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저작 『돌봄의 공간들』 출간


-모시는사람들 · 2025년 03월 05일 발간

-기획: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
-저자(글): 권범철 , 김성훈 , 김자경 , 김현미 , 박서현 , 손수경 , 송재홍 , 이준용 , 조아현 , 한경애


책 소개

돌봄을 가정·병원·복지 제도의 보조적 기능으로 다루지 않고, 사회를 구성하고 관계를 다시 짓는 근본 원리로 사유하면서, 관계·정동·공간 속에서 사회를 새롭게 조직하는 실천적 힘으로 재정의한 책이다. 코로나19 이후 돌봄이 삶의 핵심 조건으로 부상했지만, 여전히 돌봄은 희생·헌신·부담의 언어로 환원되기 쉽다. 『돌봄의 공간들』은 이러한 관성을 넘어서, 돌봄이 어디에서 어떻게 가능해지는지, 그리고 돌봄을 통해 어떤 사회가 열릴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 책은 돌봄의 작동 조건을 입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정동노동과 커먼즈, 가족을 넘어선 생활 공동체, 돌봄 기반의 도시계획, 제도화된 돌봄의 균열, 먹거리와 문화, 사회운동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공간들을 병렬적으로 배치한다. 각 장은 돌봄을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실천이자 공통의 힘으로 재정의한다. 특히 이 책은 제도 소개나 비판에 머물지 않고, 이미 현장에서 작동하고 있는 돌봄의 가능성을 포착한다. 여기서 돌봄은 시혜가 아니라 존중이며, 관리가 아니라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이다. 이론과 현장을 균형 있게 엮은 집단 저작 『돌봄의 공간들』은 돌봄을 하나의 해답으로 제시하기보다 독자에게 질문을 남긴다. 나는 어떤 공간에서, 누구와, 어떤 돌봄을 시작할 수 있는가? 이 책은 돌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으로 사회를 다시 보게 만드는 책이다.

출판사 서평

돌봄의 목소리 높아지는 곳에, 위태롭게 걸쳐진 돌봄 현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돌봄은 단지 개인적·가족적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구조적 과제로 드러나고 있다. 급속한 인구 고령화와 노동시장 구조 변화 속에서 돌봄의 수요는 가중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제도·사회적 인식·경제적 여건은 충분하지 않다. 돌봄 인력 부족과 비용 부담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보육과 노인 돌봄 인력의 부족은 향후 몇 년간 더욱 악화될 것으로 전망되며, 2042년까지 약 155만 명의 돌봄 인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이 보고서는 가구 소득에서 돌봄 비용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가족 구성원이 돌봄을 떠맡는 현실은 여성의 경력 단절과 경제적 부담을 야기한다고 지적한다. 또 서울시가 시범 추진했던 외국인 가사·돌봄 노동자 프로그램은 도입 초기의 기대와 달리 비용 문제, 법적·관리 구조의 한계로 제도화가 불투명해지는 등 돌봄 정책이 현실의 복잡한 조건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도 드러냈다. 이러한 사례들은 돌봄이 단순한 가족 책임을 넘어 경제·노동·인권의 교차점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돌봄의 공간들』은 이러한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다. 돌봄을 단지 누가 할 것인가,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의 정책적·가족적 질문으로만 제한하지 않고 사회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는가를 가늠하는 핵심적인 구성 원리로 문제화한다. 이 책의 근본적 관점은 돌봄이 복지나 제도의 부속물이 아니라, 노동·가족·도시·문화·정치 전반을 재구성하는 축이라는 데 있다. 돌봄은 그래서 사회적 재생산의 중심에 위치해야 하며,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지를 묻는 근본적 질문의 장으로 자리한다.

『돌봄의 공간들』이 도달한 ‘질문들’의 출발점
이 책의 첫 번째 강점은 돌봄을 ‘주제’가 아니라 사회 구성의 근본 원리로 사유했다는 점이다. 기존의 논의는 돌봄 노동을 분담 문제로 환원하거나, 정책 급여의 확대 정도로만 문제 삼았다. 그러나 『돌봄의 공간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돌봄을 통해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을 전면에 세운다. 돌봄은 더 이상 배려의 영역이 아니라, 삶의 조건과 관계망을 조직하는 사유의 축으로 기능해야 함을 강조한다.

