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vs how
It runs like a strand of DNA code through thousand of other kinds of thoughts. […]. It’s also a matter of how you think. Once you start to think the ecological thought, you can’t unthink it: it’s a sphincter─once it’s open, there’s no closing. (p.4, Introduction: Critical Thinking, 『The Ecological Thought』)
그것은 DNA 코드의 한 가닥처럼 수천가지 다른 사유들 속을 관통한다. […] 단순히 무엇에 대해 생각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생각하는 방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번 생태적 사유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만 둘 수가 없다. 괄약근처럼 일단 열리기만 하면 닫히지 않는다. ( p.4, 서문: 비판적 사고, 『생태적 사유』)
처음 읽은 날의 기록:
‘An Ecological Thought’, ‘Some Ecological Thoughts’, ‘Notes toward Ecological Thinking’, ‘Ecological Thought’ 가 아닌 ‘The Ecological Thought’가 책제목이다. 한국어로 번역할 수 없는 ‘The’. 사전에 실린 20개 가까이 되는 뜻 중에서 느낌이 가까운 것은 ‘가장 적절한, 그 이름에 가장 알맞은, 가장 중요한’이다.
다시 읽은 날의 기록: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중요하지만 생각하는 방식도 중요하다. 철학은 개념을 규정하는 학문인데 개념을 규정하기까지 어떤 생각을 어떤 방식으로 거쳐 왔는지도 중요하다.
“현상학”이라는 표현은 일차적으로 일종의 방법 개념이다. 그것은 철학적 탐구대상들이 사태내용적으로 무엇인가가 아니라 오히려 철학적 탐구의 어떻게[방법]를 특징짓고 있다. 『존재와 시간』 52~53쪽(마르틴 하이데거, 역자 이기상, 까치글방)
다시 읽을 날의 기록:
May the φῶς1 be with you!
여전히 무엇을, 의미를 찾고 있었다.
지난 5월초에 학생조합원들이 모이는 1박 2일 캠프를 진행했다. 초등5학년-고등 1학년까지 모여 벽화그리기, 마을 사진 찍기, 타로카드 등 여러 프로그램 사이 협동조합 교육도 30-40분 정도로 배치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모여서 즐겁게 보내는 시간 자체가 이미 교육이었다. 나는 ‘협동’이 무엇인지, 우리가 조합에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대략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협동이 뭘까?
-모두 함께 하는 거요.
-함께 뭘 할까?
-사회적으로 사람들이 모여…
-모여서 뭘 할까?
-글쎄요…
-지금까지 우리는 뭘 했지?
-여러 가지 활동을 했어요.
-무슨 활동이었지?
-음… 아… 기억이 안 나요.
아이들에게 과거의 일을 물으며 기억을 떠올려 말하라고 하는 것은 고문이란 걸 잊어버렸다. 의미를 같이 찾아보고 싶은 의욕이 앞섰다. 모튼 선생님도 하이데거 선생님도 ‘어떻게’가 중요하다고 했으니 나도 따라해 보고 싶었다. 이게 쉽게 되는 게 아니구나 하고 나 자신에게 실망을 하며 어찌어찌 마무리를 하고 다음 프로그램인 타로카드 상담으로 넘어갔다.
학부모인 마을교사 두 명이 아이들을 두 팀으로 나누어 각각 진행했고, 타로카드는 미래를 점치고 예언하는 게 아니라는 설명으로 시작했다. 한 명씩 한 가지 질문을 하며 카드를 뽑고 카드 그림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하면 마을교사가 카드는 이런 정보를 알려 주네라고 말해준다. 중학생들이 많은 곳에선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요?’, ‘이렇게 진로를 가고 싶은데 할 수 있을까요?’, ‘남자친구가 생길까요?’ 라며 연애와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신이 났다. 초등학생이 많은 곳에서도 연애와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어느 순간 ‘무지개 다리를 건너간 반려견이 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행복하고 다정한 느낌의 카드를 뽑고 설명을 들으며 울어버린다. ‘엄마가 요즘 컨디션이 안 좋은데,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을까요?’라고 물으며 걱정하는 아이도 있었다. 즐거움, 슬픔, 걱정을 함께 나누며 이야기하는 이 순간 아이들의 표정은 정말 그 모든 감정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 무엇이 무엇일까? 라고 묻는 어리석음. 그 무엇은 이곳에 흐르고 있었다.
조약돌 여덟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알게 된 나의 ‘어리석음’을 놓아둔다. 나는 여전히 의미를 찾고 골똘히 생각하며 그냥 즐기는 마음을 놓쳐버린다. 매년 3월말에 열리는 협동조합의 정기총회 자료집을 만들 때 시 한 편을 싣고 있는데 올해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골랐다. 산들이 자라듯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은 몰래몰래인 것 같다.

산들은 몰래몰래 자라난다
-에밀리 디킨슨
산들은 – 몰래몰래 자란다 –
자줏빛 형상들이 떠오른다
의도하지 않아도 – 지치지 않고 –
도움도 – 박수갈채도 – 없이.
그 영원한 얼굴들에 깃들어
태양은 – 그저 기쁘게
오래 -늦게까지 – 금빛으로 – 바라보며
우정을 쌓다가 – 밤에게 넘긴다 –
캠프를 앞두고 협동과 협동조합에 대한 이야기를 잘 이끌어나가고 싶어 새벽까지 책을 읽으며 키워드를 정리하고 어떻게 쉽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아이들이 협동의 가치를 깨닫고 우리가 해낸 일들을 훌륭하게 말해주길, 그래서 이 에세이에 쓸 멋진 에피소드가 탄생하기를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기억이 안 나요’였다. 내가 기대한 것은 ‘협동을 이해하는 주체’라는 대상(결과물)인 아이들이었다는 뼈아픈 각성이 일었다. 모튼은 ‘생태적 사유는 한번 열리면 닫히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내 사유의 문이 열렸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들을 내 관념의 틀 속에 가두려는 빗장을 단단히 걸어 둔 것이다. 그 짧은 대답은 빗장을 부수는 망치였다. 몰래몰래 자란 아이들이 지닌 강력한 한방!
협동이라는 정답을 아이들에게 주입하고 사회적 주체로 성장하기를 (강력하게) 바란 조급함이 무색하게 아이들은 마을교사들과 함께 즐겁게 놀고 있었다. 내가 조급해하는 걸 스스로 알아차린 순간, 오히려 속이 후련해진 한방이다.
φῶς(phos, 포스): 고대 그리스어로 빛, 광명을 의미하는 단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