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하는 게 벌 받으면, 데모하게 만든 사람들은 무슨 벌을 받습니까?”

기후재판에서 피고인으로 서며 느꼈던 감정들을 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공판은 다가오는 1월 17일을 마지막으로 끝이 나지만, 우리의 행동은 기후정의를 바로 세울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나는 지난 5월부터 서울 남부지방법원에 ‘피고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멸종반란・멸종저항 서울 활동가들이 직접행동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 멸종반란
멸종반란・멸종저항 서울 활동가들이 직접행동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 멸종반란

작년 2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산지역 표심을 잡기 위해 졸속적으로 가덕도에 신공항을 짓는 특별법을 통과시킨 것을 규탄하기 위하여 당시 집권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사무실에서 직접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당일 직접행동을 했던 활동가 6명은 모두 현장에서 경찰에 의해 체포・연행되었고, 이후 우리는 공동주거침입과 집회시위법 위반을 이유로 총 2000만원의 벌금을 선고 받았다.

“평범한 시민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교통수단 중 1인당 단위거리 기준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비행기, 이미 전국 공항의 2/3가 만성 적자인 상황, 기후위기 시대에 불필요한 신공항 건설을 막기 위해 시민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4-5년에 한번, 객관식 답지에 의견을 내는 투표만으로는 급속도로 진행되는 기후위기를 막을 수 없다. 체제가 변하는 속도보다 더 빨리 기후가 바뀐다. 그럼에도 나는 지난 10년간 아주 착실하게 ‘제도권이 권장하는’ 시민행동을 해왔다. 열심히 투표하고, 진보정당에서 활동하고, 기후행진, 서명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기후위기를 막을 수 없었다. 이러한 무력감은 비단 나만이 느낀 것은 아니다.

NASA의 과학자 피터 칼머스는 “과학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기후위기를 증명하는 과학 논문이 차고 넘친다. 그런데도 정부와 기업이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거리로 나서 당장 행동하라고 외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영상출처 : 스브스뉴스(SUBUSUNEWS) 전 세계 과학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고 해고된 이유

또한 영국에서는 2019년 멸종반란 영국 활동가들이 석유대기업 Shell 본사에서 스프레이를 뿌리고, 출입문을 봉쇄한 직접행동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명백한 사유지 침입, 기물파손에도 ‘무죄’가 선고된 이유는 배심원들이 활동가의 편에 섰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생태학살을 저지르는 Shell을 저지하기 위한 활동가들의 행동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영국의 멸종반란 활동가들이 Shell의 기후파괴, 생태학살을 알리는 메시지를 칠하고, 본사 정문 출입구를 몸으로 봉쇄하고 있다.
사진출처 : realmedia 유튜브 영상 갈무리

“데모하는 게 천벌 받으면은 데모하게 만든 사람들은 무슨 벌 받습니까?”

영화 《변호인》(The Attorney, 2013)의 한 장면.
영화 《변호인》(The Attorney, 2013)의 한 장면.

부림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 《변호인》에서 박진우가 송우석에게 한 말이다.

반년 동안 재판정에 출석하며 나는 피고인으로 굉장한 무력감을 느꼈다. 내가 피고인석에서 ‘잠재적 죄인’의 신분으로 재판을 받는 동안,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생태학살을 저지르는 진짜 죄인들은 너무도 당당하게 그 파괴행위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죄가 선고되면 나는 ‘공동주거침입’이라는 범죄를 저지른 전과자가 된다. 어린 시절 나는 앞 마당에는 감나무가, 뒷마당에는 살구나무가 있는 시골집에서 자랐다. 계절마다 자연이 선물하는 채소와 과일을 텃밭에서 수확하며 자란 내가 30년이 지나 ‘전과자’가 되리라는 상상은 해본 적이 없는데, 그때는 기후위기로 이 지구가 머지않아 거주불능상태가 되리라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 내가 잠시 동안 “지구에 대한 생태학살을 멈추라” 외친 집권여당의 사무실에 대해 주거 침입의 죄가 성립된다면, 우리 공동의 집 ‘지구’의 절멸을 가속화시킨 당사자들은 어떤 벌을 받는가? 기후위기는 조용하고 느린 학살이며, 이 학살은 사회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서 있는 사람들의 삶부터 잔인하게 파괴한다. 이 거대한 학살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구공동체의 일원으로 이러한 범죄를 방관한다면, 그것은 역사 앞에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진정한 ‘범죄자’가 될 것이다.

이 거대한 재난은 혼자의 힘으로는 절대 막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저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 이대로라면 지구라는 함선은 ‘기후위기’라는 항로를 따라 멸종을 향해 가고 만다. 하지만 많은 시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이 잘못된 폭주기관차를 멈추는 브레이크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 마지막 기회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직접 행동할 때에만 이 위기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가덕도 신공항 기후재판에 탄원서 제출로 함께하기

2023년 1월 17일 오후 2시, 서울남부지방법원 308호에서 가덕도 신공항 직접행동에 대한 마지막 공개재판이 진행된다. 탄원서 제출과 방청연대로 기후활동가들에게 힘을 실어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린다.

동물권, 기후정의 활동가.
지구공동체의 안녕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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