두 번째로, 돌봄 논의의 축을 ‘시간’에서 ‘공간’으로 확장했다. 전작 『돌봄의 시간들』이 돌봄의 과정과 경험, 기억의 서사를 중심으로 삼았다면, 이번 책은 돌봄이 어디에서, 어떤 조건에서 가능해지는지를 질문한다. 돌봄은 추상적 가치가 아니라, 공간적 배치·관계망·제도적 틈새 속에서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실천이라는 관점이 핵심이다. 이러한 공간 중심의 접근은 돌봄을 사회적 조건과 연결시키는 데 있어서 기존 학술서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분석 지형을 제공한다.

세 번째로, 매우 이질적인 사례들을 단순 병렬이 아니라 ‘공명’의 방식으로 엮은 구성력을 보여준다. 생협, 특수학교, 선수행센터, 힙합씬, 아동양육시설, 도시계획, 미투 운동 등 다양한 현장이 등장하지만, 각 장은 돌봄의 작동 조건-정동, 관계, 권리, 존중, 자유-이라는 공통 질문을 공유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사례들이 내적 논리로 연결되면서, 독자는 각 장을 개별적으로 읽으면서도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사유 흐름을 경험하게 된다. 이 구성 전략은 단지 여러 현상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의 조건을 해석적 지형도로 펼쳐 보이는 힘으로 작동한다.

네 번째로, 제도 비판에 머물지 않고 ‘제도 이후’를 상상한다. 초등돌봄교실의 시간제 노동 구조, 가족 중심의 돌봄 부담, 시장화된 돌봄 서비스의 위계와 분절 같은 제도적 한계를 날카롭게 분석하는 동시에, 그러한 균열 속에서 이미 작동하고 있는 대안적 돌봄 실천을 포착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상적 제도 설계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실천이 어떤 조건에서 지속 가능한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 점은 이 책이 단순 정책 제안서가 아니라 인문·사회과학적 성찰의 길을 제시한 저작으로 자리매김하는 이유다.

다섯 번째로, 돌봄을 보호의 도덕이나 시혜의 언어에서 해방시킨다. 힙합씬의 ‘리스펙트’, 공동육아 커먼즈에서의 자유로운 실천, 미투 운동의 상호 연대는 돌봄이 표현과 갈등, 위험을 포함한 적극적 관계 기술임을 드러낸다. 돌봄은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세계 속에서 존재할 수 있게 만드는 조건이다. 이러한 재정의는 돌봄을 시혜나 희생의 관점으로만 바라보려는 오래된 프레임을 극복하는 중요한 전환이다.

여섯 번째로, 이 책은 학술성과 현장성이 균형을 이루는 집단 저작이다. 각 저자는 자신이 책임진 주제와 사례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구현한다. 그럼에도 전체 기획의 문제의식에서 벗어나지 않고, 이론적 엄밀함과 생생한 사례 서술이 조화를 이룬다. 이는 돌봄을 주제로 한 많은 기존 연구서들이 갖기 어려웠던 장점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중요한 미덕은 독자에게 결정적 해답을 던져주는 대신 질문을 남긴다는 점이다. 나는 어떤 공간에서 돌봄을 경험하고 있는가? 내가 속한 공동체는 어떤 돌봄을 가능하게 하고, 어떤 돌봄을 배제하고 있는가? 돌봄을 통해 우리는 어떤 사회를 유지하고 있으며, 어떤 사회를 새로 만들고 싶은가? … 『돌봄의 공간들』은 돌봄을 말하는 책이 아니라, 돌봄으로 현실을 다시 읽고, 미래를 사유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러한 성취는 오늘의 우리 사회가 돌봄을 어떻게 재정의하고 구조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고도 확장된 통찰을 제공한다.

