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디찬 바닥에서 다시 싸움을 시작합니다” –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지금…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능선이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설악산은 국립공원, 천연보호구역,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백두대간 보호지역,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으로 “중첩” 지정된 보호구역이다. 그러나 2015년 시작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설악산의 자연환경 보호를 위해 행정 절차 상으로 2016년과 2019년 2차례 사실상 취소가 된 사업이었지만 멈출 줄 모르는 개발의 야욕은 보호구역 제도의 취지마저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환경부는 국내에서 가장 보전가치가 높고 생물다양성이 뛰어난 설악산을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다시 시작된 케이블카 싸움

지난 2월 3일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 백지화를 촉구하는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세종시 환경부 청사 앞에 농성장이 꾸려졌고 지금까지 많은 시민들이 오가며 1인 시위, 문화제, 종교행사 등 다양한 형태로 농성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작년 12월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환경부의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의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결정에 대해 위법·부당하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지난 2019년 일단락되었던 케이블카 싸움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2019년 환경부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진행되면 설악산 자연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사실상 불허 결정을 내렸지만,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환경부의 행정처리가 잘못되었다’는 취지로 그 행정 결정을 뒤집어 버린 겁니다.

2015년 시작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행정 절차상으로 2016년과 2019년에 2차례 사실상 취소된 적이 있습니다. 지역경제 활성화가 케이블카 사업의 주요한 목적이었다면 환경성과 경제성이 타당하지 않아서 취소된 사업은 포기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는 것이 상식일 겁니다. 하지만 설악산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업자인 양양군은 새로운 대안을 찾기보다는 그때마다 행정심판제도를 악용하여 문화재청과 환경부의 행정 결정을 무력화시켰습니다.

무력한 보호구역 제도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1차, 2차, 3차 노선 예정지. 녹색연합 제공.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1차, 2차, 3차 노선 예정지. 녹색연합 제공.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양양군이 사업자로 설악산국립공원 남설악 오색지구에 길이 3.5km, 상하부 정류장, 중간 지주 6개, 가이드 타워 3개가 들어서는 규모로 계획된 개발사업입니다. 설악산은 국립공원, 천연보호구역,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백두대간 보호지역,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으로 중첩 지정된 보호구역입니다. 각 보호구역의 지정 취지가 다른 만큼 설악산이 보호되어야 이유가 그만큼 많습니다. 각 보호구역의 근거법들로 무분별한 개발행위를 강력히 제한하자고 약속한 곳이 바로 설악산인 겁니다.

그러나 설악산을 둘러싼 개발의 야욕 앞에서 보호구역 제도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들에게 자연유산을 보전하고 계승하기 위한 보호구역의 원칙보다는 정치적 손익계산,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개발 논리가 우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강원도와 양양군의 숙원사업이 되어버렸습니다. 누구를 위한 숙원인지는 그 실체는 여전히 모호한데 말입니다.

설악산 케이블카의 악몽

설악산 케이블카 악몽의 시작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자연공원법 시행령을 개정해서 국립공원 정상부까지 케이블카 설치가 가능해집니다. 2012년, 2013년 양양군은 2차례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신청했고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에서 모두 부결됩니다. 환경성과 경제성 모두 타당성이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 “평창 올림픽에 맞추어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을 조기 추진하라”는 대통령 지시와 함께 정부 각 부처는 비밀 TF까지 꾸려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합니다. 심지어 행정 절차상으로 사업을 심의해야 하는 환경부와 문화재청도 포함됩니다. 2015년 8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에서 조건부 통과되었고 수많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설악산이 환경부입니다.

설악산같이 생태적으로 가장 우수한 지역을 온전히 지켜내는 것이 환경부의 가장 최소한의 존재 이유이다. 설악산 대청봉.
사진출처 : 박그림

최근 환경부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해 추가 보완을 요청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진행하겠다는 겁니다. 사업자인 양양군과 강원도 일부 정치인들은 행정심판의 원칙에 따라 바로 사업에 동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환경부가 이러한 원칙을 어기고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진행한다면 법적 대응을 하겠다며 엄포를 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 억지주장일 뿐 환경부는 정당하게 보완조치를 내리고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다시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제 다시 환경부가 법과 제도로 만든 원칙에 따라 단호히 결정해야 할 때입니다. 보호구역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국내에서 보전 가치가 가장 높은 설악산마저 지키지 못한다면 도대체 환경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설악산이 곧 환경부입니다. 설악산같이 생태적으로 가장 우수한 지역을 온전히 지켜내는 것이 환경부의 가장 최소한의 존재 이유입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환경부 스스로 그 정체성을 부정하는 일이나 다름없습니다.

박수홍

녹색연합에서 설악산 케이블카 대응, 기후위기 대응 활동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떡볶이와 스파게티 만드는 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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