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한 몸] ⑫ 사이버 러브

눈앞에 언니가 누워있지만, 언니와 대화를 나눌 수 없다. 종종 언니가 움직이지만, 언니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럴 때마다, 핸드폰에 기록된 언니와의 대화를 다시 읽고, 메시지를 보내본다. 어떤 방식으로든 사랑을 전하고 싶어서.

언니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 내 마음 같지 않은 하루를 보낸 어느 날 밤. 어김없이 그리움이 밀려온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 속사정을 털고 싶다. 하지만 그는 전화받을 수도, 말할 수도 없다.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무슨 말을 해줬을까? 어떻게 생각했을까?’

언니처럼 단단한 사람이 되길 연습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언니가 잠들기 전에 그랬듯 큰 베개를 끌어안는다. 그럴수록 마음이 공허해진다. 적막을 느끼며 가만히 눈을 감는다.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이 우울함을 떨쳐내야만 한다. 차라리 딴 데다 정신을 팔고 싶어 쇼츠를 켠다. 무표정한 얼굴로 의미 없이 스크롤을 내린다.

휴대폰 액정을 만지던 손가락이 멈춘다. 고양이가 하품하는 영상에서 머뭇거린다. 분명 언니가 보면 좋아서 못 견딜 만한 장면이다. 그가 내게 보내줬던 영상과 결이 비슷하다. 버릇처럼 언니에게 영상을 전송한다.

말을 건넨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답을 받고 싶어서 그와의 채팅창에 접속한다. 그에게 보냈던 문자와 음성 메시지, 영상이 잔뜩 쌓여있다. 엄지손가락을 빠르게 굽혔다가 펴며 채팅창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제야 보이는 그의 답장. 그 시절 우리의 소통 내용을 염탐한다. 앞날을 알지 못한 채 마냥 즐거운 두 사람이 그곳에 있다.

사고 이후 온라인에서 언니와 대화를 나눈 적 있다. 나는 “언니야, 보고 싶어. 사랑해”라고 보냈고, 그도 “사랑해 영원히”라고 말했다.

엄마가 대신 답해줬다는 걸 안다. 엄마가 자판을 치며 울었으리라는 것도 안다. 그래, 다 알고 있다. 그렇지만 끝까지 모르는 척 언니가 내게 답장해 줬다고 믿는다.

몇 번이고 물었다. 내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하는 게 확실하냐고. 언니가 보이는 반응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진출처 : Gemini AI

잊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의 그가 가물가물해지기 때문이다. 언니가 누워 지낸 지 3년이 흘렀다. 어느덧 목소리, 표정, 행동 모든 것이 어렴풋하다. 언제나 생생할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돼버렸다. 이 상황에서만큼은 시간이 만병통치약이란 말은 틀렸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은 독약이 되어 언니에 대한 기억을 앗아간다.

그의 존재를 실감하고 싶어서 자꾸만 온라인 세계를 배회한다.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저 너머에서 그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다. 착각은 너무도 달콤하기에 이리도 지독한 사이버 러브를 멈출 수가 없다.

예전의 언니를 찾을 때면 죄를 짓는 기분이다. 현실의 언니를 인정하지 않는 행동 같아서다. 그는 분명 아직 내 곁에서 살아가고 있다. 햇빛이 드는 창가를 향해 잎이 기울어지듯, 언니도 주변 공기 흐름과 기척을 따라 몸을 움직인다. 언니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들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거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눈앞의 언니에게 말을 건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그의 눈이 커진다. 때로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며 내 말소리와 호흡을 맞춘다.

의사에게 몇 번이고 물었다. 언니가 내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하는 게 확실하냐고. 그는 언니가 보이는 반응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확언했다.

나는 왠지 언니가 온 힘을 다해 맞장구쳐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잘 듣고 있다는 마음을 어떻게든 내게 전하려는 듯하다. ‘정상적인’ 몸, 그러니까 ‘모든 것이 제대로 작동하는’ 몸의 움직임에만 익숙해서 내가 언니의 언어를 해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니의 언어가 어떠한 과학적인 정보로는 감지되지 못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 괴리는 나를 과거의 언니가 있는 사이버 세계로 다시 이끈다. 그의 흔적을 쫓으며, 울고 웃고, 그리워하고 추억하며 몇 번이고 언니를 기억해 낸다.

언니가 있는 두 세계를 오간다. 흩어진 그의 조각을 모은다. 언니를 기억하는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한, 그도 이 세계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 사이버와 현실 세계 사이를 넘나들어 언니를 영원히 이곳으로 소환하는 사람. 나는 오늘도 그 어드메에 서서, 언니만의 영매가 된다.

솔빈

그 순간, 녹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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