왕 형제의 내력을 풀이할 때 구연하는 서사무가”6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이 본풀이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정리한다.
“여러 개의 해와 달을 화살을 쏘아 떨어뜨려 하나씩만 남겨 일월을 정리한 이야기, 꽃을 바꿔치기하는 부정한 방법으로 내기에서 이긴 자가 이승을 차지하는 바람에 이승법이 저승과 달리 맑지 못하고 혼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 세상의 질서가 어떻게 성립된 것인지를 보여 준다.”7
제주도의 여러 심방(무당]들이 이 본풀이를 조금씩 다르게 노래하였고 서로 다른 연구자들이 이들 가운데 일부를 채록하였는데 그 채록들 가운데 현용준의 채록본(採錄本)을 중심으로 하여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천지가 개벽하고 만물과 별과 해와 달이 생겨났을 때의 일이다. 해도 둘, 달도 둘인지라 인간 백성들은 낮에는 뜨거워서 죽고 밤에는 추워서 죽을 지경이었다. 천지왕은 지상에 내려와 총멩부인과 인연을 맺었다. 다음날 천지왕은 총멩부인으로부터 사람들을 괴롭히는 수명장자가 있음을 알게 된다. 천지왕은 수명장자를 징계하여 다스린 다음 하늘로 올라갔다. 총멩부인은 아들 둘을 낳아, 형의 이름을 대별왕, 아우의 이름을 소별왕이라 지었다. 형제는 자라나 아버지를 찾아가려고 천지왕이 남기고 간 박씨를 심었다. 박씨에서 싹이 나서 그 줄기가 하늘로 뻗어 가니, 형제는 그 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1,000근 활 100근 화살로 해와 달을 각각 하나씩 쏘아 떨어뜨려 일월을 정리했다. 형제는 이승과 저승을 각기 차지하여 질서를 마련하고자 했다. 그러나 서로 이승을 차지하고 싶었기 때문에, 형제는 누가 이승을 차지할 것인가를 두고 서로 내기했다. 형제는 여러 가지 문답으로 지혜를 겨루다가, 결국에는 꽃씨를 심어 어떤 꽃씨에서 꽃이 피는가를 보고 승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대별왕이 심은 꽃씨는 꽃이 번성하여 ‘번성꽃’이 되고, 소별왕이 심은 꽃씨에서 피어난 꽃은 시들시들 ‘검뉴울꽃’이 되니, 소별왕은 형 대별왕이 잠든 사이에 자신의 꽃과 대별왕의 꽃을 바꿔치기했다. 이렇게 해서 속임수로 내기에서 이긴 소별왕이 이승을, 대별왕이 저승을 차지하게 되었으니, 저승법은 맑고 청랑한 데 반해 이승법은 그렇지 않아 살인 · 역적 · 도둑 · 간음(姦淫) 등이 일어나게 되었다.”8
천지왕·총멩부인·수명장자·소별왕·대별왕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고 이승에서 벌어지는 살인·역적·도둑·간음 등에 관한 설명도 나온다. 이는 이야기 발생 시기에 윤리 도덕이 생성되기 시작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노래의 제목은 〈천지왕본풀이〉건만, 소별과 대별이 각각 이승과 저승의 왕이 되는 과정이 이야기의 주요 내용인 듯 보인다. 소별과 대별의 이야기는 따로 분리되어 어린이들의 읽을거리로 편집되어 유통되는 등 꽤 오랜 시간 동안 한국 내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이런 면을 고려한다면 이는 좀더 세부적으로 살펴 볼 가치가 있는 이야기이다. 신동흔은 〈창세가〉와 〈천지왕본풀이〉를 분해 결합하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었다.9 이렇게 만들어진 이야기 가운데에서 소별과 대별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간추려 보았다.