책 속으로

[49쪽] 서로돌봄의 기관들, 공간들에서 이루어지는 돌봄의 경험이 자기 변화의 토대가 되는 것은 이러한 돌봄이 곧 함께 사유하고 행동하는 ‘우리’ 신체 활력의 공통적 증가를 위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활동은 소유 개인주의에 입각하여 ‘내’ 신체 활력의 증가만을 위해 상호작용하고 의사소통하는 것과는 다르다. 돌봄에 대한 이러한 경험, 즉 다른 삶이 존재한다는 구체적 현실에서의 경험이 오늘날 우리 정동노동자의 자기돌봄과 변화, 치유를 위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81쪽] 집 안에서 자연화된 역할을 맡는 여성, 제도화된 일자리 자체가 부족한 예술가, 일할 능력이 없다고 간주되는 장애인, 저발전된 지역 주민,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는 무수한 노동자들까지 임금노동으로부터의 배제는 점점 일반적인 조건이 되고 있다. 이는 임금노동의 강제를 핵심적인 조직 원리로 삼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우리의 삶과 재생산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러한 변화에 수동적으로 휩쓸려 가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실천으로 제시하는 답변을 우리는 ‘이미’ 배제된 이들로부터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141쪽] ‘돌봄의 경험을 가족과 집 이외의 다른 공간에 위치 지을 수 있는 사회적 상상력이 결핍된 사회’에서 아동양육시설의 구성원들은 계속 부끄러움을 느껴 왔다. 사회와 가정의 굳건한 이분법이 때로 이들이 온정과 동정을 받을 수 있게 했으나, 이제는 동정이 아닌 받아들임이 필요하다. (중략) 돌봄은 대상자에게 수용될 때 돌봄으로서 완성되며, 돌봄 관계로서 성립된다. 시설 아이들이 자신을 향한 염려와 돌봄을 수용할 수 있도록, 돌봄의 완성을 위해서라도 아동양육시설과 그 생활인에 대한 인식 개선은 중요하다. 동정이 아닌, 응원을 건넬 차례이다.

[196쪽] 자기돌봄은 단지 나를 위한 실천이 아니라, 세계의 실을 다시 엮어내는 느리지만 확실한 감각의 기술이었다. 자기돌봄은 이제 전문가의 처방이나 제도의 관리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그것은 각자의 속도와 마음의 공간에 따라 구성되는 작은 책임이며,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기다리는 느린 훈련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그런 훈련이, 작은 윤리의 공동체들을 새롭게 재조립해 나갈 수 있는 실마리가 되어 줄 것이다.

[226쪽] 먹거리 돌봄은 공동체 돌봄의 성격이 있으며, 국가 복지를 먹거리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과 다르다. (중략) 분명한 것은 먹거리 돌봄이, 지역에서 먹거리 돌봄이 필요한 주민은 누구인지, 이러한 돌봄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은 무엇인지 등을 포함한 지역에 관한 관심과 사랑이 없다면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지역에 관한 관심과 사랑이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먹거리 돌봄은 세계 식량 체계하에서 일반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상품으로서 먹거리를 이해하는 것과는 분명히 구분된다.

[268쪽] 돌봄에 있어 표현의 기술이 지니는 중요성은 그저 심리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이는 사회적 관계의 생산이라는 인격적 상호 구성의 역동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 강지연(2024)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어 가는 이를 돌보는 실천과 관계를 생성하는 실천의 연관을 분석하며, 돌봄이 단지 연민이나 시혜처럼 수직적 차원이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 생성의 차원에서 작동할 수 있고, 그것이 생산하는 사회성의 도덕적 힘을 강조한 바 있다. 병동 안에서 일어나는 돌봄의 언어적·신체적 표현은 ‘죽음’이라는 사소하고도 덧없는, 그러므로 아주 솔직하고 진실한 사건에 개입된 참여자들 각자의 자기돌봄을 돕는 방식으로 병원을 넘어서는 사회적 그물망을 조직한다.

[335쪽]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떻게 돌보느냐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 돌봄을 통해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의 문제다. 이 후자의 관점에서 이 책을 읽는다면, 다양한 저자들의 다양한 주제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 잘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돌봄의 공간들은, 돌봄이 (복합위기를 체계적으로 생산하는) 현재의 문제적인 사회를 지탱하는 고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 구성의 기초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자한다는 점에서 서로 만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각 장(章)들의 차이가 그 가능성을 더욱 풍부하고 강하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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