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연대로 그리는 돌봄의 미래

초고령사회, 돌봄 문제가 심각하다. 정부와 언론은 각종 수치로 위기를 경고하고, 주변을 둘러봐도 심각성이 피부로 느껴진다. 지금의 돌봄 서비스는 정부 정책을 바탕으로 시장이 공급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전형적인 정부실패와 시장실패로 그리 만족할 만한 수준이 되지 못한다. 정부는 해결책으로 ‘지역사회 통합돌봄’ 정책을 들고 나왔지만, 선도사업을 직접 경험한 현장의 반응은 차갑다. 다행히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는 연대를 통해 새로운 돌봄 모델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그중 두 가지를 소개한다.

노인과 사회, 그리고 우리집

‘100세 시대’는 이제 식상하다. 지난 주말, 아내는 놀라운 소식을 들려줬다. 130세까지 보장하는 어린이 보험이 나왔다는 것.

정부와 언론이 각종 통계를 보여주며 초고령사회의 위험을 경고한다. 지난 2000년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한국은 2019년에 고령사회가 되었고, 3년 후인 2025년이면 초고령사회에 들어설 전망이다. 2060년에는 노인 인구가 44%에 달해, 거짓말 조금 보태면 인구 2명 중 1명은 노인이 된다(65세 이상을 노인으로 보는 게 맞는지에 대한 논란은 일단 접어두자). 문제는 이런 속도가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이며, 대비하기 어려운 사회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걱정도 쏟아진다. 걱정 대부분은 생산과 비용(재정)에 쏠려 있는데, 대표적으로 노인 진료비는 2016년 25조 187억 원에서 2021년 40조 6129억 원으로 5년간 1.6배가 늘어났다. 총진료비 중 노인 진료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꾸준히 늘어나 올해 1분기에는 42.6%가 노인 진료에 사용됐다(국민건강보험공단, 2022년 1분기 건강보험 주요통계).

우리나라는 초고령사회를 향해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자료 : 통계청 제공
우리나라는 초고령사회를 향해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자료 : 통계청 제공

하지만 이런 숫자보다 우리네 주변은 어쩌면 더 팍팍할지 모른다. 추석에 만난 아버지는 유난히 수척하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이제 해를 넘기면 80. 오래 전 일이지만 암으로 수술도 두 번이나 하셨다. 어머니는 다행히 큰 병을 앓은 적은 없지만, 항상 여기저기가 아프다신다. 젊었을 때부터 ‘골골 팔십’이라는 말을 자주 할 정도로 몸이 약하셨다. 꾸준히 운동을 해온 장모님은 비교적 건강하신 편이다. 하지만 장인어른이 돌아가신 후 관계망이 좁아지고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나마 당장 부모님 돌봄이 필요하지 않은 나는 상황이 괜찮은 편이다. 누나네 시아버지는 치매가 왔고, 처제네 시어머니는 넘어져서 골절되셨다. 친구들 얘기를 들어봐도 이제 이런 상황은 거의 일상이다. 돌봄이 일상적으로 필요하단 얘기다. 하지만 기존의 돌봄은 우리의 필요를 충족하기에는 한계가 너무 크다.

돌봄의 실패

돌봄은 시장실패와 정부실패가 나타나는 대표적인 분야다. 앞서 ‘130세 보험’을 거론하기도 했지만 헬스케어 시장은 이미 대기업들이 중요한 성장동력으로 삼는 분야 중 하나다. 돈만 있으면 질 좋은 서비스를 충분히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돌봄 서비스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통해 공급된다. 2008년 도입된 이 제도는 국가가 재정 일부를 부담하고 운영 대부분을 민간이 담당한다. 초기부터 시장에 내다 맡기는 방식으로 정책을 설계하면서 소규모 업체들이 난립하여 과당 경쟁을 벌이는 장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비용을 낮추다 보니 서비스 질은 떨어지고 일하시는 분들의 근무 환경도 열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이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특성상 열악한 근무 환경은 다시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지고, 낮은 수가 등 정책적 한계로 부정 수급도 만연하다. 공급자 중심의 정책은 어떤 서비스를 어디에서 받아야 하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서비스를 잘 이용하기 위해서는 여기저기를 찾아다녀야 하는 문제도 있다. 필요한 서비스를 겨우 찾아도 서비스 간 상충 관계가 있어서 하나의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다른 서비스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이렇게 불충분한 돌봄 서비스는 여전히 가족, 특히 여성에게 돌봄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한편 초고령사회를 앞둔 정부는 기존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며 지역사회 통합돌봄 정책을 추진했다. 2019년 시작한 통합돌봄 선도사업은 수많은 과제를 남긴 채 올해로 종료되지만, 그 과제를 풀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의료사협이 있는 지역이나 지자체장이 특별한 관심을 보인 극소수 지역에서 괜찮은 모델이 시도되기는 했지만, 이는 ‘개인기’에 기댄 측면이 크다. 괜찮은 돌봄이 시스템으로 만들어지기에는 여전히 갈 길이 너무 멀다.

