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대한 질문을 시작합니다] ② 야마기시즘 양계법과 예방적 살처분

2021년 2월, 경기도 화성의 산안마을은 예방적 살처분 명령을 거부한 지 59일이 되는 날 결국 여러 가지 이유로 예방적 살처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산안마을의 다른 이름은 야마기시즘 실현지이고, 산안마을은 야마기시즘 양계법을 실현하는 공간이다. 야마기시즘 이상사회의 척도라고 불리우는 야마기시즘 양계법이 마주한 고병원성조류인플루엔자(HPAI)의 위협과 예방적 살처분이라는 폭력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오늘의 3만7천 마리 닭들, 전국의 2천8백만 마리, 이제껏 살처분된 수억 마리의 가축동물에게 보내는 깊은 애도의 마음을 앞으로 전개할 운동의 힘으로 바꾸어가도록 합시다.”

2021년 2월 19일, 산안마을 입장문 중 발췌
산안마을을 ‘동물복지농장’으로 정의하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야마기시즘 양계법은 야마기시즘이 지향하는 이상사회의 척도로 짜여져 있다. by cottonbro 출처 : https://www.pexels.com/ko-kr/photo/4911786/
산안마을을 ‘동물복지농장’으로 정의하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야마기시즘 양계법은 야마기시즘이 지향하는 이상사회의 척도로 짜여져 있다.
사진 출처 : cottonbro

지난 2월 19일, 산안마을은 결국 방역당국의 예방적 살처분 명령을 받아들였다. 산안마을의 반경 3km 이내 농가에서 고병원성조류인플루엔자(HPAI)가 발생한 12월 23일로부터 59일째 되는 날이었다. 예방적 살처분은 말 그대로 실제 감염 여부와 상관없이 감염병의 ‘예방’ 차원에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행위를 말한다. 산안마을은 이러한 예방적 살처분을 잠재적인 위험을 명분으로 수행되는 과도한 행위로 규정하고, 방역당국의 예방적 살처분 명령에 저항했다. 지역의 시민사회와 동물권 단체, 생협 등 예방적 살처분 정책의 폭력성과 비과학성에 대해 꾸준히 문제제기하던 동료 시민들이 산안마을의 싸움에 함께 했다. 산안마을의 닭들은 60일 가까운 시간 동안 HPAI에 감염되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산안마을은 감염병 확산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무조건적인 예방적 살처분을 하지 않아도 될 이유를 몸소 증명해냈다. 하지만 방역당국은 끝끝내 보호구역에서 예찰구역으로 방역대를 하향조정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산안마을에는 120만 개의 유정란이 적체되었고, 경영적으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현실과 부딪히게 되었다.

지난 겨울 이처럼 가축 동물 예방적 살처분 문제의 중심에 있던 산안마을의 다른 명칭은 ‘야마기시즘 실현지’이다. 나는 지난 글에서 20세기에 시작되어 21세기로 이어진 사회적 실험으로서 야마기시즘 운동을 검토하자고 제안하였다. 야마기시즘은 ‘무소유 일체(一體)사회’를 지향하는 이념으로서 야마기시즘을 적용하여 무소유, 공용(共用), 공활(共活)의 사회원리를 적용한 장소가 바로 ‘야마기시즘 실현지’이다. 이번에 다룰 주제는 바로 ‘야마기시즘 양계법’이다. 나는 이번 글에서 야마기시즘 양계법의 검토를 통해 야마기시즘 사회 기획의 일부를 소개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동물 예방적 살처분 문제와 인류가 경험 중인 팬데믹이라는 위기적 상황을 연결지어 고찰하는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

