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코로나 19시대와 구성적 인간론 ③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확인된 것처럼 이제 ‘사회’는 외부에 주어진 상수가 아니다. 사회 심지어 인간조차 끊임없이 구성해 나가야 하는 것이 되었다. 자연주의처럼 그대로 놔두면 저절로 치유된다는 자가면역, 자가치유력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집사마인드를 가진 새로운 인간론에 대해 말해야 한다. 세계를 돌보고 양육하듯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더 강건한 인간론을 말해야 한다. 펠릭스 가타리, 웬델 베리, 피터 싱어, 린 마굴리스, 그레고리 베이트슨. 이들의 목소리를 따라 새로운 구성적 인간론을 생각해 보자.

포스트코로나 19시대와 구성적 인간론 ②

근대 인식론의 주체란 인간과 자연의 분리를 전제로 이해가능하다. 그러나 코로나19의 팬데믹 상황은 인간은 미생물을 포함한 자연 전체로부터 한치도 벗어날 수 없는 유기적 존재임을 보여준다. 인간의 주체성은 외부와 분리된 것이 아니며 따라서 사회는 개인의 밖에 늘 존재한다는 전제는 기각된다. K방역의 성과는 개인과 사회제도의 협치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봐야 한다. 기후위기시대는 기존 성장주의 관점에서 볼 때 비관적인 물질적 조건을 예상하게 한다. 그러나 탈성장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주체성’과 ‘더불어 가난한 사회’의 협치를 통해 관계, 돌봄, 정동이 풍요로운 시대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포스트코로나 19시대와 구성적 인간론①

팬데믹 상황에서 기존의 근대적 인간론과 사회상은 작동을 멈추고 만다. 기존의 사회 공동체는 더 이상 우리 삶의 전제조건이 아니다. 그저 문을 열고 나가면 존재하던 사회가 어디에도 없다. 생활반경의 축소에 따라 활력이 소진되고 ‘격리된’ 개인들은 이번 기회를 통하여 삶의 깊이와 잠재성을 발견한다는 것도 힘든 상황이다. 따라서 사회는 늘 새롭게 구성해야만 존재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자원이 생겨야 활력이 생기던 상황이 아닌, 활력이 있어야 자원이 생기는 전도된 상태가 되었다. 활력. 바로 여기서 모심, 돌봄, 섬김, 보살핌 등이 모든 활동의 원천임을 분명히 하는 정동경제를 만난다.

문명 외부의 기후난민②

국제사회가 기후난민을 대하는 태도는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와 같다. 죽든 살든 상관없는 국외자로서 생명유지, 그 이상의 어떤 권리도 가지지 못한 존재들로 취급된다. 기후난민을 분리주의를 통해 처리하려는 태도는 비판받아야 한다. 기후위기에서 누구도 예외일 수 없으며 그들은 단지 우리보다 앞서 겪는다는 인식 아래 기후난민의 문제는 곧 우리 자신의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캐나다가 시리아 난민 2만 5천만 명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다양성 존중의 문화임을 깨닫고 새로운 주체성 생산을 말해야 한다. 단지 500명의 예멘 난민 앞에서 보여줬던 우리사회의 편협한 문화는 성장주의 세력이 자신만 누리고 살겠다는 파시즘의 태도와 이어져 있다. 이를 극복하고 나눔과 연대, 탈성장의 화두에 주목하자.

문명 외부의 기후난민①

2019년 유엔난민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매년 2,500만 명(서울 인구의 2배)의 기후난민이 발생되고 있다. 유럽의 거리에 운집해 있는 기후난민의 상황은 사실상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거대한 난민캠프에서 하루 최저열량의 식사를 하고 누워 있는 난민들의 모습은 사실상 전 세계 곳곳의 일상적인 모습 중 하나다. 이 글에서는 시리아 내전과 남미 캐러밴 난민의 사례를 통해 인류문명이 기후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첨예한 갈등과 전쟁, 내전으로 향할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저성장시대 협동운동의 전략지도] ⑦ 협동운동, 남은 이야기들

기후위기의 상황 속에서 협동조합은 기존에 당연시 되어왔던 삶의 방식 전반에 대해서 물음표를 던지고 협동조합이 갖고 있는 의미를 공공연하게 외쳐야 한다. 과거의 비즈니스가 부차적인 사업이 되고 비물질재라고 할 수 있는 지혜와 지식, 정보가 교류되는 장 커뮤니티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커뮤니티의 밀도가 높아질 때에야 ‘개인의 빈곤’을 ‘더불어 가난’으로 대체할 수 있다. 그 안에서 우리의 정동과 욕망, 사랑의 흐름이 향하는 바에 몸을 싣고 거대한 전환사회를 향한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할 것이다.

[저성장시대 협동운동의 전략지도] ⑥ 문명의 전환과 전환사회의 전망 수립

기후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전환사회의 설립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일을 해낼 사람과 그 일에 나설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관계망에서 사람들은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니지만, 너와 나 둘 다 될 수 있는 간주관성, 사이주체성, 서로주체성의 영역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한 관계망에서의 주체성 생산은 결국 하나의 특이점이 되어 새로운 전환사회의 형태와 생활양식 등을 구성해낼 것이다.

[저성장시대 협동운동의 전략지도] ⑤ 제한, 유한성, 한계를 응시하며

저성장시대를 맞아 성장이 아닌 성숙의 경제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협동조합에게는 미래세대를 생각하는 새로운 리더십이 요구되고 있다. 관계와 정동을 복원하고, 대안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며, ‘더불어 가난’을 추구해야 할 새로운 협동조합운동에 대해 살펴본다.

[저성장시대 협동운동의 전략지도] ④ 저성장시대, 커뮤니티도 너무 크다!

저성장시대를 맞이하여, 사회는 미리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재건하고 구성해야 할 목표로 바뀌었다. 협동조합도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시점을 맞고 있으며, 우리는 모든 면에서 기존 조직방식 자체에 대해 의문시하여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주체-대상, 조합원-활동가, 결사체-사업체의 한 쌍을 새롭게 재편하지 않고서는 이 저성장시대의 위기상황을 벗어날 수 없으며, 협동조합은 더 이상 전환사회의 마중물이 될 수도 없다.

[저성장시대 협동운동의 전략지도] ③ 정동, 돌봄, 욕망의 미시정치

저성장 시대는 자연과 생명의 외부성이 한계에 봉착하여 수축되는 국면이다. 활력을 잃고 에너지 자체 고갈은 필연적인 상황. 협동조합이 이 한계 상황 하에서 주목해야할 근본적 해법인 무엇일까? 그것은 욕망의 혁명이자 영구혁명이다. 해방의 목표는 정동의 해방이며 협동조합을 통한 실존의 재건이다. 조직 내 직분의 관계만 남은 오늘날의 인간관계는 저성장 시대에 지속될 수 없다. 협동조합은 마을 공동체마다 반드시 있었던 입담꾼들의 이야기판을 조합운영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이 이야기는 미시적이고 내밀한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여야 하며, 이 이야기가 물품의 이미지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소비로 수렴되지 않는 정동의 해방이 저성장 시대의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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