“천지왕은 자신의 두 아들에게 새로운 과제를 부여했다. 각기 이승과 저승을 맡아서 법도를 세우라는 크나큰 과업이었다. …… 천지왕은 대별과 소별에게 은대야에 심은 꽃나무를 내어주고서 꽃을 훌륭히 피운 사람이 이승을 맡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저승을 맡으라 했다. …… 소별의 꽃나무가 시들시들 맥이 없는 데 비해 대별의 꽃나무에는 생기가 흘러넘쳤다. 바야흐로 꽃이 피어나 승부가 판가름나는 순간, 갑자기 승부는 뒤집어지고 말았다. 시들하던 소별의 꽃나무에 원색의 아름다운 꽃이 피어났는데 대별의 꽃은 제대로 피지도 못한 채 누렇게 색이 바래고 말았다. 자랑스레 미소를 지으면서 이승은 자신의 차지라고 말하는 소별. 그 순간 대별은 간밤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직감했다. “꽃을 바꿔치기 했구나. 신성한 시합을 이렇게 짓밟다니!” 그러나 소별은 막무가내였다. 자신이 승리했으니 이승을 넘기고 어서 저승으로 건너가라는 것이다. “오냐. 정히 그렇다면 가마. 이제 이 세상에 새로운 죄악이 퍼질 터이니 걱정이구나. 부디 자애로써 세상을 돌보거라.” …… 대별이 저승세계로 향하자, 소별은 …… 수명장자의 집으로 치달았다. …… 그리고 병사들로 하여금 수명장자를 능지처참하여 살과 뼈를 허공에 뿌리게 했다. 그렇게 뿌려진 수명장자의 살과 뼈는 수백 수천 마리씩 파리와 모기가 되고 빈대와 벼룩 따위가 되어 세상에 흩어졌다. 지금껏 사람들을 괴롭히는 해충들의 탄생이었다. 소별왕은 위계를 엄격히 세우고 선악을 분별하여 죄를 지은 자를 무서운 형벌로 다스렸다. 세상에는 점차 법도가 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눈을 피해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이 끊이지 않았으니 이전보다 얼마나 더 좋아진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 저승에 당도한 대별은 …… 인간의 영혼이 머물 곳을 극락과 지옥으로 분별하여 이승의 삶에 대한 응보를 받게 하였다. 이승에서 선량하게 살면서도 고초를 겪은 영혼들은 극락에서 안식과 평화를 누리게 하고, 악행을 저지르면서 부귀를 누린 자는 지옥에서 그 죗값을 치르게 하였다. 한번 지옥에 든 영혼도 죗값을 치르면 극락에 갈 수 있는 법을 마련했다. 언젠가부터 그는 대별왕으로 불리고 있었다.”10
위와 같은 소별과 대별 이야기는 읽는 사람들에게 도덕적 삶을 권한다. 많은 신화들이 그러하지만, 소별과 대별 이야기는 그 중에서도 도덕적 삶을 권하는 성격이 강한 편인 듯하다. 이것은 중요하다. 신화가 힘 쎈 사람이 최고라는 것만 강조하면 그 신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사회상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교한 천지창조 이야기가 결여되어 있다고는 해도, 도덕적 삶을 권하는 신화가 그것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부여한다.
법술세(法術勢) 혹은 인과응보(因果應報)로 구분짓기
소별과 대별 이야기의 성격은 앞서 보았던 〈창세가〉를 이루는 신화소(神話素)로 열거한 것들 가운데 하나인 ‘(4) 자리 싸움이 세상의 모습을 정함’에 부합된다 할 수 있다. 이런 성격의 신화소를 ‘인세(人世) 차지 경쟁’11으로 설명한 경우도 있다. 소별과 대별은 서로 이승[인간세상]의 왕이 되고자 한 듯하니 이들의 이야기를 ‘인세(人世) 차지 경쟁’이라고 설명할만하다. 경쟁 과정에서 소별은 꽃을 바꿔치기해서 이긴다. 술책(術策)[術]을 사용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승의 왕이 되자마자 소별왕은 수명장자를 강력하게 징벌한다. 요약 때문에 빠졌지만 수명장자에게 쳐들어갈 때 이승 사람들과 함께 몰려갔다. 세력(勢力)[勢]에 올라타서 그 힘[力]을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패배한 수명장자는 파리·모기·빈대·벼룩이 되어 또 다른 세(勢)를 형성하여 위협적인 힘[力]으로 남았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소별왕은 위계를 엄격히 세우고 선악을 분별하여 죄를 지은 자를 무서운 형벌로 다스렸다. 세상에는 점차 법도가 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눈을 피해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이 끊이지 않았으니 이전보다 얼마나 더 좋아진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사진출처 : Manoj kumar kasirajan