야마기시즘 농법과 야마기시즘 양계법에 대해

야마기시즘 양계법을 야마기시즘을 소개하고 검토하는 연재의 초반부에 다루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시기적인 필요성을 무시할 수 없다. 어느 때보다 추웠던 지난 겨울 산안마을이 버틴 60일은 예방적 살처분 문제를 포함해 가축 동물 감염병 문제를 다루는 방역 시스템 전반과 이와 연결된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위기들을 드러내는 데 기여했다. 이제 그러한 기여로부터 다음 논의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 ‘야마기시즘 양계법’을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라 생각한다. 산안마을을 ‘동물복지농장’으로 정의하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하다는 것 역시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야마기시즘 양계법은 야마기시즘이 지향하는 이상사회의 척도로 짜여져 있다(야마기시즘 실현지 문화과, 1999)고 소개된다. 야마기시즘의 제안자인 야마기시 미오조(山岸巳代臧, 1901~1961)는 본래 양계와 함께 소규모 농사를 짓던 농부였다. 그러다가 특정한 계기로 그의 농사법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서 사람들이 양계법과 농사기술을 배우기 위해 찾아오기 시작했고, 그의 철학이 단지 양계나 벼농사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이 1953년 야마기시회와 야마기시식 양계보급회를 결성하게 된다(유상용, 2002). 따라서 야마기시즘 양계법을 우선으로 야마기시즘을 검토하는 것은 꽤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이러한 맥락, 즉 종합적 사회기획으로서의 야마기시즘과 야마기시즘의 척도로서 설계된 야마기시즘 양계법에 대한 이해가 더해질 때 예방적 살처분 정책에 저항했던 산안마을의 시간과 이 시간이 만들어낸 균열을 해석할 수 있는 관점이 보다 깊고 넓어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먼저 야마기시즘 농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야마기시즘 농법은 크게 4가지 구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야마기시즘 실현지 문화과, 1999). 첫 번째 ‘순환농법’이다. 순환농법의 원리에 따라 야마기시즘 실현지는 양계와 축산의 규모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농지 위에 사료 작물을 재배하고, 축산의 부산물은 전량 양질의 유기질 비료로 전환시켜 농토로 환원한다. 그리고 주변 지역의 농가들과도 각종 작물 등을 교환하고 교류함으로써 순환의 고리를 최대한 넓히는 것을 추구한다(송명규 외, 2000). 두 번째 원리는 ‘기계화와 정밀, 과학 농업’이다. 지난 글에서 잠시 언급한 바 있었는데, 야마기시즘은 ‘기계화할 수 있는 면은 될 수 있으면 기계화해서, 사람은 사람 밖에 할 수 없는 일을 한다’는 기계론을 갖고 있다. 야마기시즘은 또한 기계화가 곧 기업농업으로 연결되는 경향성을 부정하고, 기계화를 통해 자연 본래의 농업이 가능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망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론으로서 ‘연찬(硏鑽)농업’을 제시한다. ‘연찬(硏鑽)’은 본래 ‘학문 따위를 깊이 연구’한다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한데, 야마기시즘에서 연찬은 의사결정방식이자 생활방식이자, 그리고 무엇보다 사유방식으로서 작동한다(김태경, 1999). 즉, 연찬농업이란 단정하거나 고정하지 않고 과학적 태도로 검증해가는 이른바 연찬방식으로 수행하는 농업을 말한다. 세 번째 열쇳말은 ‘종합 유기적 일체 농업‘이다. 야마기시즘의 농법은 흔히 회자되는 ‘유기농’의 연장선에서 해석할 수 있지만, 유기농 그 자체를 농법이 추구하는 목적이나 목표로 삼지 않는다. 야마기시즘 농법은 ‘개인 경영’이 아니라 ‘복합 경영’이라는 점에서 ‘유기적 농업’의 의미를 찾고 있는데, 이 같은 농법의 원리는 생활의 단위(예컨대, 한 실현지에서 사는 사람이 500~1,000명 규모일 때 입지 조건적으로 무리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다종류, 다품목을 재배한다는 식)와 밀접하게 연결될 때 비로소 진가를 발휘한다고 소개되고 있다. 이 같은 지점을 통해 야마기시즘 농법이 사회기획으로서, 그리고 사회기획 내에서 위치하고 있는 자리를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 원리는 ‘일체생활’이다. 야마기시즘 농법은 농업경영이 자가 생산에 기반하여 농촌 지역의 풍성한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역할에 관심을 갖는다. 이렇듯 야마기시즘 농법이 제시하는 원리들은 서로 다른 방향과 내용을 담고 있으나 각 원리들 간에도 순환되고 연결되는 구조를 강조한다. 특히 ‘연찬’이라고 호명되는 야마기시즘이 제안한 사유방식이자 의사결정의 원칙은 다른 원리들의 근간이 되는 관점과 태도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야마기시즘 양계법은 야마기시즘 농법의 일부이자 연장선에서 그 내용을 구축하고 있다. 현재 산안마을에서 볼 수 있는 야마기시식 계사(鷄舍)는 ‘야마기시즘 사회식 계사’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야마기시즘 사회식 계사는 야마기시즘 농법의 원리로 제시되고 있는 것처럼 매우 정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계사의 통풍과 채광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닭들의 생태를 관찰하고 반영하여 닭들이 서로 싸우는 일 없이 드나들 수 있도록 설계된 산란상자나 어떤 모이를 줘도 닭들이 흘리지 않고 고루 먹을 수 있는 사료통의 구조 같은 것 역시 야마기시즘 사회식 계사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야마기시즘 사회식 계사는 일하는 사람 역시 계사의 구성 요소로서 인지하는데, 사료를 주러 들어가는 사람이 오른쪽과 왼쪽 팔을 번갈아가며 쓸 수 있도록 배치된 문의 배치가 이러한 고려의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야마기시즘 양계법이 제안하는 내용은 매우 많은데, 일단 그 전부를 다 적는 것이 불가능할뿐더러 별로 의미가 없다고 판단되고, 무엇보다 야마기시즘 양계법을 매뉴얼처럼 나열하는 것이 야마기시즘 양계법을 소개하는 이 글의 목표도 아니다. 오히려 야마기시즘 양계법을 야마기시즘에 대한 검토를 시작하는 시점에 소개하는 가장 큰 목적은 이 양계법이 갖고 있는 종합적인 관점을 함께 살펴보기 위해서이다.

