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한 몸] ⑪ 사랑만으론 영원히 돌볼 수 없어서

나는 언니의 몸을 돌본다. 그의 몸에 몰입하고, 그를 돌보며 희열과 공포를 동시에 느낀다. 어쩔 땐 그의 몸에 갇혀 살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혼자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나를 버리고 싶지는 않으므로. 혼자가 아닌 함께, 돌보는 사회를 바라본다.

혼자서 언니를 돌볼 때, 나는 그의 몸에 갇힌다. ‘나’이길 잠시 내려놓고, 언니 몸의 연장선에 서 있는 존재라고 여긴다. 경관식 밥과 약을 정시에 챙겨 그의 뱃줄을 따라 흘려보낸다. 면봉에 식염수를 묻혀 콧속을 닦아낸다. 짓무를세라 기저귀를 자주 확인한다. 기관절개관과 위루관을 연결하느라 생긴 목과 배의 구멍을 소독한다. 어느새 그의 몸에 완전히 이입된다. 지금 어느 신체 부위가 불편한지, 더운지 추운지, 마음이 평화로운지 요동치는지. 그의 살갗을 더듬으며 구분해 낸다.

언니 몸에 내 모든 신경이 쏠리면 어쩐지 황홀해진다. 정지된 몸을 돕는다는 희열. 아픈 몸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끈다는 도취. 나의 노력 덕분에 그가 안정되고 있다는 극락. 언니 몸에게는 내 몸이 꼭 필요할 것이란 건방진 생각에까지 이른다. 나를 치켜세운다. 중독된 것처럼 강박적으로 그의 몸을 관찰하고, 냄새 맡고, 만지고, 변화를 기록한다. 오로지 언니와 나, 의료 물품만이 존재하는 세상에 한껏 몰입한다.

평생 그의 몸에 갇혀 살고 싶어진다. 언니가 편안할 수 있도록 영혼을 바치자고 다짐한다. 언젠가 그가 노래를 들려준 적이 있다. 윤지영의 노래 ‘언젠가 너와 나’였다. “언젠가 너와 나 중에 누굴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너를 고르고 멀리 떠날 것”이란 내용이다. 함께 노래를 들을 때 언니가 말했다. 만약 이 노래처럼 둘 중 하나가 떠나야 한다면 당신은 나를 살리고 멀리 떠나겠다고. 내게 목숨을 내주겠다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언니를 돌보는 행위가 나를 버려야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기꺼이 그러겠노라. 반드시 그의 안위를 가장 먼저 선택하겠노라.

갑자기 언니 몸이 달라진다. 열이 오르면서 온몸에 강한 힘이 들어가고, 용변을 보는 횟수가 잦아진다. 서둘러 호르몬 약을 조절해 본다. 윗옷을 벗기고 찬물을 묻힌 천으로 몸을 닦아낸다. 냉동고에 올려둔 얼음팩을 꺼내 그의 등과 겨드랑이에 받친다. 그럼에도 통제가 안 되자 가빠진 내 심장 소리가 귀에서 울린다. 식은땀이 등의 움푹 팬 길을 타고 내려온다. ‘천천히 하자. 똑바로 하자. 잠시 기다려 보자.’ 담담한 척하며 가까스로 정신을 부여잡는다.

그러나 격랑에 휩싸인 감정을 버텨낼 수가 없다. 내가 잘못한 것만 같다.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언니 몸이 달라진 게 틀림없다. 자책하고 비하하다가 이내 정신이 피폐해진다. 본 적도 없는 심해의 까마득함이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진다. 돌본다는 건 그의 아픈 몸에게 쩔쩔매는 것, 제발 진정해달라고 싹싹 비는 것이다.

언니가 천천히 눈을 끔뻑인다. 잠든 그의 모습을 확인하자, 이제야 숨통이 트인다. 탈진한 듯 쓰러져 누워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문득 언니 몸을 평생 감당할 자신이 없어진다. 가족마저도 겁을 내는 버거운 그 몸을 온전히 책임지는 그가 가엽다. 언니가 자는 건 안중에도 없이 큰 울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그의 볼에 내 볼을 맞댄다. 그가 내뱉는 숨의 향기를 맡으며 나를 달랜다. 언니는 여전히 동생을 보살피고 있다.

가족은 누구보다 예민하게 환자의 상태를 확인한다. 그 민감함은 때로 공포가 된다. 위급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신을 탓하기 바쁘다. 사랑하는 사람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눈앞에 두고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는 건 불가능하다. 건강한 돌봄은 정성만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 한 사람의 헌신이 고갈되기 전에 다른 손길이 더해져야 하는 이유다.

홀로 언니를 돌본 지 며칠이 지났다. 월요일을 맞아 이른 아침부터 돌봄 선생님이 방문했다. 그는 침상 환자를 보조한 지 10년이 다 돼 가는 베테랑이다. 선생님을 만나자, 마음의 짐이 덜어진다. 그에게 언니 몸 상태를 미주알고주알 설명한다. 선생님은 다 괜찮다는 듯 가만히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그에게 언니를 맡긴 뒤 비로소 내 몸 구석구석을 씻는다. 곧바로 깊은 잠에 빠진다. 언니에겐 미안하지만, 아픈 몸으로부터 벗어나는 해방감을 만끽한다.

누구도 돌봄 앞에서 자신을 버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또 하루를 버텨낸다. 사진 출처: Krista Mangulsone

덕분에 겨우 내가 되어 일상을 산다. 언니와 잠시 떨어져 나를 챙긴다. 그의 아픈 몸을 까맣게 잊고 삶에 몰두한다. 그러다 그가 그리워질 때가 찾아온다. 다시 언니 몸에 갇혀서 온 정성을 다해 보듬고 싶어진다. 그렇게 힘이 차오른 생생한 마음으로 언니의 아픔을 끌어안을 준비를 마친다. 그를 향해 성큼 달려간다.

언니 옆을 지키는 다른 이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돌봄을 나누면 언니를 더 안전하게 지키고, 나 역시 나로 살아갈 수 있다. 아픈 몸을 홀로 돌보는 일은 쉽지 않다. 하나보다 둘이 낫고, 둘보단 여럿이 낫다. 여러 명보단 이 사회가 함께 돌보는 것이 낫다. 사랑하는 사람을 끝까지 사랑할 수 있도록, 누구도 돌봄 앞에서 자신을 버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또 하루를 버텨낸다.

솔빈

그 순간, 녹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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