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철학] ⓵커먼즈(commons), 플랫폼자본주의를 넘어서(下)

이 글은 생태적지혜연구소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생태민주주의 시리즈》 두 번째 책인 『생태시민성과 공동체성』(2020년 출간 예정)의 일부이다. [공동체의 철학] 시리즈 첫 개념인 커먼즈(commons)를 설명하는 두 번째 글이다. 커먼즈에 대한 논의는 플랫폼자본주의와 혼동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스피노자로부터 시작된 커먼즈의 심오한 철학을 탐색해보면, 커먼즈의 사상이 사실상 관계가 주는 혜택과 장점, 유능함을 알려주는 핵심개념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플랫폼자본주의와 커먼즈

플랫폼자본주의 양상은 플랫폼이라는 마당을 설정해 두고 그 안에서 사랑, 욕망, 정동, 재미 등을 발휘하면서 그 이익과 부수효과가, 행위를 한 바로 자기 자신이 아닌 플랫폼을 살찌우도록 만드는 바로 향하는 색다른 질적 착취 양상의 자본주의를 의미한다.
플랫폼자본주의 양상은 플랫폼이라는 마당을 설정해 두고 그 안에서 사랑, 욕망, 정동, 재미 등을 발휘하면서 그 이익과 부수효과가, 행위를 한 바로 자기 자신이 아닌 플랫폼을 살찌우도록 만드는 바로 향하는 색다른 질적 착취 양상의 자본주의를 의미한다.

최근에 ‘플랫폼’이라는 개념이 심심치 않게 들릴 정도로 플랫폼자본주의가 전면화되었다. 그런데 일반 시민들은 플랫폼(platform)과 커먼즈(commons)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플랫폼자본주의 양상은 플랫폼이라는 마당을 설정해 두고 그 안에서 사랑, 욕망, 정동, 재미 등을 발휘하면서 그 이익과 부수효과가, 행위를 한 바로 자기 자신이 아닌 플랫폼을 살찌우도록 만드는 바로 향하는 색다른 질적 착취 양상의 자본주의를 의미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커먼즈와 플랫폼이 각종 편의와 서비스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공동의 시민자산으로 향하냐 아니면 사적 자본의 이익으로 향하냐의 문제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특히 구글(www.google.com) 등의 거대 인터넷 기업 등은 집단지성이나 오픈소스, 생태적 지혜에 대해서 탐을 내고 있는 상황이고, 이에 따라 플랫폼을 통해 보이지 않는 커먼즈의 가치와 관계망의 부수효과 등을 자신의 이익으로 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동료생산의 이러한 사회적 협력이 만들어내는 긍정적 외부성인 지식과 혁신에 점점 더 의존하고 그것을 자신들의 이윤 추구 활동에 적극 통합시키고 있다. 보웬스에 따르면, “기업들이 개방적 공유지의 출현에 적응하고 있으며, 개방적 공유지와 기업 생태계 사이의 상승효과를 추구하는 객관적 경향이 존재한다.”(Bauwens, 2009: 130) 구글, 애플, 아마존, 이베이, 유튜브, 페이스북 등은 그 대표 기업들이다.

이항우, 『정동자본주의와 자유노동의 보상』(2017, 한울앰플러스(주)), p56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먼즈를 채굴하고 추출함을 통해서만 이득을 얻을 수 없는 최근의 정동자본주의의 양상을 통해 우리는 커먼즈 자체가 하나의 기업과 시장의 생태계로서 돌이킬 수 없는 중요한 판과 구도가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탈근대자본주의의 질적 착취의 상황에서 커먼즈로부터 어떤 부수효과를 취하느냐가 가장 관건이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플랫폼자본주의의 양상은 시초축적 이후에도 꾸준히 자본에 의한 커먼즈의 약탈이 추진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먼즈는 리눅스나 위키피디아와 같이 색다른 비물질재로 영역을 확대시키면서 지속적으로 생산되어 오고 있다. 특히 비물질재의 경우 커먼즈의 영역이 공유되고 나눔을 할수록 고갈되지 않고 더 시너지를 발휘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에 따라 비물질재를 중심으로 한 커먼즈가 색다른 커먼즈에 대한 사상과 철학을 정립할 여지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제까지 이루어져 왔던 커먼즈의 사상적인 궤적을 정리할 필요성 있다.

커먼즈의 사상, 공동체의 사상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 커먼즈의 영역은 사상적으로 스피노자의 공통관념(common concept)로부터 유래를 갖는다.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 커먼즈의 영역은 사상적으로 스피노자의 공통관념(common concept)로부터 유래를 갖는다.