소별왕은 이승에서 법(法)을 세우고 엄격히 집행한 것이다. 그와 같은 정치는 힘[力]을 사용하였기에 가능하였을 것이다. 법에 승복한 것이 아니라 힘에 굴복한 사람들은 편법(便法)으로 대응하였다. 이러한 소별왕 이승 통치 작동방식은 법·술·세-연쇄-상호작동이라 할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소별왕이 악하거나 사리사욕에 사로잡혀있다고 강조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그가 시행하는 법 자체가 술과 세의 밑받침 없이는 작동할 수 없는 것처럼 서술하였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법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법치(法治)]는 항상 술·세와의 연쇄-상호작용을 경계해야함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개 현실 세계에서는 법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현실 세계는 법·술·세-연쇄-상호작동 세계이다. 이런 현실 세계에서 술·세를 경계하지 않는다면 법과 세계는 술·세에 휘둘리게 될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 저승에 당도한 대별은 “인간의 영혼이 머물 곳을 극락과 지옥으로 분별하여 이승의 삶에 대한 응보를 받게 하였다.” 그리고 “한번 지옥에 든 영혼도 죗값을 치르면 극락에 갈 수 있는 법을 마련했다.” 저승이라는 세계가 이승과 연결되면서 인과응보에 의하여 돌아가도록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 속 소별왕과 대별왕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구분짓기[별(別)]를 한다. 소별왕의 구분짓기는 술·세와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는 가운데 행하여져야 한다. 그것은 술·세와 무관할 수 없는 동시에, 술·세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대별왕의 구분짓기는 인과응보라는 일종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다. 둘 다 쉽지는 않아 보인다. 대별왕의 구분짓기는 〈천지왕본풀이〉가 도덕적 삶을 권하는 이야기라는 해석의 강력한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야기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이미 누구도 인과응보를 피할 수 없으니 똑바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여줄 듯하다. 이런 면에서 인과응보를 전제로 한 대별왕의 구분짓기는 〈천지왕본풀이〉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되도록 만드는 주요 요소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하여 술·세와 연쇄-상호작동하는 법을 기준으로 한 대별왕의 구분짓기는 그리 부각되지 않은 감이 있다. 앞으로는 여기에도 주목하는 것이 공익적일 듯하다. 세상살이는 계속 법을 기준으로 구분짓기를 하며 작동할 것 같다. 그런 세상살이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그 세상살이가 법·술·세-연쇄-상호작동과 다름없다는 것을 알고 술·세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심신의 건강을 유지할 것이다. 인과응보가 강력하긴 하지만, 그것만 믿고 사는 삶은 위험할 수 있다.
이때 손진태는 김쌍돌이가 구연한 노래에 〈창세가〉라는 이름을 만들어 붙인 듯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창세가’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집필: 박종성] 참조 ↩
[네이버 지식백과] ‘창세가’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집필: 박종성] ↩
[네이버 지식백과] ‘창세가’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집필: 박종성] ↩
[네이버 지식백과] ‘창세가’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집필: 박종성] ↩
[네이버 지식백과] ‘창세신화’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참조 ↩
[네이버 지식백과] ‘천지왕본풀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네이버 지식백과] ‘천지왕본풀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네이버 지식백과] ‘천지왕본풀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네이버 지식백과] ‘창세신화(창세가, 천지왕본풀이)’ (문화원형백과 새롭게 펼쳐지는 신화의 나라, 2004.,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이 요약과 같은 요약이 다음 자료에도 들어있다; 신동흔, 〈세상이 처음 열리다〉, 《살아있는 우리신화》, 한겨레출판(주), 2004, 15~34쪽. ↩
[네이버 지식백과] ‘창세신화(창세가, 천지왕본풀이)’ (문화원형백과 새롭게 펼쳐지는 신화의 나라, 2004.,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이 요약과 같은 요약이 다음 자료에도 들어있다; 신동흔, 〈세상이 처음 열리다〉, 《살아있는 우리신화》, 한겨레출판(주), 2004, 15~34쪽. ↩
[네이버 지식백과] ‘창세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