무엇보다 야마기시즘 양계법은 닭들의 사회에서 개개의 개체가 자유로운 생활이 보장될 수 있는 조건에 대해 탐구하는 것을 기본 태도로 삼는다. 야마기시 미오조가 직접 적은 글에는 “병아리가 태어나서 닷새 정도부터 약 5.4m 앞까지 일직선으로 날아갈 수 있는 넓은 장소에서 마음껏 운동하고, 모이는 다투지 않아도 원할 때 원하는 대로 얻을 수 있어 희희낙락하며 개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갑니다.”는 문장이 있는데, 이러한 구상은 곧 야마기시즘에 제시하는 이상사회의 단면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야마기시즘 양계법은 매뉴얼이라기보다는 야마기시즘식 표현을 빌자면 ‘연찬’의 자료라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 야마기시즘 양계법은 ‘연찬’ 없이 이해하고 체득할 수 없다고 하는 강조 역시 야마기시즘이 입각하고 있는 원칙과 관점을 고스란히 확인시켜주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닭들이 경험한 팬데믹, 그리고 예방적 살처분

예방적 살처분에 저항한 60일의 시간과 그 기간 건강하게 생존했던 산안마을의 닭들은 적어도 닭들의 세계에 있어서 야마기시즘 사회가 갖고 있는 회복력과 감염병 위기에 대응하는 역량을 효과적으로 증명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by Capri23auto 출처 : https://pixabay.com/photos/hahn-chickens-poultry-cockscomb-3607866/
예방적 살처분에 저항한 60일의 시간과 그 기간 건강하게 생존했던 산안마을의 닭들은 적어도 닭들의 세계에 있어서 야마기시즘 사회가 갖고 있는 회복력과 감염병 위기에 대응하는 역량을 효과적으로 증명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사진 출처 : Capri23auto

