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대한 질문을 시작합니다] ③ 야마기시즘 연찬과 의식 혁명

야마기시즘은 연찬을 통해 제도와 의식의 전환을 동시에 고려한다. 야마기시즘 연찬은 자신의 생각이 실재와 별개인 개인의 감각과 판단이라는 자각에 입각한 사유 방식이자 소통 방식, 의사결정 구조이다. 이 인식론적 전환은 야마기시즘의 무소유 일체사회라는 이상향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원리이다.

새로운 인간주체성 생산

체 게바라(Che Guevara)는 사회주의 사회로의 이행을 위해서는 ‘새로운 인간’이 출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60년 소련을 방문한 체는 소련의 당 엘리트들의 부패와 기만을 목격하고 크게 실망했다. 그는 1965년 우르과이의 주간지 전진(Marcha)에 보낸 서신 ‘쿠바에서의 인간과 사회주의(Socialism and man in Cuba)’에 “공산주의를 건설하려면 새로운 물질적 기초와 더불어 ‘새로운 인간’을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밝혔다.

생태주의자이자 철학자인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는 주체성을 어떻게 구성하고 생산하는가의 문제가 생태주의의 핵심 의제라고 주목한 바 있다. 가타리는 그의 책 『세 가지 생태학』(윤수종 역, 동문선, 2003)에서 마음생태, 사회생태, 자연생태라는 도식을 활용하는데, 특히 가타리는 마음생태의 영역을 강조한다. 여기서 마음생태는 바로 주체성 생산의 의미를 갖는다(신승철, 2011:64). 현대의 생태 문제는 자연 환경의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이고, ‘정신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데, 가타리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착안하여 세 가지 생태학을 통해 자연으로의 회귀나 복원이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와 대중 매체가 부여하는 동질성과 획일화로부터 벗어나려는 특이성, 예외성, 희소성을 발견하고자 노력했다(박민철·최진아, 2019).

야마기시즘이 설정한 이상사회는 ‘우두머리나 관리직이 없어 명령이나 통제가 존재하지 않지만, 각자의 자유의지에 의한 임의의 자각으로 역할을 다하는 사회’이다. by Maksim Goncharenok    https://www.pexels.com/ko-kr/photo/5430243/
야마기시즘이 설정한 이상사회는 ‘우두머리나 관리직이 없어 명령이나 통제가 존재하지 않지만, 각자의 자유의지에 의한 임의의 자각으로 역할을 다하는 사회’이다.
사진 출처 : Maksim Goncharenok

2021년은 자본주의가 야기한 불평등의 문제와 기후위기로 대표되는 생태적 위기가 복합적이면서 치명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시기이다. 2020년 인류가 마주했던 COVID-19 팬데믹은 불평등과 기후위기라는 구체적인 위협과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긴밀하게 그 원인과 결과를 공유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의 이 위기를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의 정치는 문제를 인식하는 방법에서부터 그 해법까지를 두고 각자가 설정한 경로를 제시하고 이를 통해 시민들을 설득한다. 그런데 과연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시도들이 과연 우리의 삶을 더 낫게 하는 것일까 자문하게 되는 경우들이 왕왕 발생한다.

20세기 인류는 이념에 기초해 급진적으로 변혁한 체제가 결코 인간의 삶을 고루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충분조건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바 있다.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가 대표적이다. 그래서 체 게바라가 강조한 ‘새로운 인간’, 펠릭스 가타리가 주목한 마음 생태와 세 가지 생태학의 통전적인 연결에 대한 제안은 위기도 무력감도 치명적인 오늘날 더 묵직한 시사점을 준다. 여기서 우리가 재구성할 수 있는 질문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새로운 사회의 주체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주체성은 어떻게 개발되고 성장할 수 있는가?

