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정의에 생태적 지혜가 따르다

2022년 9월 24일 기후정의행진이 3년 만에 개최되었다. 생태적지혜연구소도 이 현장에 동참하였고, 이 과정에서 연대활동을 준비하며 느낀 글쓴이의 소감을 나누어본다.

기후행진이 돌아오다

올해 들어 뉴스의 헤드라인에는 기후재난으로 인한 비명이 가득했다. ‘초유의 사태’, ‘전대미문의 피해’ 등을 보고하는 위기의식은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열린 이번 기후정의 행진에서도 드러났다. 행진을 기획하고 준비한 조직위원회에서 뽑은 올해의 슬로건도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였으니 말이다. 기후재난의 극심한 위기를 전면에 드러내는 방법으로 기후문제에 접근하는 흐름이 애석하다. 사람들을 사태에 주목하게 하는 힘은 확실하지만, 그만큼 삶의 터전이 사라지고 많은 생명이 사라진 ‘대가’를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기후와 관련된 담론들은 점점 생활 속에 밀착되어 간다. 기후로 인한 슬픔, 우울 등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우리의 마음 상태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어휘로 자리 잡고 있다. 폭염, 가뭄, 홍수 등 기후재난의 강도는 직관적인 이해를 위해 그것의 빈도를 통해 설명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30년에 한 번 찾아오는 정도의 가뭄은 10년에 한 번 닥치는 가뭄보다 더욱 강력한 것이다. 나는 이번 기후정의행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의 근황을 기후재난에 쓰이는 용어를 사용해서 여러 차례 표현했다.
 

‘일 년에 한 번’이라는 강도

이번 행진을 준비하며 나는 세 개의 모임에서 각각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했다. 행사 당일 ‘세 탕’을 뛰어야 했기에 그것을 준비하는 기간 내내 내 머릿속에는 세 가지 일이 저글링처럼 돌았다. 해야 하는 일에 대한 생각을 머리에서 거둬내면 다른 일이 떠올랐고, 그것을 멀찍이 밀어내자면 세 번째의 일이 찾아들어 왔다. 물론 재난이라는 말에 내 사정을 비유할 수는 없다. 오히려 내 입장에서 보면 일복이 터진 셈인데, 이런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일 년에 한 번 올 법한’ 바쁨을 겪었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탈핵 관련 집회에 참여한 것 외에는 시민운동 집회에 참여한 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 능숙하게 준비를 해서 공헌하기보다는 경험을 쌓는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하지만 일 년에 한 번 있는 행사이기 때문에 조금의 성과는 생기기를 바랐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 최선의 전략은 다른 사람을 데려오는 것이었다. 교육활동으로 만나는 청소년도 데려오고 대학에서 같이 공부하는 사람도 불러왔다. 그렇게 사람을 영업하는 게 나 혼자 어설프게 투쟁하는 것보다 더 낫겠다 싶었다.
 

생태적지혜가 따르다

‘세 탕’ 중에 가장 오래 그리고 많이 참여한 곳은, 이 글이 실린 ‘생태적지혜연구소’였다. 약 석 달 전부터 텔레그램 조직위원회 방에는 꾸준히 공지 사항과 홍보물이 올라왔다. 인상적인 것은 이 채팅방 안에 360개가 넘는 연대 ‘단체’가 소속되어 있다는 점 그러면서도 각 단체는 다채로운 지역 혹은 의제를 중심으로 자율적으로 연대한다는 점이었다. 공지를 올리는 방과 활동을 인증하는 방이 따로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두껍게 쌓인 지난 메시지들을 한참 밀어 올려야 했다.

연구소 연대 이사라는 이름으로 참여하는 동안 기본을 다하는 데 집중했다. 조직위에서 결정된 대로 인증샷을 모아 보내고 중요한 전달 사항을 공유했다. 포스터를 출력해서 연구소 근처에 붙였고 행진을 위해서는 깃발과 몸자보 스티커를 만들었다. 손에 들 피켓은 우리 연구소의 핵심 가치를 문구로 담아서 출력했다. “관계에 자본이 아닌 정동이 흐르게 하는”, “성장의 한계를 직시하고 ‘탈성장’으로 향하는” 등을 추렸다. 임의로 창작했는데 신승철 소장님께서 칭찬과 함께 바로 컨펌해 주셔서 좋았다.

 
내년에 다시 돌아오길

첫 번째 일로 1시에 도착했는데 본집회가 시작하기 전인데도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팀을 나누고 내가 인솔하는 청소년들과 부스를 방문하는 시시각각 인파는 불어났다. 설명을 듣거나 사진을 찍기 위해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길을 막아서 민폐가 되었다. 이날 현장에는 주최 측 추산으로 3만 5천여 명이 모였다고 한다. 근처에 대관한 회의실로 이동하는 중에 잠깐 스쳐간 부스만 보더라도 기후정의를 염원하는 주체들의 다양성이 느껴졌다. 점점 환경이 혹독해지는 논밭, 일터, 삶터에서 정의를 외치기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연례행사이기 때문에 일 년 치, 아니 이번 경우에는 삼 년 치 묵은 정의로운 열망이 한꺼번에 거리로 쏟아졌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어지러운 기분마저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을 이곳 현장에서 한꺼번에 마주치는 것은 매우 고무되는 일이었다. 기후정의는 모든 이의 목표임이 실감 나는 동시에 다음에는 더 많은 역할을 다하고 싶다는 자극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년에도 생태적지혜연구소는 행진을 따라서 구호를 외치고 (아마도) 부스를 열 것이다.

생태적지혜 팟캐스트

배선우

그동안 썼던 별명들은 한때의 나를 잘 설명해줬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다른 또 다른 나.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격언을 실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의미를 추구하며, 세계를 사랑하고 싶습니다. 당분간은 지구를 횡단하며 ‘생활철학자’라는 직함으로, 살고 싶은 길, 살아가야 할 길을 궁리하려고 합니다. 잘 살기 위해 책을 읽고, 주로 서평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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