비록 매우 간소화 된 분석이었지만, 야마기시즘 양계법에 대해 조금 살펴본 것만으로도 우리는 산안마을이 예방적 살처분을 거부하고 해당 정책에 대해 저항했던 2개월의 시간과 그 시간이 만들어낸 어떤 균열에 대해 조금 더 확장된 고민을 이어갈 수 있다. 산안마을의 닭들은 야마기시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존재했고, 예방적 살처분 정책은 닭들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것은 물론이고 야마기시즘 사회의 어떤 단면과 충돌한 것이다. 다소 거칠게 야마기시즘 양계법을 요약하자면, 닭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외부환경과 내부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 역시 닭들과 일체적 관계를 맺는 존재로서 양계법을 구성하며, 닭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상태와 조건을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실험하고 검증하는 ‘연찬’방식이 야마기시즘 양계법을 완성한다. 그렇다면 산안마을이 예방적 살처분에 저항한 60일의 시간과 그 기간 건강하게 생존했던 산안마을의 닭들은 적어도 닭들의 세계에 있어서 야마기시즘 사회가 갖고 있는 회복력과 감염병 위기에 대응하는 역량을 효과적으로 증명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제 야마기시즘 양계법이 이상사회의 척도라는 야마기시즘의 인식을 그대로 빌어 지난 겨울 산안마을이 마주한 예방적 살처분 국면을 살펴보도록 하자. 벌써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가축 동물 감염병 확산이야말로 비인간 동물이 미리 경험하고 있는 팬데믹이라고 할 수 있다. AI 역시 마찬가지다. 닭들이 먼저 경험했고, 계속 이어지고 있는 팬데믹 상황인 것이다. 이 팬데믹 상황을 타개하려는 우리 사회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예방적 살처분으로 대표되는 위험거버넌스이다. 그리고 이 위험거버넌스를 주도하는 것은 명백히 관료제였다.

‘위험’은 사실 ‘불확실성’을 다루기 위해 고안된 도구적 개념이다(조아라·강윤재, 2014). 위험의 발명을 통해 불확실한 세계는 측정가능하고, 계산가능하고, 따라서 예측가능한 비교적 확실한 세계가 되었다(Lupton, 1999; 조아라·강윤재, 2014 재인용). 이렇듯 특정한 합리성에 기초하여 발명된 위험은 매우 근대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그리고 역시 근대적 시스템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관료제가 발명된 위험을 관리하는 주체가 된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연결이라 할 수 있다.

산안마을의 닭들이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되지 않고 60일 가까이 건강하게 생존했음에도 방역대를 하향조정하지 않은 것은 그야말로 ‘방역기강’ 같은 것을 신경써야만 하는 관료제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방역기강’ 같은 것이 생명을 앗아가는 명분이 될 수 있다는 것 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산안마을이 야마기시즘 양계법을 통해 구축한 방역 가능성은 전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오로지 특정한 합리성에 의해 정의된 ‘위험’과 그 위험을 관리하는 유일한 방법으로서 ‘예방적 살처분’이 존재할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그 특정한 합리성이 결코 ‘과학적’이지 않다는 사실 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 오히려 근대적으로 발명된 개념인 ‘위험’보다는 ‘불확실성’ 그 자체에 중점을 두고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경험들 때문일 것이다. 불확실성에 보다 주목하게 되면 위험이 지닌 환원주의석 속성을 간파하여 실질적인 문제해결을 모색할 수 있게 되며, 복수의 해결 가능성을 탐색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게 된다(조아라·강윤재, 2014).

야마기시즘 양계법이 입각하고 있는 연찬농업이라는 것은 바로 불확실성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야마기시즘은 그 내용면에서 자주 과학적 태도를 강조하는데, 여기서 과학적 태도란 고정하거나 단정하지 않는 접근방식을 의미한다. 이는 불확실성 그 자체에 집중하여 환원주의적 속성을 최대한 배제하며 다수의 해결책을 동시에 모색하는 태도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불확실성에 입각한 해법은 회복력(Resilience)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야마기시즘 양계법은 개개의 닭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조건을 고려함으로서 회복력을 지닌 닭과 그러한 닭들로 구성된 사회의 유기적 순환을 강조한다.

이제 2020년 인류가 마주한 COVID-19 바이러스의 팬데믹 상황과 AI 확산 국면에서 작동했던 위험거버넌스를 연결해서 생각해보자. 동물들이 미리 경험한 팬데믹 상황에서 이에 대응하려는 인간들의 사회적 선택은 위험을 발명하고 정의한 위험거버넌스였다. 불확실한 세계를 설명하는 데 충분하지 않아 보이는 어떤 과학들이 명분을 획득했고, 쉽게 생명을 박탈하는 풍토마저 조성되었지만 문제는 전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불확실한 세계를 그대로 관찰하며 다수의 해법을 모색할 수 있는 과학적 태도는 강화된 관료제에 의해 기각되고 배제되었으며, 경제적 논리가 모든 것을 장악하는 경향성을 강화되었다. 야마기시즘 양계법 같은 대안적 시도는 그 가시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방역기강이라는 명분에 짓눌렸다. 나는 AI를 포함해 동물 감염병 확산 국면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었던 이러한 흐름이 2020년 팬데믹 이후 우리 사회가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시나리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하나의 시나리오일 뿐 아니라 가장 강력한 가능성을 지닌 경로일 수 있다고 우려하는 편이다. 야마기시즘 양계법이 이상사회의 척도라면, 야마기시즘 양계법이 경험한 팬데믹의 위기 또한 우리 사회가 경험할 수 있는 유력한 미래일 수 있다. 야마기시즘에 대한 검토가 현재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시사점인 셈이다. 단적으로 이런 질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팬데믹과 기후위기처럼 복잡하게 연결된 불확실한 위기의 대응을 관료제에 맡길 수 있겠는가?