새로운 실험

지역사회 통합돌봄 정책을 추진하면서 얻은 통찰 중 하나는, 의료사협과 같은 사회적 경제 조직의 참여가 성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자료 : 보건복지부 제공
지역사회 통합돌봄 정책을 추진하면서 얻은 통찰 중 하나는, 의료사협과 같은 사회적 경제 조직의 참여가 성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자료 : 보건복지부 제공

지역사회 통합돌봄 정책을 추진하면서 얻은 통찰 중 하나는, 의료사협과 같은 사회적 경제 조직의 참여가 성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16개 선도사업 지역 중에서 전주와 부천, 안산, 남양주와 같이 의료사협이 있는 곳이 모범 사례로 많이 거론된다. 통합돌봄에서는 의료와의 결합이 대단히 중요한데 그 역할을 의료사협이 수행했고, 이를 계기로 다른 사회적 경제 조직 간 연대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시도하고 있는 새로운 실험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는 지난 봄, 의료사협과 소비자 생협, 에너지, 공동육아, 주택, 장례 분야의 협동조합들이 통합돌봄을 위해 머리를 맞댄 것이다. 기존에는 상당히 이질적인 분야로 여겨졌던 이 조직들이 돌봄을 화두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돌봄에 대한 인식 전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존 돌봄은 거동이 불편한 누군가의 활동을 도와주는 정도의 협소한 개념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존엄한 돌봄을 위해서는 움직임이나 식사 등을 도와주는 정도가 아니라 건강한 사람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분야의 자원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아직은 초기 단계라 모임 이름도 조직 구성도 없지만 두어 차례 만나 각 단체가 구상하는 돌봄을 공유하고, ‘협동과 연대에 의한 돌봄의 질 향상 국제 워크숍’도 진행했다. 해를 넘기지 않고 각 조직이 진행한 사업과 활동을 다시 나눌 예정이다.

다른 하나는 강화도에서 ‘마을 기반 통합돌봄’을 만드는 작업이다. 마을 기반 통합돌봄? 용어가 낯설지만 몇 년 전부터 미디어를 통해 소개된, 우리가 부러워하는 북유럽 국가들의 돌봄 모델이다. 아마도 가장 널리 알려진 게 네덜란드의 호그벡 마을일 것이다. 아프고 불편하다고 해서 활동 반경을 제한하고,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마을에서 농사짓고 요리나 목공 같은 취미 활동을 하는 등 여느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의 돌봄 말이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다. 그네들은 우리와 다른 역사와 문화, 정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대로 지역 및 사회적 경제와의 관계망을 넓히며 논의를 진전시키고 있다. 처음에는 지역에서 사회적 농업을 수행하는 사회적기업과 보건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것이 현재는 공동체 주택, 치유 농업, 의료사협, 생협 등 다양한 분야가 같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중요한 건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르게 시작했던 위 두 가지 실험이 교차하고 있다는 점이다. ‘돌봄 질 향상 워크숍’을 했던 사람들이 강화도로 넘어가 마을 기반 통합돌봄을 준비하는 사람들과도 교류를 시작했다. 아마도 하나씩의 단절된 서비스가 아니라 존엄한 삶을 위해 통합적인 서비스가 필요하고, 사회적 경제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두 실험을 시작하고 교차하게 한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고백건대, 이 시도가 장밋빛인 것은 아니다.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모임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현실적 한계에 부닥치곤 한다. 생각보다 더 많은 자원과 더 긴 시간이 필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그 지난한 시간을 가보려고 하는 것은 좋은 돌봄을 위한 방향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돌봄의 미래, 사회적 경제와 공동체 연대에 답이 있다.

김종필

의료사협을 중심으로 사회적 경제 분야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다.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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