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용 텀블러?

요새 축제 포스터를 잘 살펴보면 ‘개인컵을 지참해주세요.’라는 문구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마트에서는 비닐봉투 값을 받고, 대형 카페에서는 개인컵에 음료를 담아가면 혜택을 주기도 한다. 1회용품을 비롯해 쓰레기를 줄이려는 움직임은 점점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가는 듯 보인다. 그러나 텀블러라는 사물 자체가 하나의 상징이 되어 사람들의 움직임을 이끈 것과 별개로, 그 상징이 맨 처음 가리켰던 의미가 사람들 머릿속에 남아있다고 볼 수 있을까?

요새 축제 포스터를 잘 살펴보면 ‘개인컵을 지참해주세요.’라는 문구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마트에서는 비닐 봉투 값을 받고, 대형 카페에서는 개인컵에 음료를 담아가면 혜택을 주기도 한다. 1회용품을 비롯해 쓰레기를 줄이려는 움직임은 점점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가는 듯 보인다.

모든 움직임은 ‘상징’이 있으면 흐름을 탄다. 그 상징은 사람일 수도, 사건일 수도, 사물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쓰레기를 줄이자는 지금의 움직임을 이끌고 있는 상징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텀블러다.

사람들이 움직인다

환경부 마이 텀블러 캠페인
환경부 마이 텀블러 캠페인

2018년 5월 24일 환경부와 커피전문점(16개사)은 자발적 협약을 맺었다. 환경부 보도자료 ‘이제는 다회용컵도 생활필수품입니다(2018년 5월 8일)’에 따르면, “한 대형 카페에서 다회용컵 사용을 권장한 결과, 2017년 5월부터 2018년 자발적 협약 전까지 12개월간 389만 6,635개였던 전국 매장의 개인컵 사용량은 자발적 협약 이후인 2018년 5월부터 같은 기간 동안 178% 증가한 1,081만 9,685개를 기록했다.”고 한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는 것이다.

다수가 한 흐름에 동참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은 텀블러라는 상징의 역할이 크다. 우선, 해볼만하다고 느껴지는 실천이다. 평소 1회용컵만 사용했던 사람일지라도 도저히 못해먹겠다고 느껴질 정도가 아니라면 텀블러 하나를 사서 쓰면 된다. 개인의 참여가 너무 쉬워서 다수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유리하다. 환경보호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실제 기여하고 있다는 만족감, 여러 사람이 함께한다는 연대감 역시 느낄 수 있다.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 환경에 대해 더욱 깊고 넓게 의식을 키우도록 해준다.

이 정도면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는 흐름에 함께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 집에 쌓여 있는 텀블러들을 얼른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상징으로 굳어진다

텀블러라는 사물과 환경보호 운동의 상징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는 바로 ‘집에 쌓여가는’ 텀블러들이었다. 행사에서 받아오고 사은품으로 받고 선물로 받은, 아직 포장도 뜯기지 않은 텀블러들. 에코백도 마찬가지다. 집을 둘러보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텀블러와 에코백이 왜 이리 많지? 문제라는 비닐봉투를 더 알뜰하게 쓰는 것 같은데?’

작년부터 몇몇 기사에서 이 점을 지적해왔다. 텀블러와 에코백으로 환경보호 효과를 내기 위한 전제를 잠시 살펴보고 가자.

“영국 환경청의 2011년 조사에 따르면 플라스틱 계열인 폴리에틸렌 가방은 최소한 4회, 폴리프로필렌 가방은 최소 11회, 면 소재 에코백은 최소 131회 사용될 때에만 1회용 비닐봉지를 쓸 때보다 환경보호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에코백 사용은 평균 51회 미만이었다.

잠깐 사용하고 버리는 텀블러는 쓰지 않는 것만 못하다. 약 450㎖(16온스)짜리를 기준으로 비닐코팅이 된 1회용 종이컵과 비교해 재활용 컵은 최소 20~100회 사용해야 환경보호 효과가 있다고 캐나다의 환경보호·재활용 단체 CIRAIG는 2015년 보고서에서 지적했다. 하지만 생산단계부터 세척용수 및 세제 등 환경부담을 감안하면 일부 텀블러의 경우 1000회 이상을 사용해야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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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러와 에코백 ‘하나’를 얼마나 오래 쓰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사물 자체가 하나의 상징이 되어 사람들의 움직임을 이끌었지만, 그 상징이 맨 처음 가리켰던 의미가 사람들 머릿속에 남아있다고 볼 수 있을까?

‘쓰지 않거나. 쓰더라도 최대한 오래 쓰고 최소한의 쓰레기가 나오거나.’

“난 개인컵도 사용하고 에코백도 사용하는 걸?” 어쩌면 우리의 움직임은 흐름을 타는 게 아니라 휩쓸려 가는 걸 수도 있다. ‘지금 이 문화가 어째서 환경보호인가’라는 질문과 의식이 없으면 방향도 없다. 방향이 없으면 늘 그래왔던 대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인기 있는 상품의 수요가 늘고 공급이 늘고, 늘 새롭게 교체하는 그런 문화 속에서 스마트폰 바꾸듯이 텀블러와 에코백을 갈아치운다면(심지어 고장 나지도 않았는데), 이 환경보호의 상징들은 특별할 것 없이 여느 다른 상품들과 다르지 않다.

그만두자는 건 아니고…

이 모든 게 거쳐 가야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긴 하다.

1단계. 1회용품을 1 회 쓴다.
2단계. 다회용품을 몇 회 써본다.
3단계. 다회용품을 다회 쓴다.

때로는 성과를 내기 위해 어떤 운동은 의도적으로 다른 의미로 덮이기도 한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오르내리자는 구호에서는 전기에너지 대신 우리 몸의 에너지가 더 설득력 있는 대상인 것처럼 말이다. 많은 장소가 계단을 오를 때마다 ‘당신은 몇 칼로리를 소모했으며 얼마나 건강해졌다’고 알려주며 우리를 유혹한다. 지금 우리가 동참하고 있는 운동에서 원래 의미가 쉽게 드러나지 않아도, 성과가 있다면 그 유혹에 기꺼이 넘어가줘야 하는 걸까.

사실 뭔가 잘못된 거 아니냐는 시선이 생길지언정 일단 해보는 수밖에 없다. 심히 비관적인 분위기로 이야기를 풀어 가긴 했으나, 텀블러는 성공적인 운동의 상징으로 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 운동이 원래 바라봤던 곳으로 향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다른 의미로 덮이는 과정을 견제한다면.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자기반성은 필수다. 오늘은 제각각으로 기다란 연필들을 보며 묻는다. 나는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연필을 닳게 해본 적이 있을까? 어떤 소비를 하든 기억하자는 다짐도 덧붙인다.

‘쓰지 않거나. 쓰더라도 최대한 오래 쓰고 최소한의 쓰레기가 나오거나.’

호찬

미안해하지 말고 고마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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