커먼즈의 영역은 사상적으로 스피노자의 공통관념(common concept)로부터 유래를 갖는다. 스피노자의 철학적인 구도는 ‘특이성(singularity)을 사랑하는 공통성(common)’이라는 구도를 보인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즉, 사랑, 정동, 욕망의 논리로 이를 전개해 볼 때 스피노자의 사상의 전모가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를 테면 “사랑할수록 같아진다”라는 동일성의 철학의 구도는 우주적 합일이 동일성에 의해서 감각적이고 즉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즉, 상식 즉 커먼센스(common sense)에 따라 일치를 이룬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이는 스피노자에게 1종지라고 불리며, 이러한 논리는 사실은 오류와 환상, 망상의 원천이라고 스피노자에 의해서 치부된다. 반면 “사랑할수록 달라진다”는 형태로 작동되는 것이 특이성의 원리이다. 즉, 연대하고 사랑하고 정동할수록 우리는 다양해지고 풍부해지고 특이해진다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사랑할수록 닮아진다”는 형태로 작동되는 것이 공통성의 논리이다. 즉, 커먼즈는 형태가 유사하지만 동일하지 않고 특이한 것이 뛰어 놀 수 있는 구도를 드러낸다. 여기서 특이성은 공통성을 풍부하고 다양하게 만드는 원천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피노자의 철학은 특이성을 사랑함으로써 공통성을 풍부하게 만드는 구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커먼즈의 사상에서 가장 특이한 부분이 바로 커먼즈를 특징짓는 공통성이 보편성(Universality)이 아니라는 점이다.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원리는 편재성, 무시간성, 무장소성, 무역사성을 특징으로 하여, 정보와 지식의 형태로 무차별사회에 무작위로 제공된다. 반면 공통성은 역사성, 장소성, 국지성 등을 특징으로 하여, 가장 지금-당장-여기-가까이에 있는 너와 나 사이에서도 생산이 가능하다. 이를 테면 시험장에서 볼펜을 빌려주는 옆 사람과도 공통성이 생성될 수 있으며, 길을 묻는 사람을 직접 인도해주는 친절한 행인에게도 공통성은 형성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보편성은 어떤 상황, 장소, 인물 등인지 따지지 않고 사실상 꿈꾸는 과정과 유사한 논리를 구사한다. 즉, 특이성이나 고유성, 국지성 등을 고려하지 않는 채 모든 곳, 모든 인물, 모든 시간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자임하는 것이 보편성이다. 국가주의 사상은 보편적인 하나의 모델을 현실에 적용시키는 것이라면, 공동체 사상은 현실을 복잡계(complex systems)로 보고 국지적인 영역에 다양한 모델들을 적용시켜 커먼즈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 스피노자의 철학은 특이성을 사랑함으로써 공통성을 풍부하게 만드는 구도
  • 공통성은 지금-당장-여기-가까이에 있는 너와 나 사이에서도 생산 가능

커먼즈라는 물질적/비물질적인 공유 자산은 공동체와 시민에게 풍부한 사용, 관리, 전유의 자산이 되어 왔다. 커먼즈는 관계를 통하지 않고서는 부와 에너지, 자산에 접근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하는 특징을 갖는다. 그러나 현대자본주의는 관계를 통하지 않고도 자원-부-에너지에 대한 개인의 접근 가능성을 열어두었기 때문에, 굳이 커먼즈에 의탁하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커먼즈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공동체의 규칙과 제도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사실상 개인에게는 자유를 규제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공동체의 커먼즈와 같이 관계망의 깊이와 잠재성을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 커먼즈를 통해서 관계를 통해서 우리가 해낼 수 있는 것들이 무척 다양하고 실질적이고 유효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관계로부터의 분리로 이루어진 현대인들의 삶의 양상에 비추어볼 때, 관계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매우 많고 다양하고 풍부하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 커먼즈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공동체성의 첫 번째 특징으로 커먼즈를 살펴보았으며, 이에 따라 공동체적인 관계망과 배치가 어떤 특징을 갖는지 살짝은 조망할 수 있게 된다. 커먼즈는 관계가 갖는 장점을 보여주는 판과 구도라는 점에서 유행을 만들 만큼 가장 세련되고 현실에서도 유능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故신승철

1971.7.20~2023.7.2 / 평생 연구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다가 마지막 4년 동안 사람들 속에서 '연결자'로 살다 가다. 스스로를 "지혜와 슬기, 뜻생명의 강밀도에 따라 춤추길 원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공락(共樂)하고자 합니다. 바람과 물, 생명이 전해주는 이야기구조를 개념화하는 작업을 하는 글쟁이기도 합니다."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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