야마기시즘의 연찬 생활

이번 연재가 계속해서 다루고 있는 야마기시즘 역시 새로운 인간의 등장, 그리고 주체성의 생산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이념 체계이자 실천 양식이다. 야마기시즘이 설정한 이상사회는 ‘우두머리나 관리직이 없어 명령이나 통제가 존재하지 않지만, 각자의 자유의지에 의한 임의의 자각으로 역할을 다하는 사회’(야마기시즘 실현지 문화과, 1999)이다. 규율이나 명령이 아니라 각자의 자유의지와 임의의 자각에 의해 무소유 일체사회를 운영한다는 지향점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고도의 의식적 각성을 경험한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가 야마기시즘의 운동론 내지는 혁명론의 핵심이다. 야마기시즘은 의식혁명을 통해 사회·정치적 혁명이 가능하다고 주창한다.

이때 연찬(硏鑽)은 야마기시즘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열쇠말이다. 본래 ‘학문 따위를 깊이 연구’한다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한 연찬은, 야마기시즘에서 의사결정방식이자 생활방식, 그리고 무엇보다 사유방식으로서 작동한다(김태경, 1999). 야마기시즘의 연찬이 단순히 소통 방법이나 기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방식으로 역할한다고 볼 수 있는 이유는 야마기시즘 연찬이 강조하는 인식론에 있다. 우선, 야마기시즘의 연찬 방식은 ‘누가 옳은가?’를 다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탐구하는 과정이고, 모든 지식과 정보를 광범위하게 받아들여 최선의 결론을 도출하는 사유 방식이다(이남곡, 2012:19).

여기까지는 소통 문제나 의사결정 방식에 있어서 과학적 태도를 강조하는 사회 일반의 주장이나 그러한 주장에 입각한 사회과학적 접근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야마기시즘 연찬의 특수성은 이른바 무엇이 옳은지 질문하고 최선의 답을 함께 찾아가는 과학적 탐구라는 것이 기술적인 접근이나 규범적인 논리로는 불가능하다고 인정하고, 자기 관념과 아집(我執)을 제거하는 인식론을 함께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그 활동을 시작하려 한다는 것에 있다. 야마기시즘이 이념 체계와 실천 양식을 확대하고 재생산하는 대표적인 대외 행사인 ‘야마기시즘 특별강습연찬회(이하 야마기시즘 특강)’는 7박8일의 과정으로 진행되는데, 이 야마기시즘 특강의 첫 번째 주제가 ‘자신의 생각이 실재(사실)와는 별개인 개인의 감각과 판단이라는 자각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것인 이유가 바로 이러한 접근 때문이다. 야마기시즘에서는 이러한 연찬태도를 ‘영위(零位)에 선다’라고 표현한다. 이렇듯 자신의 생각과 사실을 분리하는 것으로부터 자기변혁이 시작되고, 그러한 자기변혁을 통해 사회·정치적 혁명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구상이 야마기시즘이 추구하는 바라고 할 수 있다.

야마기시즘 연찬이 가진 특수성 중 하나는, 자칫 개인적 차원의 구도(求道) 활동에 머무를 수 있는 이러한 인식론적 전환의 시도를 사회 시스템으로 작동하게 설정했다는 것이다. by Pixabay  출처 : www.pexels.com/ko-kr/photo/461049/
야마기시즘 연찬이 가진 특수성 중 하나는, 자칫 개인적 차원의 구도(求道) 활동에 머무를 수 있는 이러한 인식론적 전환의 시도를 사회 시스템으로 작동하게 설정했다는 것이다.
사진 출처 : Pixabay