물론, 야마기시즘이 완전하지 않은 이념인 것처럼, 야마기시즘 실현지가 완벽한 마을이 아니었던 것처럼, 야마기시즘 양계법 역시 지속적으로 검토되고 수정되어야 할 대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연찬농업의 핵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연찬에 기반한 농법이라고 하는 것이 당연하게도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단적으로 고도로 정밀하게 구상되고 실현된 야마기시즘 양계법은 어떤 면에서는 수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완벽한 매뉴얼처럼 인식되는 것이 현실이다. 야마기시즘 양계법에서는 이를 법양계(法養鷄)라고 부르는데, 법칙에 따라 하면 어디서든 누구나가 어려움 없이 즐겁게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밀하게 기획된 구상이 갖는 매뉴얼적인 특성과 연찬방식이라는 태도 간의 긴장은 야마기시즘 양계법과 야마기시즘 그 자체가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예방적 살처분이라는 상황은 사람들에게 닭이 단순히 상품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유기체라는 인식을 형성하며, 인간과 동물, 자연의 관계를 심도있게 성찰하게 한다(주윤정, 2020)는 주장은 야마기시즘이라는 이념과 그 이념에 기초한 양계법에도 적용될 수 있다. 예컨대, 야마기시즘 양계법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일체적, 유기적, 순환적인 인식 속에서 이해하고 있지만 인간과 비인간동물 간의 관계와 상호주체성을 인지하는 측면에서는 다소 인간중심적이라는 특성이 있는데, 예방적 살처분의 경험이 야마기시즘 양계법에도 어떤 변화를 줄지 주목하게 된다. ‘연찬’ 없이는 이해하고 체득하는 것이 불가능한 야마기시즘 양계법의 진수는 이제 발휘될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다음 글의 주제를 미리 안내하려 한다. 다음 글의 주제는 야마기시즘의 ‘연찬’이다. 의사결정원리이자 생활방식, 무엇보다 사유방식으로서의 ‘연찬’에 대한 야마기시즘의 구상과 이러한 구상을 전개한 실현지의 구조를 소개하고 검토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현재적 의미에 대해서도 고찰해볼 것이다.

[참고문헌]

  • 김태경. 1999. 「연찬-학육방식을 통한 대안적 환경가치교육 방안-일본 도요사또 실현지 사례분석」. 서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 송명규 외. 2000. 「생명지역주의(bioregionalism)의 이론과 실천: ‘산안마을’을 사례로」. 한국학술진흥재단 ‘98 인문사회중점영역연구 최종보고서.
  • 야마기시즘 실현지 문화과. 1999.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야마기시즘 농법: 돈이 필요없는 사이좋은 즐거운 마을 이야기』. 야마기시즘 실현지 출판부 역. 야마기시즘 실현지 출판부.
  • 유상용. 2002. 「도요사또와 나」.
  • 조아라·강윤재. 2014. 「불확실성을 통해 본 위험거버넌스의 한계와 개선점-2010년 구제역 사태를 중심으로」. 《ECO》 18(1), 187-234쪽.
  • 주윤정. 2020. 「상품에서 생명으로: 가축 살처분 어셈블리지와 인간-동물 관계」. 《농촌사회》 30(2), 273-307쪽.

이태영

야마기시즘 실현지(산안마을), YMCA, 체화당과 풀뿌리학교, 녹색당에서 성장하고 배우고 일했습니다. 지금은 제주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소유자나 소비자가 아닌 정체성으로 지역-사회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고, 이에 대해 질문하고 탐구하는 이가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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