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통신] ㉙ 햇님은 집에 가고……

만화리의 밤 풍경입니다.

햇님 잘 가. 내일 또 만나자.

햇님과 작별인사 하는 지우 (2012.11)
햇님과 작별인사 하는 지우 (2012.11)

만화리에 이사온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3살이던 지우는 어느새 13살이 되었습니다. 아침 먹고 산책, 점심 먹고 낮잠 자고 또 산책하는 게 하루 일과였어요.

어느 날 창밖으로 해가 지는 걸 보고 있었어요.

“햇님…”

조금 애달프게 부릅니다.

“지우, 햇님 보고 있어? 햇님 집에 가는 거야.”
“햇님 집에 가?”
“응. 햇님도 집에 가서 코 자야지.”
“햇님 집에 간다. 으앙~~~”

지우가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어서, 안고 달랩니다. 나도 따라서 울컥해 코맹맹이 소리가 납니다.

“햇님 집에 갔다가 내일 또 와. 내일 지우 보러 올 거야.”
“햇님…”
“내일 지우 보러 오니까, 햇님 안녕 하자. 햇님 안녕. 햇님 잘 가. 내일 또 만나자.”

지우는 울음기가 남아있는 얼굴로 햇님한테 인사를 하고 오래도록 바라봅니다.

그런데 다음날도 똑같이 햇님이 집에 갈 때는 울고 인사하고 바라보고 며칠을 그랬답니다.

오래도록 바라본다

해가 지고 밤만디를 내려오면 동쪽에서 남쪽으로 뻗은 치술령 자락이 마을을 폭 감싸 안은 것 같고 어두운 마을에는 불빛이 점점이 반짝입니다. 캄캄한 골목을 돌아 산을 마주 보며 걷다가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면 산이 멀찍이 있어도 옆에서 나란히 걷는 것 같습니다.

밤만디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비조마을. (좌)2016.11.19. 17:39 / (우)2017.11.4. 18:08
밤만디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비조마을. (좌)2016.11.19. 17:39 / (우)2017.11.4. 18:08

밤에 보이는 산과 하늘은 푸릇한 색이 안 보여도 오래도록 바라보게 됩니다. 비가 오거나 안개가 자욱하게 낀 날, 눈이 온 날은 더 오래 바라봅니다. (어느 겨울밤엔 백석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찾아 읽기도 합니다.)

눈이 내린 밤(인 줄 알았는데 새벽? 아침?)에는 시를 읽는다(2018.1.9. 6:55)
눈이 내린 밤(인 줄 알았는데 새벽? 아침?)에는 시를 읽는다(2018.1.9. 6:55)

아이들도 밤 풍경을 오래오래 본다는 걸 마을학교 활동으로 아이들의 시와 그림으로 알게 됩니다.


구름과 별

구름이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니
부끄러 숨어 있던 별들
빼꼼빼꼼 모습이 보이니

-김고은(두동초 4) (2021)


근거는 없지만 희망을 보는 듯한

겨울 하늘은 시리고 맑으면서 높고 북두칠성이 머리 위 북쪽에서 뜹니다. 여름 하늘은 넓고도 넓고 북두칠성이 북서쪽에 보입니다. 지난 여름 구름 사이로 절묘하게 보이는 일곱 개의 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메인사진) 근거는 없지만 희망을 보는 듯한 풍경에 기쁨이 가득해집니다.

아이들이 그린 밤 풍경. (좌)권연우 2020.6.29. / (우)김도훈 2021.10.26.
아이들이 그린 밤 풍경. (좌)권연우 2020.6.29. / (우)김도훈 2021.10.26.

밤하늘을 바라볼 때
우주를 보고 있는 것은 네가 아니다.
우주가 사람의 모습으로 자기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밤 풍경에 끌리는데 이런 문장을 만나면 나는 우주가 됩니다.

김진희

만화리 비조마을에 살며 만가지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마을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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