야마기시즘 연찬의 또 다른 특수성은 자칫 개인적 차원의 구도(求道) 활동에 머무를 수 있는 이러한 인식론적 전환의 시도를 사회 시스템으로 작동하게 설정했다는 것이다. 지난 연재에서 살펴보았던 야마기시즘 양계법에서도 “연찬이야말로 야마기시즘 양계법의 생명선”이라고 강조하고 있으며(야마기시즘 실현지 문화과, 1999:122), 야마기시즘 실현지(야마기시즘의 이상향을 생활 전체의 영역에서 실현하는 정주 공간(송명규 외, 2000))의 모든 의사결정은 실제로 연찬을 통해 이뤄진다. 야마기시즘 실현지 중 가장 큰 규모였던 일본의 도요사토 실현지는 한 때 3천명 정도가 함께 생활할 정도로 그 규모가 커졌었는데, 3천명 규모의 작은 사회가 사유방식이자 의사결정방식으로 ‘연찬’을 채택했고 연찬이라는 결정구조가 실제로 사회를 경영했던 경험을 복기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다음 단계를 모색하려는 이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주제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야마기시즘 연찬이 갖는 중요한 의미는 ‘무소유 일체사회’라는 야마기시즘 사회의 지향이 오로지 연찬방식을 통해 규명되고 실현될 수 있다는 점이다. 소유 관념은 야마기시즘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야마기시즘은 물질적인 대상 뿐 아니라 지식, 정보와 같은 무형의 것들을 둘러싼 소유 관념을 해체하는 것이야말로 이상사회를 구현하는 최적의 경로라고 보았다. 야마기시즘은 소유 문제를 풀어감에 있어 제도적 변혁을 우선한다거나 종교적 실천 과제로서 ‘무소유’를 주장하는 일련의 시도들과는 거리를 둔다. 그보다 야마기시즘이 천착한 소유 문제를 변혁하는 혁명적인 방법은 연찬을 통해 개인의 소유 관념에 대해 깊이 검토하고 개인의 자각에 기반하여 ‘무소유 일체사회’라는 시스템을 구현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야마기시즘의 연찬은 무소유 일체사회라는 이상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의식과 제도, 두 가지 범주의 변혁을 연결하는 도구이자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야마기시즘 연찬의 현재적 의미와 도전

야마기시즘이라는 이념과 야마기시즘 실현지라는 구체적 실체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주목 받았던 시기는 1990년대였다. 1987년 한국의 정치사회적 국면과 1990년대 초 세계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소련의 붕괴로 인해 자본주의는 물론 현실 사회주의의 실험을 넘어서는 대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야마기시즘은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을 목격하며 동력을 잃은 좌파들, 제도적 민주화 이후 새로운 의제를 설정해야 했던 시민운동진영, 급격하게 진행되는 환경문제, 비인간화 문제 등에 대응해야 했던 생명운동, 농민운동, 환경운동, 진보적인 종교운동 진영 등 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김현주, 2018). 여러 가지 이유에서 사람들은 야마기시즘을 통해 미래 사회에 대한 상상력을 얻었다. 예컨대, 마르크스주의자를 포함한 일군의 좌파들에게 야마기시즘 실현지는 어떤 의미에서 공산주의 사회의 원리인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사회를 작은 규모지만 실현하는데 성공한(권희중 외, 2020:117) 사례로 읽혔을 것이다.

연찬이 이러한 야마기시즘의 특수한 경험과 성과를 견인한 핵심적인 구성 요소라는 사실에 대해 더 이상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야마기시즘이라는 사회 기획의 확장성과 현재적 적용 가능성에 대해 성찰적으로 접근할 때 중요한 도전이 되는 것 역시 역설적으로 바로 이 ‘연찬’일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고정하거나 단정하지 않는 태도를 최우선 과제로 삼은 연찬방식이 모순적이게도 견고한 의례가 되어 오히려 고정적인 관념을 공동체 내부에서 재생산하는 명분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는 야마기시즘 실현지의 경험에서 일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야마기시즘은 연찬을 과학적 소통 방식으로 강조하며 야마기시즘의 이념 체계와 실현지라는 정주 공간이 종교로 의심 받는 것을 경계했는데, 연찬이 의례화되는 경험은 과학과 종교의 경계가 어느 위치에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는지에 관해 질문하게 한다. 우리가 의식혁명, 정신의 진화를 제도와 물질의 전환 과제를 수행함에 있어 필수적인 조건이라 인지한다면, 야마기시즘의 구상과 실험 경험, 그리고 그 실험이 마주했던 한계적 지점에 대한 검토는 무엇보다 소중한 경험 자산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야마기시즘의 연찬을 민주주의의 급진적인 실험으로 검토할 때 주요하게 살펴야 할 지점이 있다. 야마기시즘 실현지는 연찬을 통해 모든 공식적인 의사결정을 진행하는데, 실제로 연찬의 과정과 결과가 곧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정당성을 획득한다는 점에서 매우 급진적인 민주주의 실험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주로 오랜 기간 실현지에 있었던 사람에게 정보가 몰리기도 하고, 이념에 대한 이해의 격차도 발생하는데 이러한 차이가 권위가 되는 과정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다는 평가(김현주, 2018)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찬에 의해 운영되는 사회를 지향한 야마기시즘은 공식적인 장(長)이 없는 사회적 구조를 채택하였고, 연찬은 소통 방식이나 결정 구조로서 그 자체로 사회적 권위를 갖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실제로 마주했던 한계인 셈이다. 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급진적 민주주의의 지향이 자칫 비공식적 권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왜곡될 우려를 사전에 학습할 수 있다. 아마도 야마기시즘 연찬의 현재적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정당성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권력을 가시화하고 더 민주적인 방법으로 사회적인 권위를 형성하고자 노력했던 인류 보편의 실험들을 야마기시즘 연찬의 경험 및 그 한계와 연결지어 살펴봐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마기시즘의 연찬이 현재 시점에 우리 사회에 주는 시사점은 제법 크고 중요한 것이라는 점을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다. 무엇보다 바뀐 미디어 환경 속에서 즉자적인 판단과 단죄적 태도에 입각한 논쟁의 경험만이 일상을 채우고 있는 혐오와 단절의 시대에 무지를 자각하는 것으로부터 소통을 시작하고자 노력하는 연찬 방식과 연찬 방식에 입각해 사회를 운영하자고 제안하는 야마기시즘은 여전히 유의미한 사회 기획의 위상을 갖는다. 연찬이라고 하는 원리는 의식과 제도의 전환을 동시에 고려한 구체적인 사회 기획이었던 야마기시즘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치명적인 위기 앞에 놓인 2021년의 우리가 새로운 사회를 상상함에 있어 새로운 인간의 등장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인식은 20세기 인류가 경험한 세계사적인 실험들이 남긴 자산이다. 이번 글에서 검토한 야마기시즘 연찬은 그러한 자산의 실체이자 결과이기도 하고, 다음 실험을 위한 새로운 자산이 만들어지는 데 필요한 소중한 자료이기도 할 것이다.


[참고문헌]

  • 권희중 외. 2020. 『우리의 욕망을 공유합니다』. 한살림.
  • 김태경. 1999. 「연찬-학육방식을 통한 대안적 환경가치교육 방안-일본 도요사또 실현지 사례분석」. 서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 김현주. 2018. 「산안마을, 시대와 함께하다」. 제11회 마을만들기전국대회 발표자료.
  • 박민철·최진아. 2019. 「펠릭스 가타리의 생태철학: 카오스모제, 생태적 주체성 그리고 생태민주주의」. 《철학연구》 127, 233-258쪽.
  • 송명규 외. 2000. 「생명지역주의(bioregionalism)의 이론과 실천: ‘산안마을’을 사례로」. 한국학술진흥재단 ‘98 인문사회중점영역연구 최종보고서.
  • 신승철. 2011. 『펠릭스 가타리의 생태철학』. 그물코.
  • 이남곡. 2012. 『논어, 사람을 사랑하는 기술』. 한겨레출판사.
  • 야마기시즘 실현지 문화과. 1999.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야마기시즘 농법: 돈이 필요없는 사이좋은 즐거운 마을 이야기』. 야마기시즘 실현지 출판부 역. 야마기시즘 실현지 출판부.

이태영

야마기시즘 실현지(산안마을), YMCA, 체화당과 풀뿌리학교, 녹색당에서 성장하고 배우고 일했습니다. 지금은 제주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소유자나 소비자가 아닌 정체성으로 지역-사회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고, 이에 대해 질문하고 탐구하는 이가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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